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포츠의 시즌입니다(이제 곧 가을야구!, 좀 있으면 농구 시즌도 시작~). 주말마다 지하철에는 각양각색의 야구팬들이 유니폼, 모자, 응원도구를 들고 야구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유니폼의 컬러와 로고만 봐도 어느 팀의 팬인지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수 만명의 사람들이 오늘도 야구장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도대체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자기 엉덩이보다 작은 좌석에 앉아 나랑 사적으로는 아무 친분도 없는 선수들을 열광적으로 응원하게 만드는 걸까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유니폼을 입고 타 지역의 구장까지 원정응원을 자기 돈을 들여 가게 만드는 걸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비싼 유니폼을 입게 하고 걸어다니는 대기업 브랜드 광고판 역할까지 하는 이유는? 그리고 스포츠가 뭐길래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처럼 야구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의 힌트를 주는 심리학 연구가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0^
1. 팀 응원은 자존감을 고취시킵니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 속할 때 더욱 큰 자존감을 얻습니다. 그래서일까요? Cialdini와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구단이 졌을 때보다, 승리했을 때 다음 경기에서 (혹은 집으로 돌아갈 때) 해당 팀의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승리한 팀의 팬들은 흔히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1인칭 대명사를 쓰곤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 팀의 수비는 최고였어!” 같은 식으로 말하죠. 하지만 팀이 졌을 땐 3인칭을 씁니다. “‘그들’은 오늘 수비를 못했어. ‘그들’은 점수를 못땄지”
한편, 자아존중감을 향상시키고자하는 욕구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큰 무언가와의 연결을 찾게 만듭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우리는 스포츠팀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일시는 ‘확장'이 됩니다. 예들 들어, 대한민국 축구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처럼 말이죠.
그 때 우린 말 그대로 ‘하나'가 되었고 자존감도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습니다. 왜일까요? 내가 ‘우리'라고 동일시한 팀의 성적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고 무엇보다도 그 팀이 일개 축구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공동체를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즉, 스포츠 팬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라는 더 큰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그 팀의 성과와 실패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확장된 정체성'을 통해 우린 평상시에는 얻기 힘들었던 한층 고양된 자존감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2002년에 경험했듯이 말이죠.
2. 팬질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켜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속의 욕구는 앞서 설명한 자존감의 욕구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소속감은 인간의 필수적인 욕구이고, 이를 충족하는 한가지 방법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징적인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욕구는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인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Gardner et al., 2000) .
예를 들어, 내가 두산 팬이라면 두산베어스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LG 팬이라면 LG트윈스 티셔츠를 입고 잠실로 향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묘한 연결고리가 생긴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이러한 연결성은 나와 다른 소속감과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더욱 강해집니다.
McGuire와 동료들의 연구에서도 스포츠팀은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들 중 다른 성별의 구성원들 숫자가 더 많을 때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혼자만 여자인 아이는 자신의 ‘여성성'과의 동일시가 더욱 강해지고, 반대로 여자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남자인 아이는 자신의 ‘남성성'과의 동일시가 더욱 강해집니다. 스포츠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기 위해 타 구장으로 원정을 가서 절대 다수의 홈팬에게 둘러쌓인 상황일 때, 우리의 소속감이 홈구장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지는 것이죠.
이러한 연결성의 욕구가 가진 힘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응원가 부르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다 같이 하나의 곡을 하나의 목소리로, 하나의 톤으로 따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경기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열광을 공유하는 타인들과 함께 집단적 경험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3. 임의적 충성은 더 큰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게 합니다.
A팀의 팬들은 무언가 복잡하고 대단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그저 A팀 근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A팀의 팬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대구에서 살면 삼성라이온즈의 팬이, 부산에 살면 롯데자이언츠의 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처럼 그냥 임의적으로 형성된 듯 보이는 정체성이 평생 지속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임의의 이데올로기들로까지 확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지명타자 제도를 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과 캔자스 시티 로얄스 팬이 대판 설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카디널스 팬은 반대자였고 로얄스 팬은 옹호자였죠.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러한 룰의 도입과 운영은 사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각 팀들이 속한 ‘리그' 차원에서 결정되어 운영되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팬은 썰전을 벌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소속감이 ‘팀’에서 ‘리그’라는 더 큰 단위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카디널스는 내셔널리그에, 로얄스는 아메리칸 리그에 속해있음).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이러한 현상은 종교나 다른 이데올로기들에서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기독교나 자본주의에 대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물었을 경우의 답변과, 인도나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말하는 관점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국적이라는 정체성은 임의적이지만(태어날 국가를 미리 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러한 국적의 정체성이 종교나 자본주의 같은 다른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종교, 경제, 문화와 규칙들이 “최선"이고 “옳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그냥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속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이지, 그것이 본질적으로 최선이고 옳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념이라는 것은 소속이 어딘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맺음말
스포츠 팬질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보다 큰 사회적 소속감을 누리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팬질은 보다 큰 이데올로기로 확장되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팀 혹은 공동체를 ‘절대 진리'의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나' 또는 ‘우리'가 아닌 ‘타자'에 대해 쉽게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팬질'을 즐겁게 하되, ‘타 팀', 혹은 ‘타 팀의 팬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즐기는 다 같은 ‘팬'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일개 스포츠 ‘팀'을 넘어서 더 큰 공동체(지역사회, 국가, 지구촌, 나아가 우주까지!)의 일원이라는 것, 우리의 팬질은 어디까지나 자존감과, 소속감을 높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 잊지마세요!
*본 글은 Psychology Today에 게재된 Allen R McConnel Ph.D.의 <The Psychology of Sports Fandom> 원문을 번역한 후 국내 사례를 집어 넣고 이해를 위한 설명을 추가하는 등 가공하여 다시 쓰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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