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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인 광고.
사무실에 결원이 생겨서 사람인이라는 싸이트를 통해서 구인광고를 냈습니다.
그러곤 이래저래 딴 일 처리한다고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후스콜에도 뭔지 안 뜨고, 그냥 일반 핸드폰 번호이길래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theo : 여보세요.
??? : 아, 이거 어떻게 하는거예여?
theo : 네? 뭘...?
??? : ??? 이거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어서 전화했어여
theo : 그러니깐 뭘....? 뭘 어떻게 하는건지...?
??? : 사람인 보고 전화했어여! 사람인 보고 있는데, 원서 접수 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거예여?
theo : 아... 저희는 사람인 양식을 안써서, 저희 양식 올려놨는데 안보이시는가요?
??? : ??? 저는 모바일이예여! 어떻게 해야 접수 할수 있어여?
theo : 어... 그게.... 모바일로는 첨부화일이 안보이는지 까지는 제가 모르겠는데, 어차피 출력하셔서 우편으로 보내셔야 되는거라
서, 결국은 pc로 보셔야 될겁니다.
??? : 넹! 알겠어여! 그럼 제가 컴터로 볼께여!
(뚜뚜뚜)
뭐 약간(? 상당히) 당황스러웠을뿐 기분이 나쁜것도 아니였고. 예의가 없다, 개념이 없다, 이렇게 비난하고 매도할 일은 아닌것 같고. 그냥 사회경험이 전혀 없는 사회초년생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마 이 분이 지원을 한다면 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잘못된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할 스트레스를 감당할 마음은 없거든요.
근데. 저 맥락없는 말투가, 저 대책없는 젊음에서 나오는 해맑음이 참... 귀엽긴 귀엽더군요ㅋ
* 단체급식소의 사정.
얼마전 돈까스 소스 관련해서 글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관련해서 도움 주신 분들께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단체급식소를 제가 직접 한다고 하면 좀 무리가 있겠지만,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에 단체급식 나름의 사정에 대해서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물론 단체급식을 이용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굳이 이해해 줘야할 이유가 없는 부분이라고 할수도 있을꺼고요. 하지만 어째서. 왜. 단체급식은 이따위인가.. 라는 의문이 드시는 분들께 나름의 사정이라는걸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는 굽는 메뉴가 매우 힘듭니다. 아주 단순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계란 후라이 하나 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살짝 생각을 바꿔서, 500명정도 급식을 하는 급식소에서 계란 후라이를 한다면 5분 * 500개 = 2,500분, 즉 4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됩니다. 물론 단체급식을 하는 곳에서 사용 하는 후라이팬은 대형이다 보니 한개씩 구워낼 필요는 없고, 대충 잡아서 한번에 10개를 구워낸다고 생각해도 4.2시간은 소요됩니다. 한꺼번에 20개는 구워내야지 2.1시간, 그럭저럭 해볼만한 메뉴가 되는거죠. 그러니깐 500명 정도의 단체급식을 하는곳에서 점심 메뉴로 계란 후라이가 나온다면 조리원 한분은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급식이 나가기 직전까지는 계속 계란 후라이를 구워내야지 겨우 계란 후라이 한장이 급식판에 놓일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문제가 있다 보니, 대부분의 굽는 요리들은 다른 방식으로 조리됩니다. 계란후라이는 계란찜으로 바뀌고, 생선구이는 생선튀김으로 바뀝니다. 가끔 글이 올라오는 군대 식단중에 조기튀김이라는것도, 생선을 숫자에 맞춰서 구워낼 방법이 없다보니 어쩔수 없이 튀겨낸 결과물일겁니다. 특히 생선구이 같은 경우에는 기름도 엄청 튀고 구워내는 난이도도 높은편인데다가, 막 구워낸게 아니면 맛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일 쉬운 해결책은 조리원의 숫자가 충분할만큼 많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인건비=급식단가) 그나마 현실적인 해결책은 오븐입니다. 완전히 굽는 요리를 대체할순 없지만 어느정도 오븐으로 대체가 가능한 구이 요리가 많거든요. 위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생선요리도 오븐으로 하면 튀기지 않아도 충분히 급식할 수준의 음식이 나옵니다.
둘째는 간을 맞추는게,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다는겁니다. 다들 알고 있을, 각자의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도 물론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음식간에 대해서 설문조사라던지 개별면담을 해보면 의외로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예를들어 음식을 전반적으로 짜게 먹는 A가 있고 심심한 음식을 선호하는 B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상세하게 물어보면, 어떤 음식은 더 짜게 먹는 A조차 짜서 손을 못대겠다고 하는데 B는 딱 좋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아주 특별난 경우인것 같습니까? 의외로 굉장히 흔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고심해본 결과로는 전반적으로 짜게 먹는 A는 국은 싱겁게 먹는편이고, 대부분 싱겁게 먹는 B는 국은 또 짜야 되는 식인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는 나물은 짜야 되고, 누구는 김치는 싱거워야되고, 고기는 싱거워야되는데, 생선은 짜야되고, 누구는 국은 짜게 먹는데 삼계탕엔 소금간이 아예 없어야되고 등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니깐 "나는 짜게 먹는 편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단순하지만, 상세내역을 따지자면 "난 국은 짜게 먹고, 고기는 싱겁게 먹고, 김치는 짜게 먹고, 계란요리는 싱거운게 좋고, 소세지는 짠게 좋지만, 나물은 싱거운게 좋다" 뭐 이런식으로 된다는 겁니다.
이는 평소에 먹는 집밥으로 생성된 선입견이 고스란히 적용되는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모든 메뉴에 동일하게 절대적인 염도의 수치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자기에게 각인되어있는, 익숙해져있는 메뉴의 염도에 따라 "짜다" 혹은 "싱겁다"라는 판단이 결정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인이 판단하는 적절 염도라는건 개별메뉴마다 다 다르게 적용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단체급식에서 간을 "적당히" 맞춘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가 됩니다. 특정 메뉴에 특화되어있는 음식점이라면 모를까 수백가지 메뉴를 만들어 내는 단체급식에선 답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최선은 적당히 심심하게 음식을 내고, 간장, 소금, 소스 등을 개별 배급해서 자기가 알아서 자기 입맛에 맞춰서 간을 맞추는것 뿐입니다.
셋째는.. 누가 그랬던가요? 세상을 움직이는건 정의도 신념도 아니고 예산이라고. 결국은 단가입니다. 가끔 잘나온 급식이라고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거의 확실히 단가 자체가 높아보이는게 많습니다. 일반 사업체 같은 경우에는 식비는 거들뿐, 자체 운영비를 따로태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 쪽은 아예 비교하기가 힘들고요. 순수하게 내는 식비 만으로 운영되는 곳은 결국은 급식의 질에 가장큰 영향을 주는건 단가일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들어 지금 제가 일하는 곳은 1식당 4,000원을 받습니다. 그 중에 10% 가량은 운영비(전기세, 상수도요금, 그외 기타 소모품 등등), 15% 가량은 인건비로 빠집니다. 그럼 실질적으로 식재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1식당 3,000원입니다. 그냥 3,000원들고 내가 한끼를 해결해야 된다면 이건 답이 없는 소리지만, 단체급식의 특성을 고려하면 식품비 3,000원이 작은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금액이 아니라는거지 그렇다고 아주 넉넉한 금액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고기가 나오면 단가가 확 오르는게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고 풀만 멕일수도 없습니다.
제일 골치가 아픈건 부식 종류입니다. 조그마한 음료 하나, 빵 한조각 나가면 몇백원은 그냥 훅 날아갑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심한건 과일... 과일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높은편인데, 과일 단가가 단체급식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일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들어 포도 반송이 정도를 부식으로 제공해준다면 그날은 무조건 식품비는 마이너스 입니다. 그렇다보니 상대적으로 단가가 싼 음식이 나가는 날이 있어야지 과일을 부식으로 넣을수 있다는건데, 먹는 입장에선 항상 과일이 부족하게 느껴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뭐 답이 없습니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는 한계가 명확할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한계가 명확함에도 실무자들의 최선의 노력이 더해지면 결과물은 조금 다를순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비슷한 금액의 돈을 내고도 천차만별의 급식이 제공되는 거고요. 근데 이것 역시 눈가리고 아옹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가끔 노량진 정식 이런 사진 올라오지 않습니까. 제가 봐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상상하기 힘든 퀄리티의 음식 사진이 올라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답은 잔인하지만 명확합니다. 재료를 최대한 싼걸 쓰고 대신 최대한 괜찮아 보이게 잘 포장하는거죠. 노량진에서 나오는 밥이 친환경쌀로 만들어진 밥일까요, 제육이 한돈 냉장육일까요.
실무자의 노력에 따라 급식의 질이 충분히 달라질수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그 역시 한계는 존재한다는 겁니다.
* 술자리.
사무실 꼬맹이와 덜꼬맹이 둘이서 어느 한 주말에 술을 마실꺼라고 하더군요. 저도 오라고 하긴 하던데, 나이 차이 한참 나는 직장 상사가 주말에 지들끼리 노는데 끼어봤자 좋을거 없을거 같아서 안간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저는 친구랑 영화 한편보고 국밥이나 한그릇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혀는 있는대로 꼬여서 어디냐고 왜 안오냐고 머라머라 그럽니다. 아니 간다고 한적이 없는데 왜 내가 안온다고 욕을 먹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꼬맹이 둘이서 술 먹고 있는데 너무 많이 마신것 같아서 걱정이 되더군요.
일단 친구 보내고, 그 자리로 갔습니다. 이미 맛탱이가 가있더군요. 난 소주 한잔도 안마셨는데 이미 만취가 되어있는 두 꼬맹이랑 술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이제 말 놓을때도 되지 않았냐, 부터 시작하더군요. 맘대로 하라했더니, 꼬맹이는 주변에 오빠가 많은지 오빠로 부르기 시작했고, 덜꼬맹이는 주변에 선배가 많은지 선배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니는, 아. 참 괜찮은 사람인데, 다 좋은데. 나도 선배 좋아하는데, 근데 하나. 너무 다 안다. 눈치도 빠르고 사람 마음도 잘 읽고, 그렇게 우리를 읽어서 미리 다 배려해주고 편하게 해주고 잘 대해주는건 좋은데. 그렇게까지 다 알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남자는 알아도 좀 모른척 하고, 묵묵하게 있을줄도 알아야지 사람이 왜그러노 도대체."
어.. 제가 저의 단점 지적을 수없이 많이 받아봤지만, 이건 상당히 신선한 관점의 단점입니다. 눈치가 빠르고 마음을 잘 아는것도 단점이 될수 있군요. 제가 어릴때 재미있게 봤던 왓위민원트의 멜깁슨은 여자를 이해하면서 꽤 괜찮은 사람이 될수있었는데, 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봅니다.
"그래 오빠야는 한번씩 무섭다. 오빠야가 내 이뻐하는것도 알고,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구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란것도 알고, 내가 잘못했으니깐 야단치는것도 아는데. 날 너무 빤히 잘 아니깐, 내가 숨기고 싶은것들, 말하지 않은것들까지 다 알고 있으니깐, 어디 도망갈데가 없다. 그럴때면 한마디도 할수가 없어서 숨이 막힌다."
이건 신선하진 않습니다. 간혹 들었던 얘기 같아요. 제가 이런게 절정으로 발휘될때가, 화가 났는데 화를 삭이고 차분하게 말할때예요. 예를들자면 그런겁니다. 나는 이래저래해서 요래조래 했는데, 너는 이러저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하지 않았다. 뭐 이런식으로 따지고 들어서 말할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때를 말하는거 같습니다.
뭐 어찌됐건 이런건 좋은거 같아요. 그네들이랑 잘 지낸다고 하더라도 또 이렇게까지 가슴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건 쉽지가 않은데, 비록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런 속내를 털어놓을수 있고, 제 입장에서는 그 발가벗은 감정들을 엿볼수 있는건 좋은것 같아요.
저 몇가지 이야기 이후로는 그냥 술취해서 하는 이야기들.. 사무실에 누구누구 재수없지 않냐, 걔가 이쁘냐 내가 이쁘냐, 뭐 이딴 소리들을 늘어놓는것 까지도 괜찮았는데, 이것들이 남자친구 없은지 꽤 되서 그런지 자꾸 스킨쉽을 하더군요. 오빠 니도 이렇게 젊고 이쁜 여자들이 주말에 술먹자고 불러내고 손도 잡아주고 하면 좋잖아, 로 시작되어선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팔짱끼고 앵기고 뭐 그랬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죠, 11살 9살 차이나는 여직원들이 애교떨고 하는데 싫을리야 있겠습니까. 서로 꺼리는 사이도 아니고 사적으로도 잘 지내는 사이였었고, 술에 취했으니 하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별 생각없이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그렇다고 뭐 더 이상 진전되거나 실수할 꺼리도 없었고요. 그냥 술자리에서 할수 있는 가벼운 스킨쉽들이였습니다.
* 승진.
뭐 어찌하다보니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하지 못해 뭔가 이상합니다만, 별반 오르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내가 잘해서 오른것도 아니고, 뭐 이래저래 좀 복잡하게 엮인게 많아서 그대로 즐거운 일은 아니였습니다.
아뭏든 승진을 하게 되었고, 하나의 작은 부서를 책임지는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승진을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제가 잡았던 포지션이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문제가 될것 같더군요.
그러니깐 그런겁니다. 이때까지는 제 위에 실장님이 계셨으니깐 실장님은 부하직원들과 한걸음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총괄을 해주시고 중심을 잡아주시고, 저는 그런 실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부하직원들이랑 격없이 가까워지고 친분을 넓혀서, 실장님한테 못하는 이야기도 저한텐 다 할수 있는, 그런 사이로 만들어놨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부하직원들을 하소연할 곳이 생기고, 직장에서도 심적으로 기댈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뭐 꼭 그런 계산적인 생각 이전에 제 성향 자체가 격식없이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는 그 포지션이 맞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덜컥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부서의 장이 되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내가 여태까지 했던것 처럼 부하직원들이랑 허물없이 지내면서 내가 맡은 부서를 잘 운영해 나갈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봤을때,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잘 한 일이라고 앞으로도 이런식으로 잘해나갈수 있을꺼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자리이고 제가 괜히 지레 겁을 먹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여태 잡은 포지션은 저 위에 한걸음 떨어져서 약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존재해 있던 실장님이 있기 때문에 잡을수 있었던 포지션이지 부서의 장으로 취할 포지션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 다시 술자리.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승진 후 첫 전체 회식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자리를 막 섞어서 먹다보니 제 부하직원들이랑은 떨어져서 앉게 되었고 앉아서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덜꼬맹이가 제 옆에 털썩 앉아선 절 빤히 쳐다봅니다.
"..너.... 괜찮지..?"
"아니!? 안괜찮은데!?!!??!!? 나 맛탱이 갔는데!?!?!?! 선배 니는 왜 혼자 따로 앉았는데?? 내 술한잔 안줄꺼가? 엉?"
헐...... 일단 분위기 파악 좀 하라고, 귀에 대고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둘이 있는거 아니잖아, 주위 한번 봐라, 니가 나한테 그래도 되는 자린지"
"아 몰라!!! 술달라고 술, 선배 니는 말이 너무 많다. 뭐 그래 복잡하노 술 달라고 술!!!"
급히 꼬맹이를 찾았습니다.
"야이 미친놈아 언니가 맛탱이가 갔으면 니가 챙겨야 될꺼 아니가, 아 꼬라지를 봐라, 얼른 옆에 붙어서 안챙길래"
"오빠야!!!! 우리 언니야 한테 왜 카는데!!! 회식자리에서 술먹는게 뭐!"
....씨발.
아니 걔들이랑 일한지 한 4년 되는데, 회식자리에서 술취한건 본적이 없어서 방심을 했었어요.
일단 둘을 옆에 앉히고, 주위에 안들리게 조용조용 말했어요.
미쳤냐? 죽일꺼다. 닥쳐라. 가만히 있지 않으면 내가 월요일날 출근하면 너희를 거꾸로 매달것이다, 남자한테 싸대기 맞아본적 없지? 뭐 주로 이런 원색적이고 저급한 협박과 약간의 욕설이였는데, 안듣는 정도가 아니더군요.
"아 머라는거야.." 그러면서 갑자기 손을 꼭 잡더니 팔을 꼭 끌어안는데, 워낙 보는 눈이 많은 자리라 시껍하겠더군요. 누가 보면 오해할까 싶어서 팔을 슬며시 빼는데 딱 이런 느낌.
주변 시선이 어떤지는 신경도 안쓰고 그저 팔뺀다고 지랄 하는 덜꼬맹이를 무시하고 주위를 슬며시 둘러봤는데,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우리끼리 있을때야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땐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더군요. 재빨리 자리를 피했지만, 뭐 이미 볼 사람 다 봤고 전해지는 말까지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겠죠.
윗사람들은 윗사람들 대로 그런걸 탐탁찮아 할것이고, 또 다른 여직원들은 다른 여직원대로 저나 다른 여직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게 너무 뻔합니다. 승진하자마자 아랫사람들이랑 같이 담배피지 말라고 했던 상사분이 봤을땐 얼마나 기도 안차는 장면이였겠습니까. 또 꼬맹들이랑은 사이가 별로였지만 저랑은 나쁜게 아니였던 옆부서 여직원들은 그 날 이후로 저를 보는 눈빛이 차가워진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래서 사무실에선 일이나 해야지 너무 친해지면 안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격식같은거 안따지고 그냥 사무실에서 친한 정도를 넘어서 사적으로까지 가까워져버린 지난 제 행동들이 잘못된 일이였나 싶기도 하고요. 최근 승진까지 겹치면서 안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더더욱, 생각이 많아 지는 술자리였습니다.
* 상사.
저도 충분히 압니다. 직장상사라는 존재가 어떤거라는걸요. 일이 힘든거 보다 사람때문에 힘들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하고요.
그런데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고 했던가요. 저도 승진을 하고 보니, 제가 몰랐던것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것들이 보입니다. 도대체 왜 저러시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 나는 절대 안저래야지, 했던 전실장님의 언행들이 조금씩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 그때는 이래서 그러셨던거구나, 이것때문에 그럴수 밖에 없으셨던거구나, 이런식으로요.
또 이게 의외로 되게 외롭습니다. 동료 직원들이랑 같이 술자리 안주로 씹을만한 상사가 없다는게, 옆자리에 앉아서 실없는 농담이라도 한마디 던질 상대가 없다는게, 어깨를 나란히 할 동료가 없다는게, 또, 가끔은 의지할만한 상사가 없다는게. 생각보단 더 외롭습니다.
그나마 저는 여태껏 쌓아온 부하직원들과의 시간이 있기에, 좀 나은편입니다만. 전 실장님은 저랑은 또 조금 달랐습니다. 저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이 들어올때는 이미 실장님이셨고, 나이차이도 상당히 많이 나고, 본인이 막 살가운 성격도 아니셨고 하다보니, 다른 직원들과는 항상 한두걸음은 떨어져 계신, 좀 멀고도 어려운 그야말로 직장상사였었죠.
그래서 문득 전실장님이 가여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외로우셨겠구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챙겨드릴껄, 이런 생각이 이제서야 비로소 듭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이렇지만 저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송곳 대사를 빌어서, 저도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그런 꼰대가 되어 있겠죠.
한여사님 일 하시면서 뭐가 가장 불편하세요?
지금은 과장님이요.
불편한 존재가 되는건 어쩔수 없더라도 적어도 이정도 상사는 되어야 할껀데.. 사실 잘 할수 있을지도 겁이 납니다.
이상하게도 승진을 하고 보니, 내가 승진을 하면서 잃어야할것들의 리스트는 확연히 보이고 그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생기는데, 정작 내가 승진을 하면서 얻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는 너무나 짧고 그다지 제게 가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말하기엔 돌 맞기 딱 좋은 이야기라.. 야, 나 이번엔 결국은 승진해버렸다. 아.. 짜증나 죽겠는데, 이거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말하긴 좀 뭐하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풀어놓을곳은 여기 비스게 밖에 없네요.
너무 배부른 투정이라 욕만 하지 마시고, 그냥 편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귀여운 꼬맹이들 부럽네요... 라고 하면 안되는거죠?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근데 정말 올라갈 수록 외로운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사원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외로워 보이더라구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는 잡담이네요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가되고 리딩을해야하고 지시를 내려야하며, 업무경험이 있으니 벌어질일이나 단점들이 보이니 언제나 좋은소리가 나올수가없으니 거북한사람이 되는거죠. 어쩔수없죠. 다만 그걸 잘조절하셔야겠죠. 싫은소리를 듣더라도 의지가 되고 이사람의 지시는 믿을수있다. 그리고 우리를 책임져주는사람이다 라는 믿음을 줄수있으면야 괜찮죠. 그리고 내가 꼰대가 되가는거아닌가 라고생각하는것만으로도 아직은 괜찮으신듯합니다. 저도 갈수록 꼰대가 되가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긴하더군요. 나이가들면 어쩔수없는거같습니다. 그리고 꼬맹이분들은 음..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쿨럭. 필력은 여전하시네요. 믿고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술술 읽혔어요. 특히 강아지랑 고양이짤이 너무 귀엽네요. ㅋㅋㅋ 그래도 술자리에서 꼬맹이들때문에 정말 식겁하셨겠어요. 진짜 꼬맹이가 맞네요. ㅋㅋㅋ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있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글 재밌게 정말 잘쓰시는 것 같아요
순식간에 다 읽었네요.
상사들이 부하직원들과 왜 선을 긋고 지내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하고.
좋으신분 같네요
잘 봤습니다 ㅎㅎㅎㅎㅎ
자랑 금집니다 ㅋ
외국은 실무자를 책임자 자리에 일부러 안올리는 경우도 많다더군요. 그사람이 관리자가 되는 것보다 실무자로 남는게 더 이익이라서... 우리나라에선 승진=관리자다 보니 아직 요원한 얘기지만요. 그래도 승진 축하드립니다ㅎ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자리를 만들죠. 정말 친해도 어쩔수 없이 어느정도 선은 있어야 겠다라구요.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하고 하는데 직장내에서 만큼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충분히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고 생각하시는 분이셔서 잘 해내실수 있을겁니다. 재밌게 읽었네요 ㅎㅎ
주욱 잘 읽고 있다가 사무실 여직원 두명과의 술자리에서 갸우뚱 하게 되네요. 그 자리는 아예 안가는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취했다지만 말놓는것도, 스킨쉽도 그렇고, 후일의 복선같은 사건이었네요..
승진축하드려요
꼬맹이분들과 한잔할 때 불러주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