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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니요, 그러고도 정신과 의사입니까?” 아라이가 정색하고 말했다.
그때 낯익은 여자가 지나갔다. 나카지마 사쿠라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편집자이다 보니 가끔은 출판사에서 만나기도 한다.
“어머, 나카지마 씨, 어쩐 일이야? 일?”
아이코가 말을 걸자 사쿠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라이도 안면이 있는 듯 인사를 했다.
“지인이 촬영한 영화 홍보차 왔어. 그런데 대형출판사는 냉정하네.” 사쿠라가 언짢은 듯이 말했다. “화제작이 아니면 박스 기사도 내줄 수 없다나.”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선 채로 피웠다. 초조한 모양인지 한숨을 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좋은 책을 만들면 아라이 군도 열심히 팔아주지.”
“맞아, 나카지마 씨, 말 한번 잘했다.” 아이코가 끼어들었다.
“당신 얘기가 아니야. 당신은 좋은 대우 받는 인기 작가잖아.”
사쿠라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좋은 대우를 받다니, 말이 너무 심하네.”
“그럼, 내 책 얘기구나.” 이라부가 말했다.
“누구야? 이 사람.”
“됐어요. 그냥 무시하세요.” 아라이가 말했다.
“뭐라고?” 이라부가 덤벼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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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 말 취소해.” 아이코가 이라부를 밀어내며 사쿠라와 맞섰다. “나도 고민하고 고생해서….”
“그래도 넌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인구 1억 2천만의 일본어권에 전업 작가가 대체 몇 명이냐고? 몇백 명이 급여를 받잖아. 편집자들이 비위를 맞춰주겠다, 미팅한다며 맛있는 거 사주겠다, 그뿐인가, 호화 여행까지 시켜주잖아. 세계에서 그런 나라는 일본밖에 없어. 이 나라는 작가 천국이야.”
사쿠라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아라이는 코를 벌름거렸다.
“이봐, 아라이 군, 방금 말 한 번 잘했다고 생각했지?” 아이코가 팔을 툭 치자 아라이는 굳은 표정으로 얼굴만 붉힐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우시야마 씨도 말이야, 한두 번 좌절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거 아니야. 나는 훨씬 더 냉혹한 현실에 여러 번 맞닥뜨렸다고.”
“왜 그래, 뭣 땜에 화난 거야?”
“그럼 얘기해 주지.” 사쿠라는 잠시 숨을 돌렸다. 눈빛이 진지해졌다.
“내가 죽 응원하며 쫓아다닌 젊은 감독이 있는데 삼 년 만에 새 영화를 찍었어. 그런데 그게 굉장한 작품이야. 마니아층을 위한 영화도 아니고 독선적이지도 않아. 익살스럽고 수준 높은 오락영화야. 배우도 훌륭했고 촬영도 잘했더라고. 시사실에서 보는데 눈물이 나면서 막 흥분했어. 이제 이 감독도 유명세가 따르고 드디어 햇빛을 보겠구나 싶더라고. 그런데 관객이 없는 거야. 개봉 첫날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영화관에 갔더니 감독과 프로듀서가 한산한 객석 한구석에 앉아 있기에 어떻게 할까 생각했지. 나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도저히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영화 끝나고 나서 눈인사만 하고 돌아왔어. 그 상황에서도 감독은 씩씩하게 웃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