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녀석과 버스 터미널로 가서 강원도로 가는 막차를 탔다. 왠지 모르게 오늘이 지나면 다신 녀석
과 바다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버스 안에서 녀석의 어깨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우빈아."
"어."
녀석의 손을 세게 잡았다. 눈을 감은 채로 입술만 계속 움직였다.
"다 오면 깨워. 치사하게 먼저 가면 안 돼."
"시끄러우니까 그만 말해."
"쳇."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녀석이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깨울 때까지.
그냥 좀 평범하게 깨우면 안 돼니. 꼭 손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깨워야 했니.
울상을 지으며 녀석과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바닷가에 방금 전 일은 금새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옆에 있는 놈을 내버려두고 모래사장으로 뛰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바닷가엔 사람 하나 없었다.
난 모래사장에 앉았다. 그러자 어느새 따라온 놈도 내 옆에 앉는다.
"안 춥냐."
"왜, 너 추워? 교복 남방 벗어 줄까?"
"나 말고. 너 말야."
"아. 난 괜찮아."
그리고 우리는 까만 바다를 바라보았다. 새벽이라서 바람이 불 때 마다 몸이 으슬으슬 해 지는
걸 느꼈다.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있지. 우빈아. 난 죽으면 절대로 눈 안 감을 거야."
"드디어 미쳤구나. 그게 니 맘대로 되냐."
분위기라곤 눈곱만큼도 낼 줄 모르는 저 바보. 그냥 가만히 듣고나 있을 것이지.
"끝까지 좀 들어 볼래?"
"그래, 미친 김에 같이 좀 미치자."
녀석은 입을 꾹 다물곤 내가 말 할 때까지 기다린다. 조금 후 내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죽으면 너 못 보잖아. 너 절대 못 보잖아. 그러니까 눈 안 감을 거야."
"…."
"난 너가 학교 가는 거, 밥 먹는 거, 웃는 거, 화내는 거…다 보고 니가 눈감으면
나도 그때 눈감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내가 죽기 전에 눈감으면 죽어∼"
주먹을 꾹 쥐고 녀석을 쳐다보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은 풋 소리를 내며 작게 웃음을 짓는다.
그리곤 내 머리를 꾹 눌러 고개를 숙이게 만든 후 녀석의 기다란 한숨이 들려왔다.
"너무 감동시키진 마라…"
그러니까…가지 말란 말야…바보야. 너 일본 가면 나 절대로 눈 못 감잖아.
눈물이 찔끔찔금 나오는 걸 억지로 참고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두 눈 크게 뜨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녀석과 마지막으로 보는 바다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윤발아, 너무 늦으니까 민박집에서 눈 좀 붙이고 일찍 가야겠다."
"조금만 더 볼래…"
"나 춥다…."
"알았어. 들어가자."
그렇게 추웠으면서 지금까지 잘도 참았구나. 녀석의 춥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민박집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녀석한테 밖에 나가서 자라고 할 수 도 없는 일이었고,
아까 보니까 추위에 굉장히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어 한 방에 녀석과
단 둘이 있게 되었다. 으윽. 떨려.
"우빈아, 안 자니."
좁디좁은 방에 누우면 몸이 딱 붙게 될게 분명해.
대략 면적을 제 보니 두 사람이 누우면 좁을 방이었다.
"자야지. 너 먼저 자."
좁은 방에 장롱이 웬 말이냐. 그런데 장롱에 이불이 하나밖에 없다.
아무래도 여긴 부부가 쓰는 방인 것 같다. 젠장, 잘못 들어왔다.
"이, 이불이 하나밖에 없네."
"너 덮어."
"넌?"
"난 괜찮아."
"아깐 춥다며?"
"진짜 꼬치꼬치 묻네. 더워 죽겠으니까 너나 덮으라고."
안 덮으면 덮지 말 것이니 저 놈 괜히 성질이네.
난 이불을 덮고 벽에 최대한 몸을 붙여 누웠다. 하지만 내 옆에 녀석을 의식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너, 안 자냐?"
그제야 배게 하나를 꺼내더니 불을 끄곤 돌아눕는다.
"우빈아, 내일 아침에 바다보고 가자."
"…아까 봤잖아."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단 말야. 내일 아침에 바다 보자. 응?"
"…알았으니까 잠이나 자."
"응. 꼭이다!"
그렇게 밝은 듯 소리쳤지만 내일 당장 너가 물거품이 돼서 사라 질 것만 같아.
눈물이 또 다시 배게를 적신다. 입을 틀어막고 녀석에게 들리지 않게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 내일 아침에 같이 바다 볼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너랑 같이 바다보고 같이 인천에 내려가는 거지…? 너 혼자 가 버리면 저주해 버릴 거야.
울다가 지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살을 찡그리며
눈을 떴을 땐…내 옆에 자고 있을 녀석 대신…핸드폰이 놓여져 있었다. 우빈이의 핸드폰.
그리고 난 이불을 꾹 쥐고 엉엉 울었다. 어제 새벽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이 되었다.
너…진짜 뭐야…!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혼자 모래사장에 서 있었다.
이렇게 푸른 바다 나 혼자 보기 정말 아까운데…. 너랑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결국 나 혼자 모래사장에 서 있게 되는 구나…. 다음엔 너랑 같이 볼 수 있을까.
주먹을 꾹 쥐고서 눈물이 나올 까봐 눈을 크게 뜨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민박집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다섯 시간 정도 버스에서 자다 내렸다.
집에 들어오니 아빠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날 기다리고 계셨다.
난 멍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아빠의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니까.
이런 내 모습이 이상하게 생각하셨는지 아빠는 잔소리를 멈추시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난 방으로 들어와 교복을 벗이 시작했다.
그리고 치마주머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종이 쪽지였다.
[윤발아!]
그리고 종이 쪽지를 폈을 때 제일먼저 띄는 글씨. 이건 임우빈이 쓴 거 였다.
[윤발아, 이 오빠가 처음으로 너한테 편지 쓰는데 영광인 줄 알아라. 훗.
너무 감동 먹으면 곤란 한 거 알지? 하아… 윤발아, 나 오늘 아주 먼데 간다.
먼 나라에 가…. 그런데 너한테 끝까지 말못하고 그냥 가는 날 너무 미워하지 마.
내가 죄를 하나 지었거든. 누굴 정말 미치도록 미워 한 죄. 그리고 평생을 망친 죄…
그래서 죄 값 치르러 가는 거니깐…너무 미워하진 말라구.
도망가고 싶은데. 어디론가 꼭꼭 숨어 버리고 싶은데…그러기엔 지은 죄가 너무 크다.
그리고 나 그렇게 죄 짓고서 도망가는 뻔뻔스러운 놈 아니다? 너 남자 하난 잘 둔 거야.
훗. 윤발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윤발아…우리 정말 많은 일 있었지?
헤어지기도 하고 싸움은 좀 많이 했냐. 그런데 그것 보다 더 힘든 게 뭔지 아냐.
바로 너 잊는 거. 너 하나 잊는 거. 그게 제일 힘들더라….
하아. 나 거기에 가면 언제쯤 돌아올까? 언제쯤 너 볼 수 있을까.
나 그때까지만 참으려고. 그땐 너도 지금처럼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윤발아, 이제 가야겠다…안녕…]
눈물이 하염없이 편지 위로 떨어져 내린다. 저 바보는 끝까지 날 울린다.
너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리고…이렇게 종이 쪽지 남겨두면 다니?
그냥 가버리지 왜 이런 편지는…왜 쓰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벗던 교복을 다시 입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공항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너한테, 네 입으로 직접 들어야 겠어…마지막 너 한 번 더 봐야 겠다구!
난 정신없이 공항을 뛰어다니다 여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저기…일본으로 가는 비행이기가 몇시에 있죠?"
"네. 십 분 전에 비행기 떠났는 데요. 손님. 오후 2시에 있는데 남아 있는 표는 없습니다."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멍하니 서서 공항 안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안 돼 잖아요…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가버리면…나 너무 슬프잖아요.
이러는 거, 나만 슬픈 거 안 돼 잖아요…. 난 바닥에 주저앉아 한 손에 녀석이 쓴 편지를 쥐고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 울음소리는 커다랗게 공항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
.
5년 후.
아..정말 얼마 만이지? 4년만인가. 아니, 5년만이군….
다 그대로 있을 까…정말 보고 싶었는데….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의 부축을 받으며
공항로비로 나오는 임우빈.
"아저씨. 나 공중 전화로 데려다 줘요."
"네."
곧이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는 우빈을 부축이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데려 다 준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넣으며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다희의 번호를 누르려던 그의 손은
더듬거리며 다른 번호를 눌러버린다.
- Rrrrrrrrrr
[여보세요!]
조금 후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휘반. 우빈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장난 전화냐-0-! 나 끊는다!!]
"나다…. 잘 있었냐…"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휘반.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철이 들고, 남자다워 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애 같아졌단 말야. 우빈의 목소리가 새어나오자 잠시동안 전화기 너머로 휘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후,
[나가 누군데? 혹시 스토커-0-]
"생각하는 꼬라지하곤. 나다. 니 형님. 임우빈."
[우빈? 혹시 몇년전 말도 없이 일본으로 가버린 싸가지 없고 밥맛에 농구 좀 한다고
잘난 척 하고 다녔던 그 놈 맞아?]
휘반의 말에 우빈은 잠시동안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밥맛 없었냐."
[인정하는 거 보니 맞군! 이 자식 얼마만이야. 엉엉엉엉]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휘반, 우빈은 짜증난다는 듯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로
나오라는 말을 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도 질질 짜는 건 여전하군.
우빈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의 부축을 받으며 차안으로 몸을 들여놓는다.
보이진 않지만 이 냄새는 분명 인천이다. 한국이야.
씁쓸하게 웃으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차는 카페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차에서 먼저 내린 사내가 부축하려는 걸 거절하고 혼자 더듬거리며
카페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임우빈.
그때와 변한 게 없다면 창가 쪽은 한 열 걸음 정도 가야 될 거야.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자신이 생각한 데로 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들어왔다. 우빈의 시선은 그쪽으로 향해 있었다.
"우빈아-0-! 내가 사랑하는 우빈아! 어디 있니?"
쪽팔려. 저 자식 왜 저래. 우빈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곧 휘반이 뛰어오면서 우빈의 몸을 세게 안는다.
"이거 좀 놓지?"
"임우빈, 너 재수없어! 지금까지 연락 한번 없다니 말야!"
"앉아서 얘기하자. 징그러, 저리 꺼져-_-"
자꾸만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휘반을 떼어내고 자리에 앉았다.
쥬스 두 잔을 주문하고 그들을 서로 바라보았다. 곧이어 쥬스를 가지고 종업원이 왔다.
휘반은 쥬스를 잡고서 쪽쪽 빨아먹고, 우빈은 더듬거리며 쥬스 잔을 잡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씨발. 미끄러졌네."
이런 우빈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휘반은 깨진 쥬스 잔을 치우러 종업원이 치우고
다시 쥬스를 가져오는 동안 입을 열지 않고 우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후 그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빈아, 테이블 위에 있는 인형 이건 여전히 여기에 있다? 신기하지."
"…어? 응. 그렇네. 좀 바꾸지."
그리고 조금의 침묵이 흐르고 종업원이 쥬스를 다시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임우빈."
"…어?"
"어떻게 된 거야."
장난스러운 평소 휘반의 말투가 아니었다.
우빈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아래도 내려놓는다.
"벌써 눈치챘냐. 이거 시시한데."
"임우빈…정말…이냐."
우빈은 시선을 창가 쪽으로 돌리더니 말을 한다.
"그럼 가짜겠냐. 어울리지 않게 화내는 거냐. 훗."
휘반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금새 눈시울이 빨개진다.
"너 우냐? 울지마. 병신아. 그냥…빨리 오고 싶어서…아줌마한테 눈 맡기고 온 거야"
"아무리 그래도…너…"
"눈 같은 거 없어도 살 수 있어. 눈 말고 심장을 떼어낸다고 해도살 수 있어.
그 녀석만 있으면…. 너도 알잖아."
"…."
"그 녀석이 심장이 깊이 박혀있어서 그 녀석을 빼내면 난 죽어. 5년동안 나 죽었잖냐.
이제 살아야지. 숨 좀 쉬면서…."
그리곤 더듬거리며 다시 쥬스 잔을 잡았다. 이번에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잡았다.
쥬스를 마시고 휘반과 우빈은 어디론가 걸어간다. 우빈이가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다희가 알바를 하는 카페 였다. 휘반이 먼저 들어가고 우빈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라가 꽂혔다.
"헤이, 걸∼"
"아씨. 지성하, 너 또 왔니? 안 바빠? 연예인 한다는 놈이 일도 안 하고 매일 여기에 찾아 오냐?"
"내가 있는 것 만 으로도 돈이잖냐. 훗."
"말은 잘 한다. 확 매니져 오빠한테 너 여기있다고 꼬지를 까보다!"
"이거 너무 한데? 오늘 몇시에 끝나? 져녁 살게."
"그래, 꼬지르는 건 밥 먹고 하지 뭐. 6시에 끝나니까 그때 보자."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5년 후 난 앞 못 보는 장님이 되었는데
그 녀석은 연예인이 되어있었다. 너무 그 녀석과 비교가 되잖아.
젠장, 나 다시 왔는데. 그 녀석 보려고 다시 왔는데…괜히 왔네.
반겨 줄 사람도 없는데…나 괜히 왔네. 더 아프잖아…. 하…
지금 그들의 모습이었다.
유명 스타가 되어 다희옆을 지켜주고 있는 성하, 대학생이 되어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평범한
여대생 다희, 이젠 더 아프기만 한 우빈. 그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0- 번외편이 있거든요=_=
1. 다만, 사랑합니다.
2. Girl's Diry
3. 다시 만난 날
이렇게 세 가지 거든요-0-!
기다려 주세요~!※※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연상 연하 연애법※65(完)
소녀^-^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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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0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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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ㅠ_ㅠ/ 번외기대할께요 -0-! 우빈이 눈 어떻해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