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구한말 고종황제가 즐겨 마셨다는 커피에서 식후 음료의 기원을 찾고는 한다. 당시 가배(咖啡) 혹은 양탕(洋湯)국이라고 불렸던 커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후 음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식후 음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천년 전인 고려시대에 시작됐다면 어떨까? 숭늉에서 미룻가루까지 전통 음청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잊고 있었던 우리 본연의 입맛과 취향이 보인다.
고려시대의 아메리카노는 숭늉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의 식후 음료(디저트 음료) 시장은 외적 규모와 문화적 면모 등 다방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가장 즐겨 마시는 식후 음료로는 커피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커피산업의 매출 규모는 7조원에 달하며, 이를 커피 잔 수로 계산했을 때 1인당 무려 353잔에 해당될 정도라고 한다. 전 국민이 매일 1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다. 향후 2023년에는 커피산업이 8초6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식후 음료 문화가 현대의 한반도 사람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술을 제외한 차(茶)나 탕 혹은 과일을 넣은 음료인 화채 등을 통틀어 음청류(飮淸類)라 불렀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음청류로는 단연 숭늉이 꼽힌다. 솥에 눌러 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숭늉은 고려시대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음용되던 즐겨찾기 음청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의 견문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 사람들의 숭늉 마시는 풍속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숭늉 없인 못 살았던 조선의 공무원
당시 고려 사람들은 숭늉이나 끓인 물을 지금의 텀블러와 비슷한 휴대 용기에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이 들고 다니는 물그릇의 모양은 머리가 길고 위가 뾰족하며 배가 크고 바닥이 평평한데 여덟 모서리로 간혹 도금한 것도 있다. 그릇 속에는 숭늉이나 끓인 물을 담는다.” 또한 숭늉을 담았던 용기의 크기는 다양했으며 가장 큰 것의 경우 두 되(약 3.8리터)의 숭늉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나라의 관리나 귀족들은 언제나 시중드는 자를 시켜서 가까이에 숭늉 그릇을 들고 따라 다니게 한다. 크기는 같지 않고 큰 것은 두 되가 들어간다.
우리 조상들의 숭늉 사랑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숙종 38년인 1712년 11월부터 1713년 3월까지 사신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온 김창업은 자신의 견문록인 <연행일기>에서 숭늉을 마시지 못해 고생한 일에 대하여 적어 놓았다. 머나먼 중국 땅에서 숭늉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던 김창업은 숭늉 비슷한 물을 마신 뒤에야 속이 편해졌다고 한다. 정조임금 때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서유문 역시 <무오연행록>에서 숭늉을 마신 뒤에야 간신히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었다는 경험담도 있다. 숭늉은 갈증 해소를 위한 전통 음청류이자 식후 소화를 돕는 소화제 역할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마솥이 사라지고 전기밥솥이 보급되면서 누룽지와 숭늉은 점차 사라져갔다 ©shutterstock
연행일기와 무오연행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임금님도 즐겨 마셨던 건강 음료
다음으로 소개할 음청류는 현대 한국인들의 건강식으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숫가루다. 보리, 쌀, 콩 등의 곡물을 볶은 뒤 가루 내어 물에 타먹는 미숫가루는 여름철 얼음을 띄워 마시는 방법으로 더위를 해소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청량음료다. 화채, 수정과 등과 함께 임금님이 즐겨 먹었던 미숫가루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임금이 사랑했던 음청류이기도 했다. 생전에 소화기관이 약했던 영조임금은 신하들의 권유로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숫가루는 섬유질이 풍부해 소화를 도울 뿐 아니라 주재료인 보리의 차가운 성질로 인해 더위를 식히는 데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숫가루를 즐겨 먹었던 덕분일까? 무려 83세까지 장수했던 영조임금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오래 살았던 임금이다.
궁궐 사람들은 '화채'도 즐겨 마셨다고 한다. 1957년 발행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中料理通攷)>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이조궁정요리통고>는 사라져가는 조선시대 궁중 음식의 조리법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유자, 배 등을 이용해 화채를 만드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유자는 껍질을 까서 얇게 잘라 다시 가늘게 채 썰고, 배도 가늘게 채 썰어 설탕 끓인 것을 넣고 단맛을 내어 그릇에 담는다"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유자 특유의 쌉쌀한 맛을 줄이고 향과 단맛을 배가시켜 후식으로 즐겼다.
겨울철 시원하게 만들어 먹던 절기 음식
식혜와 수정과 모두 캔이나 병으로 포장되어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전통 음료로, 요즘은 젊은 층이 즐겨 찾아가는 현대적인 카페의 메뉴판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식혜는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에 이미 음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유사>에는 금관가야의 첫 번째 군주였던 수로왕의 제사 음식으로 감주(식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 조상들은 흰쌀을 시루에 쪄서 식힌 뒤 엿기름물에 삭혀 만든 음청류인 식혜를 차게 만들어 마시고는 했다. 뜨끈한 구들방에 들어앉아 마시는 살얼음이 동동 뜬 식혜는 그 시절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겨울철 음료이자 소화제이기도 했다. 설날 같은 명절에 속이 거북하도록 음식을 먹게 마련인데 이때 우리 선조들은 식혜를 마셔 소화를 도왔다고 한다.
수정과는 생강과 계피를 달인 물에 꿀 혹은 설탕을 넣어 단맛을 더하고 여기에 곶감, 잦 등을 넣어 마시는 전통 음청류다. 수정과 역시 겨울철에 즐겨 마시던 계절 음료였는데 보통 정초에 세배하러 온 손님을 접대하던 절기 음식이다. 톡 쏘는 생강과 알싸한 계피의 향이 어우러진 수정과에 잣을 몇 알 띄우면 어지간한 카페 음료 못지않은 정갈함을 연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