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삶
불교를 세우신 부처님은 위대한 성인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오만 위에 세운 것이 아닌 자비의 자연 결정체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눈이 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꿰매려 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대신 바늘에 실을 꿰어 한 바늘 한 바늘 옷을 꿰매어주었습니다.
또 병에 걸린 비구가 물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직접 차를 달여서 그 비구에게 먹이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은 또한 중병에 걸린 제자들을 자주 돌보고 심지어 더러운 똥오줌,
피고름도 전혀 개의치 않고 직접 나서서 깨끗이 치웠습니다.
위대한 부처님, 그의 자비는 마치 따스한 바람과 태양처럼,
신분의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에 미칩니다.
자비가 곧 불법임을 부처님 몸소 실천하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계시와 본보기입니다.
수나라의 지순(智蕣, 533~604) 선사가 행각참선行脚參禪을 할 때 입니다.
어느 날 한 숲에 도착하여 나무 밑에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들꿩 한 마리가
선사가 앉아 있는 앞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선사는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이 작은 생명을
옷소매로 싸서 보호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이 뛰어와
선사에게 들꿩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도 목숨의 하나인데 놔줍시다."
선사가 인내심을 가지고 자비롭게 사냥꾼을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자신의 술안주감이라면서
계속해서 선사에게 들꿩을 내어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선사도 방법이 없어 행각할 때 항상 몸에 지니는 칼을 꺼내어
자신의 귀를 베어내 탐욕한 사냥꾼에게 주며 "이 귀가 너의 들꿩의 무게와
비교해 모자라지는 않는가? 가져 가서 안주를 만들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체를 아깝게 여기기 않고 베어내는,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도록 할 분이지 자기를 위해 안락을 구하지 말라"
하는 이러한 덕행이 바로 자비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카티아야나katyayana, 즉 가전연伽旃延
존자가 부처님의 법을 펴려 인도의 변방 지역에 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자 그는 부처님을 몹시 그리워하여 어린 상좌
소나 꼴리위사(Sonakolivisa, 憶耳)를 보내 부처님을 뵙게 했습니다.
소나 꼴리위사가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하자 부처님은 친절하게 그를 살펴주고,
더욱이 제자들에게 분부하길 "내 방에 침대 하나를 더 갖다 놓고 소나 꼴리위사
에게 내 이불의 반을 나눠 오늘 밤 그 애를 나와 함께 자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모두가 이해를 못 하고, 그렇게 위대하신 부처님이 한 어린 손자
상좌에게 그렇게 큰마음을 써서 돌볼 필요가 있는가 했습니다.
제자들이 부처님의 자비가 봄의 햇빛처럼 세심하며, 따스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소나 꼴리위사를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비단 어린 손자 상좌를
돌보는 것을 넘어서, 멀리서 힘들게 부처님의 법을 펴고 있는 제자 가전연
존자를 위로하며 그로 하여금 너 자신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너의 상좌가 이곳에 오니 모두가 마치 너를 본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중시하고 열의로 대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하신 것으로 소나 꼴리위사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전연 존자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위로받을 것입니다.
부처니님 이렇게 자비한 분이고 인간미를 갖춘 성자입니다.
《아함경阿含經》에는 이러한 자비행을 곳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인품은 정말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게 할 뿐입니다. 불법의 근본정신은
자비에 있으며 모든 보살의 발심發心도 대비大悲에서 시작됩니다. 비심悲心은
일체중생의 고난을 안쓰럽게 여겨 기꺼이 대신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남의 고통을 보고 참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자비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비의 삶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열심히 실천해야 합니다.
보통중생 보통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