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구 중계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그냥 몇년째 눈팅만 하다가 몇자 적어봅니다.
전 지금 한 지역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고 해마다 k리그 중계에 투입되고 있는 스탭입니다. 먼저 방송사 직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최근처럼 중계하는 채널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의 모든 원인이 프로축구리그를 중계하는 방송채널에 있다는 몇몇 분들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서 몇 자 적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국내 리그 중계를 볼 때마다 축구팬 분들이 하시는 말씀.. '영상이 구리다...' 이 부분은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20여대가 넘는 카메라를 동원하는 해외 리그와 기껏해야 10대 정도를 쓰는 국내 중계팀의 차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기억하실까요? 몇년 전 포항이 파리아스 매직을 일으키며 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 포항전용경기장에서의 경기를 말이죠. 사실 저는 그날 경기를 보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장비로도 전용구장과 비전용구장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으니까요. 일단 몇몇 전용구장을 제외한 경기장들은 대개가 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쓰고있기 때문에 루즈한 앵글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 포항에서 있었던 챔결 경기는 달랐죠. 축구전용 구장인데다가 경기장 스탠드 자체가 작기 때문에 상당히 타이트하게 찍혀 거의 '하이버리 구장(?!)' 삘을 전 느꼈으니까요.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김기동 선수가 상대편 공을 컷한 후 따바레즈에게 연결했을때 좌우 풀백 및 공격진들이 학익진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만약에 그 모습이 다른 종합운동장에서였다면 제가 그렇게 감동을 느끼며 보지는 않았겠죠? 이처럼 전용구장과 다른 일반 구장의 차이는 카메라에는 렌즈 구경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방송으로 볼 경우, 느끼는 체감의 정도가 하늘과 땅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몇몇 헬같은 월컵 구장은 규모만 너무 커서 만명이 넘게 와도 티가 안 납니다. 게다가 중계카메라들은 대개 태양을 등지고 중계를 하는데 (역광때문에..) 그러다보니 낮 경기의 경우엔 아무리 본부석에는 사람이 꽉 차도 맞은 편 관중석에는 텅~빈 웃지못할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제가 본 것만도 수차례였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관객집계 부풀리기 의혹도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나 우리 케이리그나 메인을 점하는 카메라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경기를 자세히 보시면 경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주카메라는 대개의 경우 카메라 세 대 정도 국한되어있음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축구는 경기의 큰 흐름을 보기위해서는 개개인의 플레이에 치중하기보다는 공 위주의 플레이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주로 원거리에서 패스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카메라가 메인을 맡기 때문이죠. (왜 위닝이나 피파할 때도 다들 캠 위치 원거리에 놓고 하시잖아요..ㅡㅡ;;;) 다만 우리가 흔히 느끼는 차이는 데드 볼 상황에서 나오게 되는 각종 화면들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피치를 둘러싼 여러 카메라에서 촬영된 영상을 미리 저장해서 보여주는 전문인력과 카메라 장비들을 통해 구현되는 것으로 물량공세 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지점에서 여러분들이 환호하는 선수들의 다양한 개인기와 표정들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구요. ㅜㅜ 그러나 저희 팀에게서는 어찌어찌 흉내낼 수는 있으나 절대로 똑같이는 따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남들 다 쉬는 주말에 저희 회사에 있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카메라와 거의 모든 스탭이 매달려 장비 탓 안하고 열심히 하려 하지만 차이가 나는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어떻게 쓰다보니 신세 한탄만 한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 저희도 더 좋은 장비,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면 좋겠지만 저희도 제 나름의 최대한의 역량을 투입한 거 였는데 라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아쉽게도 올해부터는 중계에 투입되지 않을 것 같지만 열심히 중계하는 다른 방송 채널분들에게 많은 지지와 응원부탁드립니다.
세비야훌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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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중계 사정이 점점 나아지길 기대합니다. - jhbaek - [119.149.xxx.232] |
03/04 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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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F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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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현지스텝분이군요.. 궁금한게 있는데 아챔같은 경우는 각나라 중계권을 딴 방송사에서 찍어서 아챔이 나가는 경우로 알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 경기만 앵글이 후집니다. 어제의 경우도 전북경기가 가장 경기력 좋았는데 불구하고 앵글이 케이리그앵글과 동일해서 굉장히 속도감이 떨어지고 지루한 면이 보였습니다. 수원경기나 서울경기는 호주,uae에서 찍었는데 앵글자체가 달랐습니다. 이건 카메라 대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앵글각도에서 차이가 심하다고 생각됩니다. - prima80 - [113.61.xxx.89] |
03/04 0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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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F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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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제 서울과 알아인 경기를 못보셨다면 한번 보셨으면 좋겠네요... 다양한 연출 이런 문제가 아니라 케이리그를 포함한 국내리그중계 앵글은 너무 정적으로 잡습니다. 반면 서울과 수원경기는 굉장히 속도감있고 박진감있었죠.. 경기자체는 그리 재미없음에도 말이죠.. - prima80 - [113.61.xxx.89] |
03/04 0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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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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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월드컵 구장 앵글에 뭔가 문제가 있는듯. 솔직히 02월드컵 생각해보면 울나라에서 열린 경기는 박진감넘치는 화면이 아니었다능. 반면 같은 02월드컵이라도 일본에서의 경기는 앵글이 상당히 박진감넘치게 잡혔음. ㅇ_ㅇ; 한국 월드컵 구장 각도에 뭔가 문제가 있는듯....;;;; 포항 스틸야드 >>>> 넘사벽 >>>> 상암, 대전, 전주, 수원월드컵 구장. 같은 전용구장이지만 스틸야드 각도가 짱임. 월드컵 구장 각도가 뭔가 전체적으로 에러임. - fcwinning - [115.22.xxx.166] |
03/04 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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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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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그쪽 현장일은 잘 모르지만 중계방송용 카메라의 화각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더 화각이 넓은 렌즈로 화면을 넓게 잡을 수 있을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아 이건 아닌가. ㅎㅎ 아무튼 방송국의 기술문제라기 보단 뭔가 월드컵 구장의 디자인이 에러임. - fcwinning - [115.22.xxx.166] |
03/04 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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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윤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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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월컵 구장의 중계카메라를 위한 미디어 부스위치가 다른 전용구장들에 비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런 이유로 풀샷을 담당하는 메인카메라가 좀 더 느슨한 앵글로 갈 수 밖에 없지요.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피엘도 느슨한 앵글로 관중석까지 잡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꽉 차보이는 건 후덜덜한 관중수도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경기장인 것 같아도 최근의 모나코 경기를 보면 잠이 오는 이유(관중이 없어서!!)와 같다고나 할까요? - ailee777 - [110.69.xxx.65] |
03/04 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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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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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윤대리//같은 중계부스 높이라도 이피엘은 피치와 관중석간의 거리가 가깝죠. 반면, 한국의 월컵구장은 전용구장임에도 피치와 관중석간에 거리가 이피엘구장보다 더 멀죠. 상암구장만 해도 피치와 관중석간에 거리가 멀구요. 정말 포항 스틸야드같은 그런 앵글이라면 보는맛이 더해질것같은데 말입니다. K리그가 재미없다는(그런 인식이;;;) 시작된게 02월드컵 이후 만들어진 월컵구장에서 중계되고 나서부터라는 점도 유의해야 할점인듯.
결론: 월컵구장 디자인x - fcwinning - [115.22.xxx.166] |
03/04 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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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윤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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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중이 포함된 화면이 시청자들을 더 흥분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리그는 몇몇 빅게임 외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죠. 게다가 전용구장이더라도 포항이나 광양 등을 제외하고는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 간격이... - ailee777 - [110.69.xxx.65] |
03/04 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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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윤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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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찌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아마 그래서 저도 몇몇 포항의 경기가 인상깊었나봅니다. ㅋ (물론 당시의 경기력은 대단했죠) 물론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운용을 잘 못하며 그 역시 헬이겠죠? (예: 작년 아챔 결승-스파이더캠만 주구장창 쓰다가 경기흐름을 끊은.../ 아시안컵 중계-아시아축구도 포장만 잘 하면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중계) - ailee777 - [110.69.xxx.65] |
03/04 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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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F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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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월드컵구장 미디어부스위치가 문제군요.. 이건 때려부수고 다시 만들수도 없고 아쉽네요 ㅜㅜ 확실히 포항이나 전남경기는 다른 월드컵경기장에서의 경기들과는 다른 박진감과 생생함이 느껴짐... 구장의 구조적인 문제라면 아무리 카메라대수늘려도 해결방법이 없는 건가요?? - prima80 - [113.61.xxx.89] |
03/04 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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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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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난 이런글 너무 좋아~~ 평소 알 수 없던 사실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정보ㅋ - aallsk - [220.86.xxx.104] |
03/04 0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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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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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중계진의 고충이 느껴지네요. 그래도, 님같은 분들이 한국축구의 밑거름이라 생각하시고 열심히 해주세염! - sonhh17 - [61.43.xxx.16] |
03/04 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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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짜 좋은글 같네요....이래서 전용구장이 필요함..현실 여건상 더이상의 많은 카메라 투입은 어려울거 같은데..이 분 말대로 전용구장만 더 만들어지고 경기가 이뤄진다면 카메라 각도는 자연스럽게 해결될거같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종합경기장도 국내의것은 외국것들이랑 다른게...외국종합경기장들은 관중석 경사를 높게 만들어놓는다고 하더군요. 즉 관중석밑에 콘크리트로 2~3미터정도 축대를 쌓아올리고 그위에 관중석을 얹어서 종합이라도 축구볼때 시야가 잘나오도록 만든다고 함. 그런데 우리나라는 운동장 바로위부터 관중석을 쌓아올려서 축구볼 시야가 잘 안나오기 때문에 관중들이 일부러 관중석 상단까지 올라가서 앉죠. 이때문에 같은 종합이라도 카메라각도에 차이가 날듯..
그래서 숭의아레나의 앵글이 기대된다는 ㅋㅋ
앵글도 앵글이지만 선수 개인의 순간적인 포착이라던지, 관중의 모습이라던지 굉장히 미흡한게 사실입니다.
화이트하트레인도 경기장 구조때문에 카메라 앵글이 좀 다르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