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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 (老莊思想) |
도가의 중심인물인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의하여 형성된 사상. 유교 및 불교와 더불어 동양 3대사상의 하나이다. 봉건적 신분제도를 도덕적으로 확립할 것을 이상으로 하는 공맹(孔孟)의 예치주의(禮治主義) 사상에 반대하고, 자연의 도(道) 즉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잡다한 인간적인 일들을 초월하여 평이한 생활을 주장한 것이 노장사상이다. | |
설명 | ||
도가의 중심인물인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의하여 형성된 사상. 유교 및 불교와 더불어 동양 3대사상의 하나이다. 봉건적 신분제도를 도덕적으로 확립할 것을 이상으로 하는 공맹(孔孟)의 예치주의(禮治主義) 사상에 반대하고, 자연의 도(道) 즉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잡다한 인간적인 일들을 초월하여 평이한 생활을 주장한 것이 노장사상이다.
당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은 이상적 행동규범을 세워 봉건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너무나 이상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장자는 이러한 현실혼란의 원인이 지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있다고 하고 현실적인 행동의 규범을 추구할 것을 주장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또한 지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서로 상반되는 이론의 논쟁밖에 일으키지 못하며 분분한 물론(物論)을 야기하므로, 이것을 제합할 것을 주장하였다(齊物論). 이러한 생활태도는 인간을 실패와 피로, 그리고 회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지식을 버리고 지식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심제좌망(心齊坐忘)에서 구하고자 했는데, 심제는 지식에 대한 심적 요구를 진정하는 일이고, 좌망은 지식에 대한 평가태도를 망각하는 일이라 하였다. 이처럼 현실 비판에서 출발한 장자는 도리어 현실을 도피하여 관념적 자유를 구했다. 그러나 장자는 현실의 정치·도덕·문화를 파괴하는 허무주의자는 아니었고, 기성지식의 평가·시비의 태도를 부정함으로써 문화를 재건할 새로운 터전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해명을 위하여 노자는 지식을 부정·초월하는 장자의 사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지식을 형성하는 인간의식의 무명 속으로 들어간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생(生)에 얽매인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런 욕구는 생의 수단으로서 감각을 가지고, 이 감각은 물욕(物欲)을 일으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망각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의식은 무지로 위장한 것에 불과하며, 감각적 물욕은 지식의 핵(核)이며 무지의 암흑으로서 현(玄)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은 맹목적인 것으로서 자연적으로 발동하여 자기를 형성한다.
이 현 속에서 내동하는 자연성을 파악하는 방법은 현 속으로 들어가는 입현(入玄)이며, 입현의 방법은 무사(無思)·무위(無爲)이다. 그러나 의식은 감각의 지배를 받아 자기의 무지를 위장하면서까지 외물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입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입현하기 위해서는 사유의 위장태도를 포기하고 무사·무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무사·무위의 입현이 정밀할수록 자기의 체험은 깊고 자기의 자연성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장자의 유명(有名)의 초월은 지식의 상대성의 자각이며, 노자의 무사·무위한 무명(無名)의 초월은 존재의 상대적 반복성을 자각한 도반(道反)이니, 존재 생멸의 상호전환의 가능성을 자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근거를 이해하는 것이 지덕이며, 입현의 덕 즉 현덕(玄德)이라 한다.
비례(非禮)도 거부할 수 없는 물욕은 소유욕이며 화려한 사치욕이니 무위의 덕목은 그것을 절제하는 것이고, 또한 물욕은 독점 지배욕으로서 과감한 침략을 요구하니 이 침략성을 억제하는 용기가 참된 용기이며, 부쟁(不爭)이 덕이라 하였다. 형식적 덕치주의(德治主義)는 중앙집권적 통일국가 형성에 불과하다고 본 노자는 소국과민주의(小國寡民主義)에 의하여 강권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라의 임금도 위대하기는 하나 전제군주(專制君主)로서보다는 무욕의 서민의 지도자로서의 임금으로 보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며 자위 존립상 부득이한 방어에 한해서만 전쟁을 인정하였다. 그는 인욕을 비판하고 인욕의 절제를 강조함으로써 탐욕에 찬 사회개조를 기도한 것이다. |
첫댓글 유욕해도 나타나고/무욕해도 나타나네/신비하고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