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적이 잘 없었는데 이번엔 정시에 시작을 하여서
곽도경시인의 오픈 무대를 보지 못하여, 아쉬웠네요.
박길영 카우벨 연주자의 격조높은 연주
첫번째 순서로 김옥경 시인께서 낭독하셨네요.
한 아이가 꽃을 들여다보다
ㅡ박방희
소녀는 女子 이전의 女子이다
소녀는 닫힌 존재이지만 제 안으로 드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 통로에는 비밀스런 문이 있고 그 문은 잠겨 있어 자연의 때가 되지 않으면 누구도 그 문을 열 수 없다 때로 난폭한 침입자가 강제로 열고자 해도 문은 더욱 닫힐 뿐, 소녀의 문은 안에서 열지 않으면 부서지는 문이다
소녀는 原形인 女子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少女를 사랑한다
여남은 살쯤 되어 보이는 少女가 마당에 피어 있는 꽃을 들여다보고 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꽃의 붉은 기운이 소녀의 코와 입으로 기어들어 전신으로 퍼진다 숨을 내쉴 때는 소녀에게서 빠져나온 피가 꽃 속으로 스며들며 꽃에 붉은 색을 더 하고 뜨겁게 한다 소녀는 나비가 되어 꽃 위에 날개 접고 앉아 웃는다 그 웃음이 꽃잎에 주름을 지으며 땅으로 번지고 하늘로 번진다 그 바람에 소리를 토막 내며 공중을 날고 있던 헬리콥터가 기우뚱한다
피기 전의 꽃!
나는 小女를 사랑한다
구은주 시인은 낭독전문가이시기도 하네요.
박방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사과를 먹다와 버스를 타고를 낭독해주셨습니다.
과도는 멀찌감치 치워 버렸습니다 맨살의 합일만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먼저 매끄러운 살갗의 감촉과 손안 가득 차오는 풍만감을 취하고 코끝으로 전해오는 과육의 풍미와 향기를 마시며 덥석, 한입 깨물었습니다
이제 사과가 나를 취할 때입니다 나도 내 몸의 세포들을 열어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내 입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몸속으로 퍼져 나가며 사과가 나를 먹는 동안, 사과 속에 깃든 태양과 바람, 달과 별, 구름이 따라 들어와 내 안의 우주가 충만해집니다
그 순간, 내 몸은 사과의 살과 즙으로 향긋하게 차오르며 보름달처럼 환해졌습니다 이제 나는, 사과와 내가 내 안에서 온전한 일치를 이루어 한 몸이 되었음을 깨달으며 서서히 사과가 꾸던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 「사과를 먹다」부분
류경화 낭독가
유등연지에서
ㅡ박방희
그대가 연꽃 보러 가자 하였지요
'어쩜 한두 송이쯤 피었을지 몰라요’
비들이 뿌여이 산을 먹어 들어가고 이따금씩 듣는 빗방울로 물너울 둥글게 번지는 못엔 아직 패지 않은 갈대가 패지 않은 세월만큼 무성하다 물속에서 일어 잔잔한 주름을 만들며 부는 바람의 출처는 지난 세월인데 아직은 이른가 꽃피기에는, 연꽃 봉오리가 고개를 당긴다
초입에 몇 송이 연꽃 먼저 벙글어 손을 반긴다 부처가 앉을 자리에 마음이 앉는다 가장 존엄한 깃발을 날리는 깃봉처럼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가득하다 봉오리들 저마다 피어 오롯이 한 부처씩 좌정하면 온 연못이 부처의 자리이고 절이고 법당이리라 '밤에 피고 말 것 같아요, 우리가 가고 나면…….’
새벽 미명 속 물고기들이 아침을 깨우러 다닌다 고기의 보살행, 하나 둘 연꽃 봉오리가 발가이 피며 어둠을 밝힌다 점등의 순간순간이 더 환하다 이렇게 세상 어둠 밝아졌으면……. 내 어깨에 기댄 채 그대가 말한다 ‘진홍보다는 연분홍이 더 간절한 빛이네요!’어둠을 열고 핀 연꽃 봉오리 저마다 법열의 궁전이다
배경자 낭송가 , 헐티재를 넘다
헐티재를 넘다
-박방희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우리는 차를 몰아 헐티재를 넘곤 했다 헐티재는 세상을 버리는 곳, 세상의 금기들이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는 소도처럼 금줄 친 곳, 세상을 떠나는 하늘 나루터 같은 곳이었으니…… 굽이굽이 몇 굽이 감아 오르고 다시 가파른 두어 굽이 솟아오르면 마침내 이 세상을 넘듯 넘을 수 있는 헐티, 둥실둥실 구름이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어 저어갈 수 있는 곳, 그 너머 허브캐슬이 있고 밀다원이 있고 풍경소리 적요한 용천사도 있어 바람과 구름과 하늘이 쉬러 오는 또 다른 세상이니…… 뒤돌아보면 까마득히 주저앉은 세상, 참 우리가 높이도 올라오고 멀리도 떠나왔어라 우리의 생도 이쯤 왔을 테지, 등 뒤로 흘러가는 길 바라보며 이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돌아가는 길을 잊든지 잃어버리든지 둘 중 하나이라고 말하곤 하던…….
나날이 사회을 잘보시는 곽도경 시인^^
정재숙 시인/ 매미사랑
매미 사랑
박방희
나무에 눌러 붙어 매미가 운다
귀 막고 눈 막고 푸를 뿐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떼쓰는 아이처럼
매미는 더욱 시끄럽게 운다
매미 울음 뜨겁고 애절해
마침내 빗장 풀어 가슴 연 나무
매미 소리 안아 들인다
이제 여름내 우는 건 나무이다
나무의 푸른 울음뿐이다
어쩔 것인가, 가령
한 계집이 한 사내에 와서
저토록 절절하게 울어 쌓는다면
돌 같은 그 사내 팔 벌리고 가슴 열어
마주 안아 울지 않고 어쩌랴!
그로 인해 단풍 들고 낙엽 져
겨울이 온다한들 어쩌랴!
간단하게 요들송 강의도 들었습니다~
김동원 시인과 주인공 박방희 시인의 대담 시간~
구미에 사시는 낭송가 정수미 님 / 나비
나비
-美대륙 北端에서 날개를 편 나비 떼는 구름처럼 자욱이 떠올라 6,7천 킬로미터나 되는 대륙 南端을 향하여 무리 지어 날아간다. 따듯한 곳을 향하는 힘은 그처럼 强하다.
ㅡ박방희
남산동 어느 요정에는 나비 날개로 만든 나비 액자가 걸려 있다 저 액자 속의 나비는 수만 개의 날개로 왜 날아가지 않지? 액자 밖으로 훨훨 날아올라 유채꽃 핀 마을을 왜 찾아가지 않지? 내가 묻자, 시중드는 아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저씨도 참 순진하셔 날개가 있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게 어디 나비뿐인가요? 그런데 아저씨, 잘 보세요! 시방 저 날개 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본디 나는 게 날개라서 지금도 날고 있잖아요 끊임없이 날던 날개로 죽어서도 날고 있는데 안 보이세요? 날개옷을 입은 아가씨가 나비처럼 훨훨 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어, 그러네 그런데 우리 나비 아가씨는 왜 날아가지 않지? 날아날아 여기까지 왔는걸요 아저씨 같은 장다리꽃을 찾아서요
그 순간, 수만 개의 날개 소리가 나며 액자 속의 나비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실려 잠자리 날개옷을 입은 그녀도 나도 세상 밖으로 아득히 날아올랐다
언제나 좋은 기록사진을 남겨주시는 뚜버기 박종천님
9월에,, 첫시집 '날아라 캥거루' 로 시하늘 초대시인으로 모시게 될
솜나리 박숙경님의 낭독으로
그대에게 가는 먼 길-해인사
-박방희
그대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배웅하는 그대 뒤로하고 무한정 내려갑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첩첩 산들은 그대를 가두며 병풍으로 쳐집니다 무정한 차체는 울퉁불퉁 일어나는 길과 함께 그대 생각에 빠진 나를 덜컹덜컹 흔들어 깨우며 점점 멀리 점점 더 빠르게 떼어 놓습니다 그때마다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울고 골짝마다 피어오르는 안개는 뭉텅뭉텅 그대를 지워내는데 이승을 떠나는 물소리들은 악다구니처럼 나를 끌고 가려 저리도 시끄럽게 달려듭니다 그대와 나 전생에 무슨 죄업 크기에 첩첩 산과 골짜기, 개울물과 안개와 바람, 무심한 길바닥까지 우리를 갈라놓으려 안달하며 극성인지요! 언젠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산, 물, 안개, 바람이 더욱 푸르러진 그대 내 앞에 내놓을 때 산과 물과 안개와 바람, 그리고 울퉁불퉁 일어서던 길바닥이야말로 그대를 고이 감싸준 연꽃 속잎들이 아닐는지요?
김영애 낭송가/ 맨발
김경애님 / 강둑에 앉아 너를 기다리다
최진 시인의 낭독 / 모과꽃을 따오다
황인동 시인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
수필가 방종현 선생님께서 하모니카 연주를 신나게 두 곡 해주셨습니다.
문인수 시인께서도 오시고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활기띤 시하늘 219회의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첫댓글 후기 맛깔나게 올리셨네요.
즐감하고 갑니데이 ^^
영희야~
수고 많았네~
따뜻한 후기 고맙데이~^^
갑자기 부탁 드렸는데 ......고맙습니다 !
글라디님 감사요~^^
어쩜 후기를 이렇게 따스하게
가서 본 것 처럼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바쁘게 와서 바쁘게 가더니
참 잘하셨네^*^
글라디님!
후기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지요
감사합니다~^^
멋쟁이!~ㅎ
고맙습니다. 못 올리신 시 자료는 제가 올리지요.
맨발
-박방희
몸 안에 이는 바람 앉히고/내 옆에 앉은 누님 같은 여자/세운 무릎 아래로 맨발이 나왔다/끝자락에 찍힌 발가락들/얌전하게 모여 눈감았다/어떤 감촉과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호, 입김 불면/분홍색으로 되살아나는 추억들/저머더 기억의 회로를 따라/꿈틀꿈틀 기어갈 것만 같다/첫 걸음마 때의 빛나던 아침과/아장거리며 나비 쫓던 나절/발톱에 봉숭아 물들이며/기다림을 시작하고/연인을 만나러 가던 밤길의 이슬까지/아롱지는 추억들 따라가다 보면/한 생을 끌고 온 맨발을 마중하게 된다//다시금 정처를 찾아/고개 내미는 맨발
강둑에 앉아 너를 기다리다
-박방희
강둑에 앉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강물은 푸르게 흐르고/나는 강변 모래처럼 늙어간다/이 강을 따라 가면 칠 백리/굽이굽이 날은 저물고/우리 사랑도 마침내 저물리라/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흐르는데/오지 않는 너를 기다려/나는 흐르지도 못하고 둑이 되어 누웠다/눈부신 사구가 받아 뉘는/등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내 꿈꾸는 사랑도 함께 흐르는 것인데/너는 아직도 아득한 상류인가/그래도 마른 가슴 채우며/한 번은 푸르게 흐를 너를 기다려/네가 올 강변에 시를 쓴다/출렁이며 강물은 흐르고/모래처럼 부서지며 나는 늙는다
모과 꽃을 따오다
-박방희
그대가 따온 산모과 꽃/흰 꽃잎에 번지는 붉은 빛이 아련하다//속이 훤한 유리병 속에/그 마음처럼 들어 있는 꽃//세상 속으로 첫 나들이한/산골 처녀처럼 수줍지만/정작 먼저 핀 것은 그대일 것이다//겨우내 꽃눈을 틔우며 떨고 있다가/마침내 활짝 부풀어 터져/제 자취를 따듯 따온 것이리//곤고한 시절, 유리병을 뚫고 나온/맑고 투명한 색이 타는 듯 뜨거워//이윽고 내 마음을 덴다
감사합니다. 다 찾아 올리지 못하여 죄송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