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왕 : 충혜왕(忠惠王)
모후 : 충혜왕의 정비 원나라 공주 덕녕공주(德寧公主)
숙부 : 공민왕(恭愍王)
친남매 : 충목왕(忠穆王)
부군 : 원나라 노왕(魯王), 자식은 없었다.
그녀는 덕녕공주(德寧公主) 소생으로 원나라 노왕(魯王)에게 시집갔는데 원나라가 망할 때 북평(北平)에서 실종되었다. 공민왕이 상서(尙書) 성준득(成准得)을 보내어 중서성(中書省)에 보고한 후 공주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이때 명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 : 주원장)가 환관을 보내 중국 각지의 군대에 탐문하여 마침내 북경(北京 : 지금의 중국 베이징)에서 공주를 찾아 옷과 먹을 것을 내려주고는 고려로 돌려보냈다. 왕이 이를 듣고 불쾌하게 여기고 있던 중 신돈(辛旽)이 몰래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오중륙(吳中陸) 등을 시켜 이런 글을 올리게 하였다.
“부인이 남편에게 시집가면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켜 감히 다른 사람에게 개가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장녕공주는 본래 왕후의 후손인데도 원나라에 있을 때 품행이 나쁘다는 이유로 비방을 받았으니 우리나라의 수치였습니다. 원나라가 멸망할 때에도 절개를 지켜 순절하지 못하고 명나라 군사에 의해 사로잡혔으니 이 또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명나라에서 오히려 공주가 우리 조종(祖宗)의 후예임을 감안해 우리에게 돌려보냈으니 전하께서는 어떻게 대우하시겠습니까? 만약 후하게 대우해 오전(五殿) * 과 나란히 받들어 모신다면 돌아가신 선왕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나라 사람들의 이목인들 또한 어찌 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먼 변방으로 보내 여생을 마치게 하소서.”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개경에 불러들이고 백관들에게 나가서 영접하도록 하였으며 덕녕공주전(德寧公主殿)에 살게 하였다.
* 왕실에 있는 다섯 곳의 전각이나 그곳에 기거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대왕대비·왕대비·대비·중전·동궁전을 지칭하였다. 오전에 배열이란 이 다섯 전각에 기거하는 사람과 같은 반열로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 장녕공주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B%85%95%EA%B3%B5%EC%A3%BC
[네이버 지식백과] 충혜왕(忠惠王) 공주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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