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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3 : 16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 - 고전 3 : 17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 상 )
3.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 ( 3 : 16 - 17 )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 : 16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도 개인도 그러하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그러하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령께서는 성도 개개인에게도 계시고 그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도 계신다. 이것은 성도 개인과 신약교회에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다.
1]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오스'(*)는 성전 지역'(temple area)을 가리키는 '히에론'(*)과는 달리 문자적으로 '거룩한 장소' 즉 '성소'(sanctuary)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른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6: 19)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은 개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릴 수 있다. (Mare).
* 요 2: 19-21 -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바울은 9절의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에이미(*, 'be') 동사의 복수형 '에스테'(*, '너희는...이다')를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성전'(*, 나오스 데우)은 단수형을 사용하여 기독교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 보았다.
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도 개인도 그러하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그러하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은 거룩한 곳, 곧 성전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구약시대의 성막이나 성전은 신약시대에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예표 하였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2: 19). 요한복음 2: 21은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했을 뿐 아니라, 신약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성전에 계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에 성령께서는 성도 개개인 속에 계시고 또 온 회중 가운데 계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 19에서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다.
에베소서 2: 20-22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성전이라 함은 <나오스>를 번역하였는데 이는 성전 중에서도 지성소를 뜻한다. 보통 성전은 <히에론>이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만나주시던 특별히 구별된 곳이었다.
성전 개념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로 오면서 점점 발전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다. 이는 계시의 점진성인데, 구약시대 돌로 지은 성전의 개념은 신약시대 그 의미가 완성되었다.
즉, 주님의 단번에 드리는(히 7: 27) 영원한 제사(히 10: 12)로 말미암아 신약에서는 성도의 몸으로 드리는 제사를 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만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는 것은 곧 성전의 정의(定義)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곧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성령은 동시에 주님의 영이시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된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영인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영인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성령은 고후 1: 22과 갈 4: 6에서 말하기를 우리 마음속에 계신다고 하였다.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라고 묻는 것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성전 된 존재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행 19: 2에서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즉, 믿는 자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신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갈 3: 3에서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성령 받은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는 분명히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이라는 말은 성도의 몸이 곧 성전인데 몸으로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오늘 본문에서 계속해서 성도는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쳤다.
바울 사도가 그것을 강조한 것은 성도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몸이 단순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무리의 마음속에 성령 곧 주님이 계시므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할 때의 멸하신다<데이로>는 뜻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가?
레 15: 31와 민 19: 20을 보면 구약시대에 선민 이스라엘 족속이 성전을 더럽히는 죄는 사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김을 당하였다. 곧 성전을 더럽히는 죄에 해당하는 벌은 일시적인 책망이 아니라 구원의 완전한 상실이다.
히 3: 12에 보면 너희 곧 거룩한 형제들 중에 누가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고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구원을 잘 간직하지 않으면 받은 구원이 상실될 수도 있음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셨으므로 성전인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성도가 거룩하게 살지 않고 계속해서 세속적인 삶을 살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러운 곳에 계속 머물러 계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떠나실 수밖에 없다.
성령이 구원받은 자로부터 떠나실 수 있다는 다른 성경적 증거들은 갈 3: 3에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과 살전 5: 19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이다. 이 말씀들은 모두 성령을 받지 않은 자에게 할 수 없는 말씀들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간직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전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9-10절에서도 성도는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간다고 하였다.
또한, 엡 2: 21-22에서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는 말씀은 우리가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존재임을 잘 가르치는 구절이다.
모든 성도는 각각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데, 작은 집인 성도들이 모여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가며, 또 각각의 교회는 모여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된다. 즉, 계속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집이 완성될 때까지 조심스럽게 건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잘못 지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본 구절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적 성전이라는 근거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있다.
* 엡 2: 22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벧전 2: 5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이나 성전 지성소에 '쉐키나'(*, Shechinah, '여호와의 가시적인 임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였지만, 이제는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이 성도들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 항상 임재하신다. (Hodge).
교회는 하나님의 집, 성전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성도 개개인 가운데 그리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이것은 성도 개인과 신약교회에 지극히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다.
고전 3 : 17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큰 복이다. 그 사실은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보인다.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자기의 생각대로 하는 모든 것이 죄이며 그것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다. 특히 성도 간에 서로 미워하고 분쟁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는 일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시리라고 경고했다.
1]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본 절은 '더럽히면'(*, 프데이레이)이라는 조건문의 동사와 '멸하시리라'(*, 프데레이)는 귀결문의 동사가 동일하게 쓰여 전체적으로 매우 과격하게 표현되어 있다.
'프데레이'는 '보다 나쁜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70인 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망치게 한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절은 '만약 누구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시킨다면 하나님이 그를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Hodge).
바울은 이러한 보응(報應)의 원칙을 제시하여 하나님의 처분이 불공평하고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공의로운 처사임을 보여준다.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실제로 분쟁을 일으키는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가 중대한 죄의 행위였음을 전제하고 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성전을 더럽히면 사형을 당하거나()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의 축출되었다().
* 레 15: 31 -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
* 민 19: 20 -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나무와 돌로 지어진 상징적이고 외적인 성전 건물보다는 영적인 성전인 사람과 교회 공동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교리를 그릇되게 전하면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훼손시키는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므로 하나님은 그에 대해 보응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거룩하니'의 헬라어 '하기오스'(*)는 '성별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등을 의미한다.
'거룩(holiness)'이란 말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본래가 거룩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聖殿)은 더욱 거룩하게 구별되어 있다.
* 왕상 9: 3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 대하 7: 16 -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 계 3: 12 -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 구약 성경에 나타난 거룩.
거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데쉬’(kodesh)는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거룩함'을 의미하는 코데쉬가 구약에서 830회 이상 나온다.
어원학적으로는 종교적 의미에서 본 히브리어의 근본 개념은 탈퇴(WITHDRAWAL), 그리고 헌신 (CONSECRATION)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일반 세속적인 것이나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탈퇴, 신상하고 성스럽고 순수한 것에 대한 헌신을 뜻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예시하여,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존재임을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① 하나님께 적용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그의 창조물로부터 구별되시며 초월하심을 의미하며 출애굽기 3: 4-5에서처럼, 요컨대 그의 권능과 주권과 위엄있는 거룩함을 뜻한다.
* 출 3: 4-5 -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레위기 11: 44과 이를 반복한 베드로전서 1: 16에서처럼 하나님의 특성은 윤리적으로도 흠이 없으심을 나타낸다.
* 레 11: 44 -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 벧전 1: 16 -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하나님의 거룩을 가장 명료하게 밝혀 주는 것은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 11: 9)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불렀다.
* 사 12: 6 -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 사 17: 7 -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 사 41: 14 -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② 기물과 제도에 적용된다.
이들은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사용에서 벗어나서 사용되므로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해 바쳐질 때 비로소 거룩한 것이다.
③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람들의 '거룩함'은 출애굽기 29: 1에서와 같이 적절한 헌신 행위로부터 비롯된 의식상의 신성함을 나타낼 때에 가장 빈번히 사용되며, 그리고 간혹 보다 깊은 중요도를 표시할 때는 사람들의 윤리적인 공의를 의미한다.
* 출 29: 1 -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 시 15 : 1-5 -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 사 57: 15 -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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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