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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산 전 북한무역대표] “새로운 삶·사업 성공적으로 이끈 가족의 힘”
2019-05-02 09:3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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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코리아 리더
▲ 김태산 전 주체코 북한 무역대표 / 영어·수학 보습학원 원장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 정착 과정에서 취업·창업 등 경제적 자립을 매우 힘들어한다. 배급 체제에 익숙했던 탓에 치열한 경쟁이나 자유 시장경제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축해 놓은 자금이나 북에서 가져온 종자돈도 있을리 만무하다. 정착 초기에 정부로부터 받는 정착지원금이 있어 그나마 당장의 의식주 정도를 해결해가는 수준이다.
김태산 전 체코주재 북한무역 대표는 탈북 시 아내와 딸을 데리고 한국돈으로 400만원 정도를 가져왔다. “그 정도면 세 식구가 3~4년은 살겠지 싶었는데 웬걸, 주변에서 한두달이면 다 쓸 돈이라고 해서 처음엔 나를 놀리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이 이 정도로 잘 사는지 몰랐던 거죠.” 이처럼 막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서울 양천구에서 아내와 공동으로 영어·수학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아내가 평양외국어대학 출신으로 영어가 유창했기에 뛰어든거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한국의 영어배우기 열풍이나 사교육 시장이 매우 경쟁적이고 활발해서 “누가 탈북자한테 영어를 배우냐”는 조롱도 많았다고 한다. 학원 허가 절차도 까다로워 아내는 동네 가정을 돌며 방문학습 교사일을 시작했고, 김 대표는 막노동 현장을 돌았다. 그렇게 4년간 모은 돈으로 학원을 차릴 수 있었다.
탈북한지 올해로 17년째가 된 김 대표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여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궈낼 수 있었던 배경과 그 힘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가족’을 들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이미 죽고 없는 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허경은 / 사진 유화연
북에서는 고위 공직자, 남에서는 일용직 근로자로...
- 전 북한 고위 공직자 출신이니 개인 자금도 충분히 가져왔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하다. 한국 정부에서 받은 정착 지원금으로 초기 생활비를 충당한 것인가?
“4,200달러(약 450만원)를 가져와서 세 식구가 3~4년 살 거라 예상했으니 정말 한국을 몰랐던 것 같다. 북한에서 해외 무역대표를 맡아 외국을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와 와서 피부로 느낀 이곳 경제 수준은 유럽 국가들보다도 더 높았다. 2002년에 한국에 왔는데, 당시 우리 가족에게 지원된 정착 지원금은 대략 3,500만원 정도였다. 탈북민이라고 집을 전액 무료로 제공받는 건 아니다. 집세로 1,200만원 정도를 내고, 농이나 텔레비전 등 가구들도 사서 채워넣으니 거의 남는 돈이 없더라. 그런데 막내 딸만 하나 데려왔기에 아직 북에 남겨진 자식 둘을 데려오려면 돈을 더 모아야 했다. 탈북민 정착 지원금은 정말 처음에 딱 살 곳 정도만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집을 마련한 이후부터는 닥치는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막노동 공사 현장부터 돌게 됐다.”
- 김 대표는 무역을, 아내는 영어를 전공했으니 관련 분야로 취업을 시도했을법 한데...
“자본주의 무역은 많이 다르더라. 내가 해외에서 무역사업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그저 당국이 시키는 일을 하고 로임(월급)을 받는 체계였다. 또 북한에서는 그 달, 다음 달 등 당장 필요한 거래를 해 나가는 수준인데, 한국의 판매유통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10년, 20년, 이렇게 장기계약을 통해 이미 기업 간 관계가 구축돼있다보니 뚫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한국어에 워낙 외래어가 많아 언어소통도 쉽지 않고 탈북자라는 거부감이 있어서인지 일반 회사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나이 50이 넘은 몸으로 공사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청년도 아닌 사람을 받아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영어를 잘 했지만, 한국 상황을 생각해보라. 미국,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고 싶지 누가 북한 사람에게 영어를 배우고 싶겠나. 그건 당연한 심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도 가방 하나 메고 집집마다 돌며 가정학습 일부터 시작했다.”
- 일용근로직으로 돈을 벌어 4년만에 건물을 임차하고 학원을 운영한다는 건 한국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빠르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아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배우겠다는 학생이 없으니 처음엔 힘들었다. 당시 어느 목사님을 통해 한솔교육(현재 능률주니어랩) 가정방문 교사직을 알게 됐고, 강서지부에서 70가구를 인계받게 됐다. 그런데 아내가 탈북자라는 소문이 퍼져서 학생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20가구 정도만 남게 됐다. 강서지부에서도 난감해하고 아내도 이에 낙담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었다. 그래도 20가구라도 정말 열심히 가르쳐서 실력으로 평가받자는 각오로 아내를 잘 격려해 시작하게 됐다. 아내가 정말 잘 가르치고 학생들 성적도 오르고 하니 그게 또 입소문을 타고 퍼지더라. 결국 떨어져나간 아이들 대부분이 돌아왔고 6개월 쯤 지나니 수익이 많이 올라 내 통장에 500만원이 넘게 쌓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는 학원버스를 몰며 그렇게 4년을 함께 버니 거의 1억이 모아졌다. 남들이 들으면 학원수입이 높은 줄 알겠지만, 채소 몇개 무치고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며 악착같이 모은거다. 그렇게 먹어도 북한에서보다 잘 먹는거였으니...”
▲ 2017년 4월 1일 방영된 TV조선 '모란봉 클럽'에 출연한 김태산 대표 (사진=TV조선 '모란봉 클럽' 81회차 방송 화면 캡쳐)
남북 발전 격차, ‘자유’로부터 시작
- 탈북 4년만에 개인사업자가 됐다. 창업을 꿈꾸는 탈북민들에게 경험자로서 조언한다면?
“준비된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왜 이렇게 빠른 시일 내 발전했는가를 연구해본적이 있다. 바로 ‘자유’가 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살린 것이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내 노력만큼 결실을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백가지 능력을 가졌어도 당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북한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 ‘자유’. 그것이 오늘날의 북한과 한국을 만든 차이다. 또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섣불리 창업에 뛰어들지 말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충분한 자금이 모아질 때까지는 소비를 줄이며 저축하길 바란다. 남의 돈(대출)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포기가 쉽다. 그런데 내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다 투자해서 사업했다고 가정하면, 쉽게 포기가 안된다. 어떻게든 사업을 일으키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
- 교육 사업을 계속 확장·지속하는 특별한 이유나 목표가 있는가?
“처음에 프랜차이즈 학원에 지부허가를 받고자 했을 때, 탈북자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며 본사로부터 많은 우려와 거부 의사를 받았었다. 그 때 간절히 부탁하며 “허가만 내주면 잘 일으켜서, 나중에 통일 후 평양에도 이 프랜차이즈 그대로 가져가 열겠다”고 말했다. 물론 어이없는 웃음이 돌아오긴 했지만, 난 정말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통일은 반드시 된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가족이 사업성공의 원천
- 충분한 자본과 지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성공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있을까?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말투도 거칠고 성격도 불같이 급하다. 화도 잘 냈다가 또 세상 허망함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한다. 때때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뭐하러 이렇게 악착같이 사나’, ‘저기에 빠져 죽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은 게 가족이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일과를 마치는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면 내가 무너지면 안되는거였다. 가족이 있었기에 힘을 냈고, 또 내가 있었기에 가족들도 버텨준 것 아닌가.”
- 북에도 가족, 친인척들이 있을텐데 그들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지금도 연락하는 이들이 북에 있는데, 여러 소식통을 접하다보니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북에 제2의 고난의행군이 오고있다고 하는데,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힘차게 그 길을 견뎌내주길 바란다. 북한에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허경은 기자 kayheo@kd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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