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최고봉 -초모랑마-
수십만년이 착 가라앉은 그 눈탑 위에 작은 라디오 하나가 서있다.
라디오는 푸른 하늘을 깨치고 주파수를 찾기위해 이리저리 안테나를
돌려대고 있다.
어디선가 눈가루가 날라와 전파 수신을 방해한다.
지직 거리는 잡음만이 스피커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언제나 지구보다 작은 태양이 마른 하늘에 걸린다.
태양은 눈을 녹이기 위해서 이제까지 타올라왔지만,
눈은 그리 쉽게 태양의 숨결에 사그라 들지 않는다.
부러운 건 역시 그 생명.
모든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차가움의 매력.
차가움은 그렇게 그곳의 시간을 멈춰버렸다.
눈은 그 자리에서
역사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그저 "존재" 라는 영원을 기약했다.
태양이 또 오늘 그들의 뺨 위로 더운 입김을 내뿜지만....
라디오에 한가닥 희망이 잡힌다.
[지지~ 지금~ 지지지~ 가 지지지 어 지지지 무어 지지 지지지]
라디오는 그 자리에 서서 희미한 음성을 잡아내고자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시 시간의 흐름속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추억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주파수 넘버 1984년, 내가 태어난 해의 그 울음
주파수 넘버 1988년, 내 동생이 태어났던 그 추운 날
주파수 넘버 1996년, 중학교 시절의 그 죽을 것 같던 시간
주파수 넘버 1999년, 겨우 사는 게 무엇인지 자각했던 그 때
주파수 넘버 2000년, 새천년의 울음소리
주파수 넘버 2001년, 지겨운 수능과, 그 후의 좌절
주파수 넘버 2002년, 재수라는 선택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넌 지금 지직 하고 있 지지직. 그리고 다시 한번 지지직 할 지직]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다.
주파수 단추를 민감하고 섬세하게, 돌려본다.
주파수 넘버 2002년 12월 8일 일요일 오전 7시 27분, 바로 지금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는가.]
라디오는 볼륨을 높여 다시 한번 외쳤다.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는가?]
차가운 눈보라 사이로 라디오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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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초모랑마 위의 라디오
달파(獺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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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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