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년이 내도시락에 돌 뿌렸어
머문자리 초등학교의 종례 시간이다. 60명의 반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유레카 선생님의 말은 뒷전으로
흘려 듣고 앞뒤를 번갈아 돌아보며 왁자지껄 떠드는데
꼭 어물전 시장같이 어수선하고 질서가 없다.
여러번 조용하라고 주의를 주어도 금방 다시 소란해지고
참다 못한 유레카 선생님 탁자를 힘껏 내리치며 큰 소리
로 악을 쓰듯 조용하라고 외치며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반 아이들을 째려 본다.
서른이 넘은 나이까지 맞선 본 횟수는 무려 20번 어찌
볼 때마다 재수가 옴 붙었는지 대부분 상대방이 거절하기
일쑤고 간혹 참신한 마마보이라도 만나면 꼭 병신같은 생각
이 들어 망설이다 그만 단념해 버리곤 했다.
어제는 시골 큰 아버지가 소개해 주어서 나간 맞선 자리,
아니 자기 나이가 어쩐데, 아니 자기 외모가 그리 못나지도
않았는데 시골뜨기 촌티 ‘팍팍’ 나는 사람이 결혼하자고
덤비는 것이 아닌가. 정말 생각해도 아도매치(아니 꼽고
더럽고 매시꼽고 치사하다) 이다. 아무리 망가져도 국물은
달콤하기만 한데, 비록 못생기고 두꺼비 비슷하지만 명색이
선생인데 분수를 알아야지 천방지축 꼴뚜기판이다.
스트레스에 쌓여 울분을 삭히고 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영
말을 안 듣는다.
간신히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아이들에게 내일은 구교리로 소
풍 가니 모두들 9시까지 학교운동장에 모이라 하면서 ‘쌩’하고
교무실로 가버린다.
하교길에 항상 단짝인 4명의 여자 아이들은 들뜬 마음을 하늘에
띄워 놓고 서로가 밝게 웃으면서 집으로 가고 있다.
방앗간집 4째 딸인 참이, 구멍가게 7째 딸인 청화지, 생선가게
2째 딸인 평강이, 시장 만물상 잡화점 4째 딸인 보라는 내일이
무척이나 기대되어 오늘은 집에 가서 맛있는 김밥과 과자, 음료
수를 싸 올 생각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손을 잡고 다정히 가고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모두 살기 힘들지만 소풍가는 날은 예
외인지라 평소에 먹지 못하던 음식이랑 용돈이랑 듬뿍 주는 것
이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 가지 걱정인 보라가 친구들에게
“ 너희들 내일 입고 갈 옷 준비됐어? 난 걱정이야 우리 집은 딸
일곱이어서 엄마가 셋째 언니 옷 입고 가라는데... “
말을 하며 입을 삐쭉거린다. 그러자 그 중에서 제법 활기 찬
평강이가 자랑스럽게 말을 한다.
“ 난 전에 서울 큰 아버지 오실 때 사오신 옷 있어. 그걸 입고 올
거야. 동생들이랑 언니들이 입을까봐 ‘꼭꼭’ 숨겨 놓았거든. “
“ 넌 좋겠다. 울 아버지 순 노랭이라는 걸 너희들 알지. 절대 옷
헤어져 10번이상 기우지 않으면 사주는 일이 없어. 난 그저 입고
있는대로 갈거야. 괜히 사달라고 조르면 소풍 못 가게 할거야“
라며 눈물 가득한 눈을 아래로 숙이며 참이가 말한다.
“ 나도 그래 울 엄마 얼마나 짠지 늘 해남 외삼촌이 보내주는 헌
옷 아니면 입을 것이 없어. 오늘은 엄마한테 잘 보여 내일 너희
들 먹을 과자나 사이다랑 많이 가져 올게. “
라며 청화지는 어려운 엄마의 사정을 잘 아는지라 제법 유쾌하게
감정을 숨기고 말한다. 어찌된 동네인지 아니 산신할머니가 그리
낙점했는지 도대체 각 집마다 아들은 거의 없고 딸만 많은 딸부자
동네가 바로 여기인 것이다. 정말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정도
이다. 모두들 내일 즐거운 봄소풍을 위해 집에서 평소 안하던 집
안일 거든다 가게일 거든다 해서 부모님에게 잘 보일려고 애쓴다.
다음 날 새볔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서 청화지는 홰로 몰래 가
어미닭이 놓은 계란 서너개 ‘슬쩍’ 허리춤에 감춰 숨겨 놓고,
평강이는 가게에 있던 마른 오징어를 ‘슬쩍’ 배낭에 넣어 두고,
참이는 방앗간에 가서 짜투라기 떡을 은박지로 곱게 싸 넣고,
보라는 아버지 가게가 만물상이라 가져갈 물건이 하나도 없어
울상을 짓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손에 쥐어 주는 돈
을 보고 흐믓해 한다.
모두 모인 학교 운동장은 소란스럽고 밝은 얼굴에 즐거운 미소
웃음들이 가득 쌓이고 쌓인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풍날인 것인
가. 서른 후반의 스트레스형 대인기피증 과민증상이 심한 유레카
선생님의 인솔로 모두 2열로 맞추며 구교리에 있는 나무와 숲이
적당히 어울리고 잔디밭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구교리에 도착하여 반끼리 가방을 모아놓은 4학년 8반 아이들은
유레카 선생님이 준비해 온 놀이기구들을 가지고 술래잡기, 훌라
포 많이 돌리기, 가재미 놀이 등을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1시간쯤 지나자 보라와 참이는 소변 보러 간다 하면서 멀리 놓여
있는 소풍 가방 쌓여 있는 곳으로 도둑처럼 다가가고 평강이와
청화지는 술래가 되어 달음박질하면서 아이들을 잡을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달음박질과 놀이에는 젬병인 둘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술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딱하게 생각한 유레카 선생님의 도움으로
술래를 간신히 면하고 구석자리에 풀이 죽어 앉아 있다.
영 기분이 안 나고 두더지 쌍판을 짓는데 개구리가 와도 포복절도
할 것만 같다. 힘이들어 퀘퀘한 방구까지 둘이서 연방 쏘아 대니
곁에 있던 아이들은 하나둘 멀리 가고 못난이 평강이와 청화지는
무릎에 얼굴을 파 묻고 있는 풍경이다.
놀이를 틈타 몰래 간 보라와 참이는 얼른 가방속에서 엄마가 싸
준 김밥을 꺼내 놓고 나무뒤에서 먹다가 근처 지나가는 참새소리
에 놀라 김밥 도시락을 땅에 떨어뜨리고 흩어진 김밥에는 개미들
이 모여 든다. 울상을 지은 보라가 참이 보고 “점심은 어떡허지”
라며 고픈 배를 잡고 허리를 숙이자 참이는 얼른 일어서 평강이와
청화지 배낭을 들고, 땅에 떨어진 김밥을 주어 담은 후 보라를 데
리고 으숙한 곳으로 간다. 거기서 둘이는 평강이와 청화지의 김밥
을 맛있게 먹고 대신 도시락 통에는 흙 묻은 김밥을 담아서 넣어
두고 소란한 놀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울린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자 유레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 원을
그리며 앚아 가방안의 김밥이랑 과자랑 펼쳐 놓고 먹을려고 하고
보라와 참이는 배가 아프다며 나무밑에서 청화지가 준 계란을 깨
먹으면서 뒤만 '힐끗힐끗' 시선을 피하며 보고 있다.
늘상 교실에서 말썽만 부리는 4명의 말괄량이들이 오늘은 무척
귀여워 보여 유레카 선생님은 평강이와 청화지한테 오며 김밥이
맛있게 보인다고 하고, 기회를 놓칠세라 평강이는 도시락에서 얼
른 김밥 하나를 선생님에게 건네며 자기도 청화지도 같이 먹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밥을 입에 넣은 유레카와 평강이, 청화지는
씹자마자 ‘와지직’ ‘딱’ 하며 돌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인상을 구
기고, 유레카 선생님은 3일전에 한 앞 금니가 보기 좋게 부서져
잔디위에 떨어지고 청화지와 평강이도 어금니 깨지는 소리 들리
며 눈물이 나도록 아프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돌없이
여러번 채로 채서 한 쌀밥에 사온 김밥 아니던가. 화가 몹시
난 유레카 평강이를 잡아 먹을 듯 처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고,
청화지는 혹시나 하며 자기 김밥을 보자 온통 돌투성이 아닌가
평강이는 억울하고 유레카 선생님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핑”돈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두다릴 쭉 뻗고 대성통곡을 한다.
“ 어느 년이 내 도시락에다 돌을 뿌려 놓았어. 앙앙 으아앙. ”
하고 울자 곁에 있던 청화지는 더 크게 울어 버린다.
보라와 참이는 미안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젠 혼날까봐 무
조건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야하고, 자기하고는 상관 없는 듯 풀
에 누워버리며 아픈척 신음소리까지 낸다. 유레카 선생님이 화가
나 가버리자 평강이와 청화지는 억울하고 또 억울하여 보라와
참이를 째려보지만 의심만 갈 뿐 도무지 증거가 없다.
할 수 없이 김밥 다시 집어 넣고 과자를 꺼내 먹을려고 하는데
하늘에서는 때아닌 소나기가 장대비처럼 내려 버린다. 피할 곳도
없어 쫄랑 비를 맞고 그 비에 과자까지 젓어 먹을수 없게되자
주린 배만 잡고 여기저기 친구들 기웃거려 보지만 모두 다 먹고
빈 도시락통만 남아 있다. 모두들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가져
왔지만 덜퉁한 평강이와 청화지만 그냥 좋아라 하면서 온 것이다
보라와 참이가 준비한 우산을 같이 쓰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질퍽한 진창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평강이와 청화지, 안그런척
딴 곳에 시선을 돌리며 내숭 떨고 있는 보라와 참이 웃지 못할
사건 중의 사건이다. 즐거워야 할 봄소풍에 배만 고프고 심지어
비까지 흠뻑 맞고. 더군다나 노처녀 히스테리 유레카 선생님 금
이빨 두 대를 박살냈으니 이젠 도망갈 곳도 없다.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 멍든 마음만 남는 봄소풍인 것이다.
Even Now / Nana Mouskouri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ㅎㅎ 어찌 매번 좋은 모습만 날길려고 그러십니까. 평강님 가끔은 독자들 서비스도 해야지요.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ㅎㅎㅎ 지나버린 시간속으로 여행을 잠깐 갔다왔네요...어린시절 소풍갔던 그시간이 새록새록 생각 납니다..김밥먹던 생각..병사이다 들고 가서 마시던 생각..등.등...그리운 시절이네요..고운추억속의 글 잘보고 갑니다...시작하는 4월이 행복하시길요...^^
ㅎㅎ 맞는 말입니다. 그 시절 어렵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인데... 이젠 그저 추억속에서만 남아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4월 해피하게 열어 가십시오.
유레카님! 글에 등장시키고 나니 걱정 많이 됩니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