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89) - 반가운 이들과의 만남
우중충한 겨울 지나고 화려한 봄날, 수줍게 핀 화분의 꽃봉오리가 화사하다. 모두가 따사롭고 활기찬 날들 맞이하자.
3.1절 연휴의 날씨가 쌀쌀하여 담소를 나눈 페치카의 불길이 따사로움을 대신하였다.
연휴에 가까운 이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누구나 고단한 삶, 역경 이겨내고 힘차게 사는 모습들이 아름다워라.
첫 만남(2월 29일), 출판사를 경영하며 벤처사업에 열정을 쏟는 여류문화인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먼 길 내딛은 발걸음이 고맙다. 열정을 쏟은 책,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를 출판한 이래 꾸준히 교감하는 사이인데 코로나 이후 오랜 만의 만남이 정겹다. 사업가가 겪는 어려움 잘 이겨내고 밝은 표정으로 사는 모습에 박수, 아내와의 교감이 더 어울린다.
작별 후 보낸 메시지, ‘예기치 않은 만남에 활력이 넘치네요. 어려움 잘 이겨낸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보냅니다. 내내 건승하시기를!’ 보내온 답, ‘용기, 지혜 그런 것 없었어요. 잡초처럼 밟혀도 그냥 살아나는 긍정의 힘이 있었나 봐요.’ 삶을 견디는 자, 모두가 승자다.
먼 길 찾아온 발걸음이 고맙다.
두 번째 만남(3월 1일), 서울에 사는 누님과 여동생들이 요양원에 계신 구순의 올케를 뵈러 내려왔다. 큰형수는 95세. 구순을 넘겨서도 꼿꼿하셨는데 세월을 어찌 이기랴, 2년 전 요양원에 입소하였는데 최근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애틋한 정담을 나눈 후 아쉬운 발걸음. 인근 식당에서 점심 후 집으로 이동, 남매들의 오붓한 대화가 정겹다. 청주에 자리 잡은 후 세 자매가 함께 오기는 두 번째, 서로를 격려하고 건승하기를 다짐하였다. 오래도록 평안하시라.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장 17절)는 경구를 되새기며.
세 번째 만남(3월 2~3일), 연휴 둘째 날 광주에 내려가 30년 넘게 친밀하게 지낸 교회와 요양원의 여러 친지들과 흐뭇한 교제를 나누었다. 동년배의 천혜경로원장 부부는 우리랑 결혼기념일이 3월 초, 광주에 있을 때는 매년 함께 축하의 기회를 가졌으나 청주로 옮긴 후 코로나와 겹쳐 몇 년간 축하모임을 가지지 못하였다. 오랜만의 정겨운 시간, 충장로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한 후 천혜경로원의 카페로 향하였다. 운치 있는 페치카의 불꽃이 먼 길 찾은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주인장의 기타연주에 맞춰 부른 옛 시인의 노래, 동무생각과 이별의 노래 등이 세월에 물든 노장들을 젊은 시절의 낭만으로 되돌린다. 천혜경로원 특유의 윷놀이도 곁들여.
다음날은 주일, 오랜 만에 요양원 안의 교회예배에 참석하였다. 함께 부르는 찬송이 은혜롭고 부임한 지 일천한 목사의 메시지가 가슴에 닿는다. 하나님께 영광, 교우들에게 축복 넘치시라. 예배 후 나눈 교제가 정겹고 정성으로 마련한 점심식사가 푸짐하다. 반가운 소식, 은퇴 후 타계한 전임목사의 아들부부는 교회의 일꾼으로 초등학교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것을 지켜보았는데 와서 들으니 얼마 전 둘 다 교장선생이 되었다네. 이들의 결혼주례는 나, 큰 선물을 받은 듯 흔쾌한 기분이다. 건실한 후배들이여, 아무쪼록 나라와 사회의 믿음직한 일꾼이 되라.
예배 후 교우들과 함께
* 페치카 불 쬐며 카페에서 부른 이별의 노래 가사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가 귀에 맴도는데 때마침 신문 칼럼에 ‘서열과 배려의 기러기비행’이라 오른 칼럼이 눈길을 끈다. 그 요지를 함께 살펴보자.
‘겨울이 끝나갈 무렵 서해안에 가면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군산 행 버스 여행에 합류했다. 군산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후 일행과 산책을 하던 중 북쪽 하늘로 비행하는 기러기 가족을 보았다. 계절로 비추어봐 그들은 군산, 서천에서 강화도와 옹진반도, 중국 동북 3성을 거쳐서 고향 시베리아로 가는 귀향길이리라. 기러기가 겨울 하늘을 나는 광경을 보면 색(色)과 공(空)의 조화가 느껴진다. 또 기러기가 떠나간 창공은 마음속의 공허함인 허(虛)를 깊게 남기는 듯하다. 기러기가 남긴 공허함은 이름 모를 그리움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 그리움이 사무쳐 시와 노래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러기가 떠난 창공을 보면서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인 박목월은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 리~”로 시작하는 ‘이별의 노래’라는 시를 썼다. 이 시를 읽고 모골이 송연해진 작곡가 김성태는 여기에 곡을 붙였다.
기러기는 좌우 대칭의 대오를 갖추고 앞에서 나는 기러기와 뒤를 따르는 기러기가 신호와 울음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V자 형태의 비행을 한다. 옛사람들은 이런 기러기의 비행을 가리켜서 ‘안행(雁行)’이라 했다. 조선의 생활 백과사전 규합총서는 안행(雁行)에는 모름지기 신(信), 예(禮), 절(節), 지(智)의 네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때에 맞추어 왔다가 때에 맞추어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아갈 때도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답하니 그것이 예(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라.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잠을 자되 하나가 순찰을 서니 지(智)가 있다.” 안행이란 말은 기러기가 나는 모습을 말하지만 ‘안행피영(雁行避影)’은 기러기가 앞으로 함부로 나서지 않고 옆으로 피하듯이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뜻이다. 배려는 언어가 아니고 실천이다. 해가 지는 수평선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들도 순조로운 비행을 위해 배려를 배우고(學) 실천하며(習) ‘구만리’ 먼 길을 안행하지 않는가.(중앙일보 2024. 3. 5 곽정식의 ‘서열과 배려의 기러기비행’에서)
서열과 배려의 기러기 비행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