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5일 금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35-37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
이번 주 복음은 예수님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층간의 치열한 전쟁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인 수난의 길의 가시기로 결심하시고 그 결심의 증거로 이스라엘의 중심부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중심부인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건을 시작으로 메시아로서 당신의 소명을 강렬하게 표출하셨고 이것은 스스로 하느님과 제일 가깝다고 믿고 백성을 가르치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와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권한에 대해 집요하게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지난 화요일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가려고 했고 지난 수요일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부활 논쟁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에서 또 한번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의 칭호는 예수님의 부활 이전까지의 모습은 담을 수 있지만 부활 후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칭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메시아의 권위를 부정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면서 다윗 또한 메시아를 주님으로 불렀음을 깨우쳐 주시며 참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다시 한번 선포하십니다.
이토록 집요하게 예수님을 깍아 내리려는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왜저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스러운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도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처럼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더 칭송받고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더 높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의 본성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받으며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높아 보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기에 많은 힘이 들어가는 방법이기에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좀 더 쉬운 방법입니다.
내가 높아지기 힘드니까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서 상대적으로 내가 높아지는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방법은 상대방을 많이 깎아 내리면 내릴수록 내가 더 많이 올라 가는 것처럼 보이기에 너무나도 쉽고 매력적인 방법 같지만 결국 상대방도 나도 그 자리에 항구히 멈춰 버리는 허무한 방법입니다.
예수님께 이 방법으로 다가 갔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자신들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이 믿던 가장 중요한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하며 살라는 가장 큰 계명을 들었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고 더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가려 정작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부산교구 신문갑 비오 신부
첫댓글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하며 살라는 가장 큰 계명을 들었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