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를 예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왜 정장을 입지 않느냐. 정장이 있긴 한 거냐"고 극우 성향 기자가 질문을 던지기 전 그에게 윙크를 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2일 지적했다. 일간 아이리쉬 메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신호 윙크'를 보냈다며 젤렌스키가 백악관의 매복 공격에 희생됐던 증거라고 지적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윙크를 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된 적이 있다. 나이 든 이들이 습관적으로 눈을 껌벅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인디펜던트는 동영상을 게재했는데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볼 수가 없어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유튜브의 동영상 1분 20초 무렵에 트럼프의 문제 행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을 던진 기자는 보수 성향 방송 ‘리얼 아메리카스 보이스’의 브라이언 글렌(56)이라고인디펜던트와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그는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MTG, 51) 공화당 하원의원의 남자친구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글렌은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기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위 동영상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함을 느낄 수 있다.
글렌은 한 시간쯤 진행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 중 40분 가량 그런대로 잘 진행된 뒤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을 하는 거냐"고 양측의 날선 공방이 오간 뒤에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자 검정색 티셔츠를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정장을 입지 않았느냐.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정장을 입는 것을 거부했는가. 정장이 있기는 한 거냐”라며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질문에 실어 던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옷차림을 먼저 트집 잡아 입씨름의 원인을 제공했던 J D 밴스 부통령은 짐짓 의도한 듯 큰소리로 웃어대며 동조했다.
젤렌스키는 “전쟁이 끝나면 정장을 입겠다. 아마 당신과 같은 것이나 더 좋은 것, 혹은 더 저렴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응수했다.
텔레그래프는 글렌 기자의 질문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모욕하고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도록 의도된 계획적 공격이었다고 분석했다.
글렌은 엑스(X)에다 “젤렌스키의 복장은 우리나라와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시민에 대한 내면의 무례함을 보여준다”고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린 의원은 “젤렌스키가 우리 대통령에게 돈을 구걸하러 올 때조차 정장을 입지 않을 정도로 무례했다고 지적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남자친구를 두둔했다. 의 발언을 적극 지지했다. 그녀는 2023년 5월 글렌과 함께 산에 오른 사진을 공개하며 “내 연인, 미국의 국보”라고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녀는 공화당 안에서도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트럼프 충성파로 알려져 있다.
글렌이 소속된 ‘리얼 아메리카스 보이스’는 2020년 설립된 보수 성향 매체로,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방송을 진행하는 등 강성 친트럼프 노선을 표방해 왔다. 이 매체는 2020년 미 대선 부정선거,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을 주장하며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보도를 이어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뉴미디어와 인플루언서에게 백악관 출입을 허용하면서 '리얼 아메리카스 보이스'는 새로 출입 허가를 받았다. 이번 정상회담 취재에는 AP 통신 기자가 배제될 정도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해외 정상을 만날 때 일관되게 군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어왔다. 트럼프와의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삼지창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 상의를 선택해 평소보다 격식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젤렌스키의 이런 옷차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전략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처칠은 전쟁 중 ‘방공복’을 주로 입었으며, 1942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도 같은 복장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맞으면서 비꼬듯 “오늘 제대로 차려 입었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는 이것이 회담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을 암시한 발언이었다고 분석했다. 인디펜던트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의도적으로 함정을 파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 세계 언론 앞에서 공개 망신을 줬고, 그 와중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보수 성향 매체 기자를 활용하려고 윙크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지 않은 누리꾼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주재한 내각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정장을 입은 가운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혼자 티셔츠에 모자를 쓴 차림으로 아들을 무동태우고 트럼프 대통령 옆에 서 있었던 것을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사실을 꼬집었다.
미군을 퇴역한 남성이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입씨름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는 영상이 틱톡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100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리고 21만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공감을 얻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고 국민들이 죽고 있는데 정장 따위에나 관심이 있는 쓰레기들”이라며 강하게 비난하며 “난 정말로 이 나라가 싫고, 정말 불명예스럽다. 난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다.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