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갈 때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성이라 할 수 있는 아이 성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케 되었고, 모두들 애통과 염려와 두려움들에 빠지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아래 본문 전인 5절에 보면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게 된 것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그 바로 전만 하더라도 성을 돌고 나팔을 불며 외치는 것만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역사로 인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림과 함께 대승을 거둘 수 있었고, 게다가 요단 강물까지 한 곳에 쌓여 멈춰지게 되는 역사, 사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이적까지 생생하게 경험했음을 볼 수 있는 것인데..
사실상 그러한 때들과 아래 본문의 아이 성에서의 패배 때에 있어 차이는 오직 한 가지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래 본문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다름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의 여부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 곧 어떤 면에서는 참 황당해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따랐을 때 정말 요단 강물이 멈춰졌고, 게다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며 외칠 때 성벽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 곧 어떤 면에서는 심히 이상해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전적으로 그대로 따랐을 때 실제로 순식간에 성벽이 무너져 내리게 되었던 반면 아래 본문과 전후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아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들을 훔치고 숨겼을 때, 그것도 단지 한 사람이 몰래 어기고 죄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아이 성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하거나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을 주장하시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곧 선악 간 심판하시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 가운데 진노하시며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본적으로는 오직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말씀의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 역사하심에 합당한 것이고,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 있어 다름 아닌 말씀대로의 믿음이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와 같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이 될 수 있게 하시는 분, 다시 말해 무엇보다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대문과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그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마치 요단 강물이 멈춰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과 같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크고 작은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 가운데 거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아이 성과 같은 문제와 고통들, 징계와 심판들에 헤매게 되느냐에 있어서도 똑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이자 정말 그에 합당하게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함이 아닐 수 없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임은 물론..
다른 한 편으로는 말씀을 버리고 죄악들을 범함으로 인해 실패와 패배들, 곤고와 비참들 등에 빠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다시 돌이켜 다른 그 무엇보다 오직 말씀으로, 오직 말씀의 자리, 말씀의 결단과 몸무림들로 또다시 나아가게 될 때 완전히 달라지고 얼마든지 역전케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임을 내포하는 것이며, 참으로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로의 이치와 원리이자 방법과 통로인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곧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다시 말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맛보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이적과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7:10~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13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