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국사 수심결에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이라 하였다. 다만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견성이란 의미이다. 반야심경과 금강경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소득(無所得)’, 얻을 것이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게 견성이고, 얻을 수 없는 게 깨달음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곧 아는 것이고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이 아니고 깨달음이 아니다.
‘안다’와 ‘모른다’, ‘얻는다’와 ‘얻지 못한다’를 동시에 놓아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안다’도 이것이고, ‘모른다’도 이것이다. 얻는 것도 아니고,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얻는다’도 여기에서 나오고, ‘얻지 못한다’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것은 알 수도 없고 알지 못할 수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얻을 수 없지만 얻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눈앞에 분명한 이 하나의 진실은 알 때도 그러하고 모를 때도 그러하다. 늘 있는 것이니 얻을 수 없고 얻지 못할 수도 없다. 모든 차별이 쉬어져 도무지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인들 전할손가?” 이 알 수 없고 전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 털끝만큼이라도 알았다,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다시 30년은 더 참구해야 옳다. 다시 더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어야 그나마 나은 것이다.
출처 : 심성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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