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원정에서 19년 만에 승리를 거뒀다. 2대0 정도라면 스코어 면에서 보기에도 굉장히 깔끔한 승리였다.
한국은 2승째를 확보했고 한준희 위원 말마따나 다음 이란 원정만 잘 견뎌내고 나면 월드컵 진출이 눈에 보일 정도로 바짝
다가왔다. 그래서 경기 내용은 둘째로 치고서라도 어제의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이다. 사실 어제의 경기가 19년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중동 원정, 특히 사우디 원정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그다지 나쁜 경기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좋았던 경기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경기였지만.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경기의 터닝 포인트는 하자즈의 퇴장 순간이었다. 7만명을 등에 업고 싸우는 사우디
선수들과의 심리적 전투에서 한국의 열한 명 선수들이 위에 설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심리적 압박감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던 한국 선수들은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이용수 위원이 말한 그대로 사우디는 최전방 스트라
이커가 퇴장당했을 뿐 경기의 전개를 바꾸진 않았다. 허나, 심리적으로 우위에 선 한국 대표팀은 그닥 변하지 않은 사우디를 상대
로 첫번째 골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로 공격적으로 바뀐 사우디의 뒷공간을 노려 두번째 골까지 이끌어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운재의 다리를 빼는 동작이 있기 전 하자즈의 발끝과 충돌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만약 심판이 예전같았다면
당연히 페널티 킥을 불었을 것이다. 이운재는 아마 퇴장당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거기서 심판은 '발이 닿기 전 먼저 시뮬레이션이
들어갔다.' 는 굉장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고 그것이 한국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운재의 발을 뒤로 빼는 액션이 그 판정을
불러왔는지 아닌지는 심판만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운재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며 '이게 경험이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운재 발탁논란을 스스로 없애는 순간이었다. 정성룡이나 김용대가 나왔어도 그런 플레이가 가능했을까?
골 장면은 그야말로 해외파 선수들의 클래스가 빛났다. 이영표는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주었고, 박지성은 이것이 맨체스터에서
배운 것인지, 아니면 진작부터 할 수 있던 것인지(!!) 어쨌든 환상적인 움직임, 페이크, 손기술, 트래핑, 크로스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영표의 크로스가 날아오는 순간 박지성은 사우디 선수의 앞으로 파고드는 듯한 움직임과 페이크로 상대 수비를
앞으로 끌어당겨 놓고, 슬쩍 뒤로 빠지며 왼손으로 사우디 선수를 밀어내며 자리를 잡았다. 가슴 트래핑, 그리고 반대쪽으로
올려준 강한 크로스까지. 첫 골에서 단연 빛난 건 박지성이었다.
두번째 골은 박주영이 만들어낸 골이었다. 역습 - 그 중에서도 아웃넘버 상황에서 골을 못 넣기로 유명한 한국 대표팀에서
오랜만에 터져나온 역습시 골이 아닐까 싶다. 염기훈이 욕심 부리지 않고 - 사실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염기훈이 30분만 더 뛰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슈팅했을 것이다. 하지만 염기훈이 공을 잡은 순간은 그가 '첫 볼터치'를 하는
순간이었고 그게 슈팅으로 이어질 자신감을 없애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옆으로 밀어주었고, 박주영은 뒤에서
돌아 나가는 기성용을 이용해 수비를 따돌렸다. 아크 바깥에서 정확하게 보고 감아찬 슈팅이 골대를 향할 때 골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그물을 출렁였다. 박주영 스스로의 기량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골이었다.
물론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허나 짧은 패스게임을 맞추는 데 사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이청용, 이근호와 같은 재능있는 공격수들이 등장한 것은 '기존의 답답한 게임' 에서 '드리블에 이은 활로 찾기' 라는
어찌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원했을 게임의 전개로 이어졌다. 허정무호의 경기력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아직도 많다.
하지만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허정무호로 월드컵에 진출해야 한다. 월드컵에 막상 나가는 감독이 다른 감독이
될 수도 있다. 거기까지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지만 허정무가 한국의 월드컵 진출을 이끌어야 하는 건 빼도박도 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평점 - 대한민국 선수들
이운재 : 6.5
- 액션은 통하면 트릭이고 통하지 않으면 퇴장일 뿐. 하지만 그 액션을 취할 수 있다는 자체로도 이운재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골키퍼이다.
이영표 : 7
- 단연 안정적. 경기 초반 시작하자마자 몸으로 두 개의 슈팅을 막아낸 장면이 없었더라면 경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팀에서 줄곧 오른쪽으로 뛰다가 왼쪽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선이 자주 겹치는 면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 수비진의 중추.
첫 골시 크로스는 빛났다. 포르투갈 전을 보는듯한 크로스.
강민수 : 5
- 이제 그만 빠져주지 않겠니? 허정무는 강민수를 왜 빼지 않는 것인가. 거칠고, 파울을 자주 하며, 수비시 걷어내지도 못하고,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선수도 못잡고, 그렇다고 해서 빠른 것도 아닌데!!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서 김치곤과 함께 '절.대.' 뽑히지
말았어야 할 선수. 우리 이제 그만 봤으면 해.
조용형 : 6
- 강민수 뒷처리 하느라 허겁지겁 우왕좌왕. 그게 경험이겠지만 차라리 강민수처럼 느긋하게 ... (아니 강민수는 그냥 느린거??)
일대일 상황에서 쉽게 제쳐지지 않았고 우측 좌측 가리지 않고 커버플레이도 빠릿빠릿. 하지만 걷어내는 상황에서 투박한
터치는 반드시 고쳐야 할 버릇이다. 나가도 좋으니 확실하게 걷어낼 것.
오범석 : 5.5
- 성장이 정체된 느낌. 포항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와 대표팀 오른쪽 윙백을 꿰찰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자리에 안주하게 되면,
성장도 없다. 분발해야 될 듯. 이영표가 오른쪽으로 오고 김치우나 김동진이 왼쪽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니만큼.
김정우 : 5.5
- 아 ... 눈물나는 부상투혼. 하지만 그것뿐. 김정우가 지금껏 중앙을 차지했던 건 피지컬에서 밀리더라도 축구 센스와 투혼으로
그것을 커버해낼 수 있다는 것과, 수비력과 공격력을 모두 어중간(?)하게 갖추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밀리는 피지컬을
센스와 투혼으로 커버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제발 몸을 좀 키워줘 ...
기성용 : 7.5
- 김남일이 좋지 않을 때의 모습이었지만, 이제 대표팀 중앙은 기성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격가담시의 드리블링이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고 끝까지 뛰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만 문제는, 그의 파트너가 김두현이 될 상황인데, 최소한 김정우가
보여주는 정도의 수비력을 유지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기성용은 어제의 레지스터.
박지성 : 6.5
- 체력적으로 많이 버거워 보였다. 아무리 박지성이라지만 일주일에 두 게임을 뛰고 사우디에 와서 사흘만에 또 풀타임 소화.
전반전 내내, 그리고 후반전 골이 들어가기 전까지 난 '박지성 바꿔야 될 거 같은데' 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만큼 발이 무거웠고
평소의 박지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장 완장이 상승 작용으로 작용했을까, 골 장면에서 그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말 맨체스터의 저지를 입는 모습은 보기 힘들 듯.
이청용 : 6
- 드리블링은 좋았다. 하지만 전진패스, 크로스, 마지막 슈팅의 질을 조금 더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은 양 윙어
중 한 자리를 꿰찬 듯 보인다. 이천수, 설기현이 정상 컨디션을 찾더라도 이청용은 이미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
이근호 : 8
- 사랑해요 이근호. 끊임없이 뒷공간을 노리는 움직임, 정성훈이라는 타워를 세워두고 그 주위의 행동반경에서 민첩하게,
한 발 빠르게 공을 탈취해내는 능력. 사우디의 피지컬 좋은 수비수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몸싸움. 누가 봐도 나가는 공을
끝까지 살려내는 투지. 골이 없었어도 넌 평점 8.
정성훈 : 6.5
- 타워로서의 역할을 잘 해줬지만, 그 이상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 이상이 아쉽다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조재진과
다를 게 없게 된다. 대전 시절부터 지금의 부산 시절까지 '득점력' 부분에서 물음표를 달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한 골이 빨리
터져야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SUB
박주영 : 7
- 경쟁자가 이근호라니 ... 이게 뭔. 이근호의 포쓰를 넘어서기 위해서 자신을 증명한 골은 환상적이었다. 전체적인 평가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
염기훈 : 6
- 어시스트. 그리고 시간 부족.
첫댓글 이미 공격진은 박지성-이근호를 축으로 개편이 거의 완료된 듯 싶네요. 이동국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정성훈이 향후 A매치에서 어떠느냐에 따라-박주영도 추가- 타겟맨의 얼굴을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저돌적인 이근호와 에이스 박지성을 교체할 만한 카드가 별로 없을 듯 싶습니다..
박주영 이근호 둘다 잘하니...행복한 고민이군요^^
이근호 최근 A매치 4경기에서 5골.. 물이 오를대로 올랐군요
진짜 강민수는 왜 나오는건지.. 강민수 나올때마다 수비 개 털리겠구나 하고 보고있음..
강민수 조용형 둘다 별로긴 했는데 우리나라 실점위기때 조용형 선수가 전부 중심에 있었죠.1.시작하자 마자 코너킥 허용했을때 조용형선수 위치선정 미스로 완벽한 해딩을 허용 이영표선수의 육탄방어 없었으면 실점하는 위기,2.사우디 9번 교체투입하자마자 패널티에어리어 정면에서 조용형선수 협력수비중 한번에 재껴져서 위협적인 중거리슛허용 3.후반43 걸음이 원래 느린건지 밍기적거리다가 멀리서 대쉬하는 사우디선수에게 아찔한장면 연출
조용형 강민수 그래도 어제 상당히 견고한 편이었다고 보는데..
강민수 선수 매우 괜찮았는데요... 기성용-김정우 둘 다 수비적인 면에선 부족함이 있는 선수들이라 강민수가 앞으로 나가면서 마킹이나 컷팅을 상당히 잘해주었는데 말이죠...
박지성선수는 잘햇다고 봅니다.날카로움이 uae때와 비교하여 예리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플레이로 수비,공격 모두 후반에 활동량이 줄어든 모습이었지만 대한 민국 에이스 다운 모습이었다고 봄..
강민수는 그래도 현재 한국대표팀에서 괜찮은 중앙수비수인데요!!! 아직 대체자가 없다고 봄..
강민수를 보면 지난시즌 벤하임을 보는것같아서 영..
곽태휘(부상이었던가요;)가 복귀했으면 싶고... 갠적으로 이강진은...?;;
갠 대표팀 오면안됨 무조건 부상크리 ㅡㅡ;; 갠적으로 좋아하는선수지만 국대는 오지말길 허나 국대서 뛰는거 정말로 보고싶은 선수중에하나..
후반끝나기10분전 수비력은 정말 꽝이엇던듯....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A-ROD님(흔히 말하는 롸드님)이신가요? 지난번에 영영 떠나실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다시 뵙게되니 참 반갑습니다.
박지성 존니 잘하든데
박지성의 클래스가 다른 모든선수(사우디포함)보다 한두단계 위였는데 무슨소리인지.. 강민수는 좀 이제 그만 국대에서 빠져서 리그에 전념해주기를 바라고..김정우는 피지컬을키우던가 국대은퇴를 선언해주던가..엄지성훈. 골을넣지 못하는 전봇대는 조재진으로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