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강둑
한낮 기온이 높이 올라가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하다. 지난 봄날엔 인적 드문 근교 산자락을 올라 산나물을 뜯어 일용할 찬거리로 삼고 지인과도 나누었다. 이제 산나물은 쇠어서 뜯어올 게 없다. 오월 하순 넷째 주말은 산행이 아닌 강둑으로 걸음을 나섰다. 시내버스 첫차가 운행하기도 전인 새벽녘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마산에서 동대구로 올라가는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였다.
주말이라 창원중앙역에서 타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차는 통근용 열차라 주말이면 오히려 승객이 줄었다. 나는 진영역을 지나 한림정역까지 갈 생각이다. 비음산터널을 빠져나간 열차는 진례 들녘에서 다시 지하구간을 지나 진영역이 나왔다. 엊그제 고 노무현대통령 10주기 추모로 이목이 집중된 봉하마을이 보였다. 부엉이바위보다 더 아찔한 사자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열차 진행 방향 왼쪽은 봉하마을이고 오른쪽은 화포천 습지다. 용제봉과 비음산에서 북으로 흘러온 하천이 모여 낙동강과 합류하기 전 형성된 배후습지다. 갯버들이 무성해 여름 철새들이 찾아와 먹이 활동을 하기 좋은 곳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몽환적인 물안개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만 열차가 속도를 내어 달려 찍을 수 없어 아쉬웠다.
열차가 낙동강을 건너기 전 한림정역에 내렸다. 철로와 나란한 모정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걸어 한림배수장 방면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들녘엔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 일손이 바빴다. 시전마을을 지나 신촌마을에 한림배수장이 나왔다. 샛강 화포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이었다. 산모롱이 돌아간 저 멀리 삼랑진 뒷기미였다. 뒷기미는 밀양강이 낙동강과 합수하는 곳이다.
지난 봄방학 때도 술뫼생태공원을 지난 적 있다. 술뫼는 ‘시산(匙山)’의 순우리말이다. 강변에 숟가락을 엎어둔 형상의 언덕이 시산이고 거기에 자연 마을이 들어서 있다. 예전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면 피수대(避水臺) 기능을 하던 강벽 언덕이다. 4대강 사업으로 너른 둔치 농지는 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술뫼는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질 무렵은 저녁놀이 아름다운 곳이다.
자전거길 길섶에는 개양귀비 꽃이 한창이었다. 길고 긴 강둑에 행정당국에서 신경 쓰서 양귀비를 심어 제철에 꽃을 피웠다. 밀양 반월생태습지 초동 연가 꽃길을 연상하게 했다. 거기는 가을이면 코스모스로도 유명하다. 하동 북천 꽃밭을 연상하게 했다. 드넓은 둔치에는 외래 도입종으로 귀화식물이 된 금계국이 한창이었다. 강 건너편 밀양 오산 강둑까지 노란 금계국 세상이었다.
둑길 소실점이 끝난 데가 시산이었다. 공기업에서 은퇴 후 시산마을에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을 찾아 안부를 나누었다. 자그마한 텃밭엔 여러 채소들을 심어 가꾸었다. 통유리로 강변 조망이 좋은 거실로 들어 배낭에 넣어간 곡차를 꺼냈다. 지인은 올 여름 첫 수확 오이를 안주로 마련했다. 지인과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다 길을 나서 강변 공원으로 조성된 시산동산에 올랐다.
점심때가 일렀지만 시산동산 정자에서 도시락을 비웠다. 이후 강둑에서 마땅히 쉴만한 곳이 없어서였다. 시산동산에서 내려와 둔치를 걸었다. 파크골프장엔 주말을 맞아 삼삼오오 샷을 날려대는 골퍼들이 많았다. 나는 관심이 없고 인연이 닿지 않은 종목이었다. 한 사내가 나를 보고 어디로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와 한림정역에서 강둑 따라 걸어 수산 방향으로 걷는 중이라고 했다.
파크골프장 인근에도 개양귀비와 금계국이 가득 피어 있었다. 가동마을을 돌아 유등으로 향했다. 유등배수장은 김해와 창원의 경계였다. 유등마을에서 유청마을로 갔다. 강변 대숲 서원사라는 작은 절을 앞두고 대산미술관에 들려 서울에서 활동하는 섬유미술 작가의 특별 기획 전시를 관람했다. 미술관을 나오니 한낮이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진영으로 가는 3번 마을버스가 와 탔다. 19.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