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서 한 자리
한 달 두 차례 우리 학생들은 정규 일과가 끝나면 바로 귀가하는 오월 넷째 수요일이다. 학교에서 저녁 급식이 없는지라 영양사나 조리사들도 일찍 귀가한다. 담임을 비롯한 동료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녁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친목회에서 이웃 학교와 친선 배구시합을 갖고 저녁 자리를 가질 거라는 예고가 있었다. 난 배구시합 학교까지는 나가봤다.
배구시합이 열린 이웃 학교엔 나와 인연이 닿은 같은 연령대 교사가 셋이 있다. 모두 지난날 창원에 근무한 적 있는 이방인들이다. 둘은 가족과 함께 이사를 왔고 한 친구는 나와 같이 원룸에서 지내다 주말이면 장유로 돌아간다. 그곳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니 친구처럼 지내는 동료 셋이 나하고 회동을 위해 차를 몰아 나와 동승하게 되었다. 산마루 학교에서 옥포 시내로 내려갔다.
일행들이 타고 간 차는 비탈을 내려 친구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두었다. 나는 드물게 간 옥포지만 셋은 각자 사는 집이 그 근처였다. 상가 골목을 지나니 어디쯤 성당이 나왔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숯불구이집을 찾아 들었다. 한우 무한 리필 주점으로 친구가 가끔 찾은 곳이라고 했다. 주점을 안내한 친구는 친화력이 좋아 창원에 살 때 주변에는 사람들이 늘 들끓었다.
나를 제외한 셋 가운데 한 친구만 일본어고 모두 국어를 가르친다. 일본어를 가르치는 친구는 교직 출발은 불어로 시작해 중년에 연수 과정을 거쳐 교과목을 바꾸었다. 제 2외국어가 시대 흐름에 따라 불어와 독어가 중국어와 일본어에 밀려서다. 이 일본어를 가르치는 친구는 달포 전 예기치 못한 낙상으로 한동안 통원 진료를 받은 적 있다고 했다. 난 근무지가 달라 근황에 어두웠다.
주점은 규모가 커 단체 손님을 받아도 될 정도로 테이블이 많았다. 너른 홀에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숯불이 나오고 불판에 고기를 올려 잔에 맑은 술을 채워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연령대는 같아도 각자 성장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 생각 차이도 드러났다. 한 친구가 원불교 신심이 두터워 그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일부 풀렸다. 나는 귀 기울여 듣는 입장이었다.
술자리에서 정치와 종교는 화제에 올리지 않음이 상례인데 어쩌다 얘기가 그쪽을 흐르고 말았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 논쟁이 있을 리 없었다. 취기가 좀 오르자 한 친구가 남은 기간을 채우지 않고 오는 연말에 명예퇴직하고 싶은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동안 공립 외고에서 학력 수준이 높고 고른 아이들을 지도하다 이곳 사정에 적응이 힘든 모양이다. 담임까지 맡아 더 그렇지 싶다.
맑은 술을 1인 1병보다 더 비우고 주점을 나왔다. 한 친구는 전날 퇴근 후 고현으로 나가 지인을 만나 무리를 해 차수 변경 없이 먼저 들어갔다. 사는 데가 우리가 앉았던 주점에 그리 멀지 않은 원룸이라고 들었다. 남은 셋은 골목을 지나다가 한 자리 더 가지기 위해 막창구이 식당을 찾아 들었다. 테이블을 먼저 차지한 손님들이 보였다. 우리는 안주를 시켜 잔을 기울였다.
앞서 고기를 들은 데다 다시 고기를 구웠더니 안주는 시들해도 맑은 술은 변함없이 비웠다. 나는 막창 구이는 당기지 않아도 잔은 연거푸 들었다. 두 번째 들린 주점에서 한 친구가 자리를 먼저 일어나게 되었다. 저녁이면 아내가 요가 수련을 받은데 그 장소가 근처였던 모양이었다. 요가 수련을 끝내고 귀가할 시간이라 함께 들어갈 거라 했다. 아름다운 퇴장이라 더 붙잡지 않았다.
넷이 모여 차수를 변경했더니 셋이 되었다가 이제 둘만 남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봐야 딱히 밀려둔 일도 없었다. 일본어를 가르친다는 맞은편 친구는 마음이 여리고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선량하게 사는 듯했다. 구워 놓은 막창이 그득해 소주를 한 병 더 시켜 못다 나눈 얘기들을 마무리했다. 남은 안주는 주인보고 싸 달라고 해 친구 집에 기르는 반려견 먹이로 챙겼다. 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