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8일, 23년전, 나는 체코 프라하에 있었다. 비엔나의 유럽신장학회에 참가 후 post congress tour로 3일간 체코 여행 중이었다. 전날 우리나라에서 소개받은 우리 나이또래의 프라하 대한무역진흥공사 지사장과 저녁을 먹었는데, 나에게 하는 제안이 식당 둘 중에 하나 골라는 것. 그 한 곳은 체코 식 중국집이고, 다른 한 곳은 그 때 나도 조금 알 수 있는 경기고등출신으로 나보다 6년 위이었던 민대사가 즐겨 가는 식당으로 제대로 된 체코요리, 주로 돼지고기, 와 하우스 비어가 맛있는 곳이라 얼른 체코식당으로 가자고 하여 색다른 돼지고기 요리와 풍미 좋은 맥주로 하루 저녁을 잘 보내었다. 아, 그 전에 지사장의 안내를 받아 국립현충원인 비세그라드에 들러 그 나라의 문호, 작곡가 스메타나 등의 묘를 구경하였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려하니 같이 여행 중인 싱가포르 의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 대통령이 죽었다는 이야기. 깜짝 놀라 확인을 하니까 이북의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당장 앞으로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귀국하느냐? 하고 우리나라에 급히 전화를 걸었더니 처가 말하기를 서울은 평온하다. 그럼 3일 후에 귀국하기로 하고 우리나라 예천의 회룡포같은 Telc로 출발하였다.
내가 의대 졸업 후 5년간 수련을 받고 군대에 갔던 1977, 우리의 구호가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초전박살 야. 이었다. 78년 일동의 아전병원에서 내과과장을 끝내고 한남동 국군 정보부대에 차출되어 남들보다 한 달 먼저 4월 1일 전입하였더니 4월 15일 무슨 날이라고 경계를 하더니 그날이 바로 김일성 생일이었고 10, 26때도 국방부 및 국방부 직할 부대는 부대에 비상 대기 중이었으나 우리 부대장이 우리는 대북 첩보가 문제이지 국내문제는 초연하여야 한다며 장교들도 대령급만 대기시키고 퇴근하였었다.
85년 호주 멜본의 로열 멜본병원에 1년간 연수를 가 있었다. 이 때 내 주위의 동료들은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 남이냐? 북이냐? 인자한 얼굴의 김일성과 무서운 눈초리의 우리 전대통령, 운동장에서 펼치는 아동들의 화려힌 매쓰 게임과 이마로 벽돌을 깨는 우리 특전사 애들 등을 TV로 보고 우리 정치인 김영삼의 가택연금( house arrest) 뉴스를 들으면서 나를 북에서 온 것으로 오인하였다. 그래서 한 말이 우리는 북쪽 빼고는 모두 갈수 있으니 북은 자기 나라도 통행증이 없으면 못 움직이는 나라이다.
나도 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인공신장기 회사에서 북에 팀을 이끌고 책임자로 평양을 가라고 하였는데 내 밑의 교수를 보내었다. 또 금강산도 갈 수가 있었으니 내가 원하는 체제로 남북통일이 되어야 간다며 사양하였었다. 물론 북에 들어가는 그 순간 나의 인적사항은 모두 파악이 되는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으니 급수 높은 군사비밀 취급인가가 있었던 나니까 절대 사양. 한편 연길시립병원의 초청으로 연변에 갔다가 두만강을 따라 건너편의 이북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북의 절대왕조가 이제 3대가 내려왔다,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집권을 하였을 때 나는 그 나이에 어느 자리에 있었으며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를 생각해보면. 서울대학병원 내과 전공의 3년 차이었고 남들보다 의학과 내과는 좀 더 안다고 하나 다른 것은 모르는 상태이었으니 김정은이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하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러나 아직 그 체제가 유지되는 걸 보면 그들이 말하는 인민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인민을 희생시키고 비상한(?) 체제 유지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최근 TV에 나온 얼굴을 보면 그 웃음이 남의 누구 웃음과 너무 닮아 걱정이다.
첫댓글 우리는 당연히 북한이 붕괴되고,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리라 생각하고 모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까딱하면,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권을 빼았은 자들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바보들을 보면, 그런 답이 나옵니다. 제발, 기우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