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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머빈 르로이 (Mervyn LeRoy 1900.10.15-1987.09.13)
제작 - 샘 짐벨리스트 (Sam S. Zimbalist)
각본 - 헨릭 셴케비치 (Henryk Sienkiewicz), 존 리 마힌 (John Lee Mahin) 외,
촬영 - 윌리엄 V. 스칼 (William V. Skall), 로버트 서티스 (Robert Surtees)
음악 - 미클로스 로자 (Miklos Rozsa)
미술 - 휴 헌트 (Hugh Hunt), 윌리엄 A. 호닝 (William A. Horning) 외,
출연
로버트 테일러 (Robert Taylor) - 마커스 비니키우스 (Marcus Vinicius)
데보라 커 (Deborah Kerr) - 리지아 (Lygia)
피터 유스티노프 (Peter Ustinov) - 네로 (Nero)
레오 겐 (Leo Genn) - 페트로니우스 (Petronius)
핀레이 큐리 (Finlay Currie) - 베드로 (Peter)
버디 베어 (Buddy Baer) - 우르수스 역
아브라함 소페어 (Abraham Sofaer) - 바오로 역
패트리샤 라판 (Patricia Laffan) - 포페아 역
펠릭스 아일머 (Felix Aylmer) - 플라티누스 역
노라 스윈번 (Nora Swinburne) - 폼포니아 역
니콜라스 하넨 (Nicholas Hannen) - 세네카 역
아서 월지 (Arthur Walge) - 크로톤 역 로잘리 크러칠리 (Rosalie Crutchley) - 악테 역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의 중학교 시절...
하루하루의 삶조차 쉽지 않았던 60년대 중, 후반, 단체 영화관람은 문화생활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했던 우리들에겐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첫째는 단체관람을 위해서 수업을 일찍 마친다는 것,
둘째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귀찮음은 있지만...)적은 비용으로 영화를 당당하게 볼 수 있다는 점 등으로.......
개인적인 영화관람이 일체 허용되지 않았으며 혹 영화를 보다가 교외지도반에게 걸리면 거의 사망이라는, 선생님들의 공갈과 협박이 난무하던 때였다.
단체관람은 주로 남포동으로 갔는데 문화극장, 동아극장, 부산극장, 대영극장, 제일극장, 등의 개봉관이다.
곽경택감독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에 그런 그림(단체관람)이 나오는데 거의 똑 같다.
단체관람으로 기억나는 영화는 ‘형제는 용감하였다’(Allthe brotherswere valiant 1953),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 195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 등이 생각난다.
쿼바디스도 중학교 시절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 같다.(확실하지는 않다.)
이 영화.... 쿼봐디스....
경이로울 따름이다.
어떻게 그 시대(1951년)에 이런 대작을 만들었을까...
3시간이 지나는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다.
이 영화도 10번 이상은 본 것 같다.
‘벤허’에 결코 뒤지지 않는 영화이다.
쿼바디스는 51년도 작품이고 벤허는 59년도 작품이다.
작품상, 미술상, 음악상, 남우조연상(네로 역의 피터 유스티노프와 페트로니우스 역의 리오 겐), 촬영상, 의상상 등 아카데미상 7개 부문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다.
단 한 작품에 32,000벌의 의상이 사용되었다.
- 줄거리
1세기의 로마를 배경으로 고대의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의 투쟁을 묘사했다.
로마의 귀족 청년 비니키우스는 인질로 잡혀온 그리스도교도 리기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는 네로 황제의 총신(寵臣)이자 숙부인 페트로니우스에게 부탁해 리기아를 집에 데려오려 하는데 도중에 그리스도교도들이 그녀를 데리고가자 되찾으러 간다.
하지만 리기아의 충복인 우르수스에게 부상을 당하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도들로부터 간호를 받으며 리기아와 사랑하게 된다.
한편 네로의 방화로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한동안 헤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약혼을 하고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교도가 된다.
네로는 로마의 화재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게 뒤집어씌워 대학살을 시작한다.
리기아도 원형광장에 끌려나와 물소의 먹이가 될 위험에 처하지만,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이어 병사들의 반란으로 네로는 자살하고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는 시칠리아의 한 섬에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소설은 정의와 진리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박해받는 폴란드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솅키에비치는 이 작품으로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1912년 이탈리아의 엔리코 구아초니 감독에 의해 9권(reel)의 초대형 무성영화로 제작되었고, 1951년 다시 미국의 머빈 르로이 감독에 의해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카, 피터 유스티노프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다음백과 브리태니커
베드로는 죽기 전, 자신과 같은 죄인이 주님과 같은 형벌을 받아서는 안된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나온다.)
그의 무덤이라고 여겨지는 장소에‘성 베드로 교회 (Saint Peter's Basilica, 1506-1667)’가 세워졌다.
또 도망가던 베드로가 주님을 만났다는 곳에는 이를 기념한 작은 교회 ‘도미네 쿠오 바디스 (Domine Quo Vadis)’가 있다.
수상
제9회 골든 글로브 (1952년) 남우조연상 - 피터 위스티노프(Peter Ustinov)
촬영상(컬러) - 로버트 서티스(Robert Surtees), 윌리엄 V. 스캘(William V. Skall)
마커스 비니키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로마로 돌아 가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로마가 눈 앞에 보인다.
군대는 로마로 들어 갈 수가 없으니 일단 외곽에 주둔 시켜 놓고.....
로마의 풍경
승전한 비니키우스는 로마로 입성한다.
비니키우스의 승전 환영
비니키우스(로버트 테일러)는 리지아(데보라 커)와의 첫 만남에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마커스 비니키우스(로버트 테일러)와 리지아(데보라 커)
리지아의 경호원 거인 우르수스
마커스와 그의 숙부 페트로니우스(레오 겐)
비니키우스를 유혹하는 황비 포페이아
포페이아와 네로
카타콤에서의 기독교 집회
가운데 흰옷 입은 사람이 베드로(핀레이 큐리), 이 사람은 벤허에서 발타자르로 나온다.
역경 속에서도 사랑은 깊어지고......
네로(피터 유스티노프)가 설계하는 새로운 로마
그리고 로마는 불타는데.....
시인 네로는 시를 읊는다.
페트로니우스는 노예로서 자신을 사랑한 폼포니아와 동반 자살을....
로마의 방화는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사자의 밥이 되게하고.....
우르수스는 .....
목숨 걸고 리지아를 지킨다.
네로를 흠모하던 시녀 '악테'는 네로를 자살하게 하고....
비니키우스는 모든 걸 버리고 리지아와 행복하게 떠나는...... 뭐 그런 결말이다.
이 장면이다.
로마를 떠나려다, 주의 모습을 보고 다시 로마로 돌아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는 베드로(핀레이 큐리)
이 그림의 대사가.....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Quo Vadis Domine?)
- 머빈 르로이(1900.10.15~1987.09.13 Mervyn LeRoy 미국)감독에 대하여
190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카메라 조감독으로 처음 영화계에 진출한 후 무성영화의 작가와 배우로 활동하였다.
‘갈 곳은 없다.’(No Place to Go 1927)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는데 적은 예산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작은 시저’(Little Caesar)는 첫번째 발성 갱영화로 20세기 초 갱들의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1950년대 ‘Lovely to Look at’와 ‘Million Dollar Mermaid’ 등의 뮤지컬 영화들을 만들었다.
1946년 ‘The House I Live in’을 통해 오스카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
애수(Waterloo bridge 1940)-비비안 리, 로버트 테일러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1942)-그리어 가슨, 로널드 콜먼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1949)-엘리자베스 테일러, 자넷 리, 준 앨리슨
쿠오바디스(Quo Vadis 1951)-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커
원작자 헨리크 시엔케비치(Henryk Sienkiewicz, 1846.05.05-1916.11.15)에 대하여...
폴란드의 소설가이다.
러시아 령에 속한 볼라오크제이스카의 소 귀족 집안에 태어나, 바르샤바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였다.
1880년경부터 역사 소설을 써서 발표하였는데, 17세기 폴란드의 이국민(異國民)과의 영웅적인 격전에서 취재한 역사 3부작 [불과 검(劍)](1884), [대홍수](1886), [판 보워디요프스키](1888)에 의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쿠오 바디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 독립 운동과 국제적십자사의 구호 활동에 종사하는 동안 스위스에서 객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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