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학자의 자유이자 권리다.
비판을 통한 다양한 견해는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권력을 견제하는 귀중한
동력이 된다.
그러나 공직은 다르다.
대통령이 임명한 정부의 핵심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신념보다 국정
운영의 방향과 공적 책임이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인사'가
안고 있는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그는 정부가 삼성,
SK 등 민간기업과 함께 추진하는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내세우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물론 정책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일회성 의견 개진을 넘어,
현 정부의 경제 철학과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일관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업 분야의 경쟁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차원을 넘어섰다.
국가 간의 총력전 시대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으로 수백억 달러를 투입하며 산업을 육성하고
있고,
일본은 정부 주도의 부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 또한
'유럽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으로
공급망 재편에 나섰으며,
중국은 국가가 산업 전략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정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섰다.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규제를 정비하면,
민간이 그 기반 위에서 경쟁하는
'협력
모델'이
새로운 표준이 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조율해야 할 규제합리화위원장이 자유시장경제라는 잣대만을 고집하며 정부 정책과 거리를 두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토론을 넘어 국정 철학의 근본적인 괴리를 보여준다.
문제는
경제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그는
'스타벅스
응원 구호'
논란에 대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중징계를 두고
"북한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하며, "이
땅에 5·18이
그런 성역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학생들의 행동을
'스타벅스
논란'을
풍자한 장난으로 규정하며,
역사의 성역화 때문에 이것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역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토론은 가능하다.
그러나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시민들의 역사이며,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민주주의 가치 계승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아왔다.
그런 정부의 핵심 인사가
5·18의
성역화를 반복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정부가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역사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메시지다.
경제관이든 역사관이든 학자로서는 얼마든지 소신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공직은 자신의 철학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국정 방향을 책임 있게 구현하는 자리다.
실용 인사의 본질은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데 있지만,
그 전제는 정부의 기본 철학 및 국정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시장주의만을 앞세워 선을 긋고,
정부의 역사 인식과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인사가 핵심 요직을 맡고 있다면
이는 다양성이 아니라 방향성의 혼란일 뿐이다.
인사는
곧 메시지다.
대통령이 누구를 어떤 자리에 앉히느냐는 그 정부가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병태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개인의 거친 발언 때문이 아니다.
정부의 경제 철학 및 역사 인식과 결이 다른 인사를 정책 조율의 핵심에
앉힌 결정 그 자체가 문제다.
이
위원장은 임명 다음날 "당시의
저는 공직이라는 무게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자유주의자 시각에서 오로지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매몰돼 있었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난 지금,
또 공직의 무게를 잊은 듯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실용은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전문성을 국정에 활용하되,
최소한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진짜 실용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이병태 위원장 인사는 실용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할 대표적인
'인사
참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