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민이 있으니 뵙고 싶단다.
내 딸이 아니라 지인의 딸이다.
부암동에서 만났다.
백사실가는 길목이다.
예전에는 정원이 아름다운 주택들이 많았는데 카페가 많아졌다.
북악산 자락에서 보현봉과 사모바위를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데 어떡하면 좋아요?”
“어디서 연락 받았어?”
“종로구청에서요.”
이 아이의 아버지는 IMF때 사업실패와 가정불화로 가출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아빠를 많이 미워했고 원망했어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존재의 외로움과 상처가 컸었나 봐요.
사춘기 때는 아빠를 미워하는 어머니를 편들다 보니까 더욱 미워했어요.
보고품이 사무쳐서 더 그랬었나봐요.
이제 나이 들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살다보니까
그 때 엄마의 감정에 동화되어 <가스라리팅> 당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하면서
‘나는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보지 않나?’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많이 컸다.
얘가 명문 Y대에 합격했을 때
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밥 사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던 어린애였는데...
학부 졸업하고 심리학으로 석사 했으니 그럴 만하지.
“아빠가 노숙인으로 떠돌다 길거리에서 사망하여
구청에서 연고자를 찾다 보니까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신랑과 상의해서 장례를 치르려고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노발대발 방방 뜨시는거에요.
"거지같은 잉간 잘 죽었으니 들여다보지도 말라" 하시며
세상에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으시는 거예요.
잉간이라는 말도 폄하하고, 비하하는 멸칭이잖아요.
솔직히 엄마가 내 아버지한테 그러는 거 싫어요.
엄마는 아빠와 헤어지면 남남이지만 나는 피를 나눈 피붙이잖아요.
애들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면서
뼛속 깊이 사무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원한. 이해해요.
그렇지만 엄마가 아빠를 “개새끼”라고 욕하면
제가 “개새끼”의 <새끼>가 된 기분이 들고 비참해져요.
엄마는 이혼의 명분을 다지기 위해 아빠를 악마화 하지만
아버지가 악마가 되면 제가 <악마의 딸>이 되잖아요. 그게 싫어요.
저의 몸에 엄마의 유전자도 있지만 아빠의 유전자가 50% 흐르잖아요.”
저 멀리 보현봉을 바라보던 눈동자에
이슬이 또르륵 굴러 떨어진다.
“엄마가 반대해도 아버지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네 생각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해줄게”
“마지막 가는 길, 그렇게 외롭게 보내드릴 수 없잖아요. 고마워요,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비구름에 잠겨 있던 보현봉이
구름을 걷어내고 얼굴을 드러냈다.
첫댓글 자식으로써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게
도리라 생각해요
잘 조언해 주셨네요^^
무서운 부부의 이야기를
듣는것 같아요
사랑해서 결혼 했을것인데.....
조언 잘하셨네요
이 아침 참으로 남의일 같지않는 인생의 참뜻을 보는듯한 님의 글을봅니다...
정말 누구에게도 말못하는 가족사의 고민을 님에게 털어놓고 의논하며 조언을 구하는 따님(친구)의 깊은 생각과 애절한 사연이 이아침을 희뿌연 안습에 쌓이게 하네요...
아마도 그 따님은 어릴때부터 아버지 부재의 빈자리를 님에게서 찾았으리라 그래서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왔으리라 유추해 보는것도 어렵지 않네요~훌륭하십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고 해피엔딩으로~♡
에구 짠~한 인생이네요
삶엔 여러 종류가 존재하지만 어떤게 잘산 삶인지 헷갈릴때가 많죠
친구딸의 생각이 참 기특하고 옳은것 같아요
그리 보내드려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 보이네요
에휴 맘 아픈 일입니다 ..
같이 살았든 남편인데 마지막 가는길 딸앞에서
욕까지 했어야 할까 맘이 짠 하네요
그래도 따님 마음씀이 예쁘네요
우리 남편 여동생인 시누이 바람나서
아이까지 출산해 도망가서 살았어요.
그 아들이 스무살 되었는데
그 남자 노숙자로 객사했다고 얼마전에
정부에서 연락와 시체 인수하는데
400만원 냈다네요.
시누는 당연히 돈 없으니 두 오빠가 돈을 냈네요.
울남편 속없이 제부가 죽었다고 장례식 참석
그 죽은 남자는 집안은 좋은데
그의 좋지 않은 행실로
아내와 가족들에게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고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사람 대접 받습니다.
장례는 치뤄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싶네요 엄마하고 딸 하고는 입장이 다르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