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권력을 위한 칼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방패이다
― 제헌절의 의미와 헌법 개정의 시대적 책임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한 나라의 가장 높은 지붕 아래에서
국가는 영토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군대가 강하고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 나라를 나라답게 세우는 마지막 힘은 국민과 권력이 함께 지켜야 할 공통의 기준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 기준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인 것이 헌법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제헌절은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행정안전부는 제헌절을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헌법의 제정을 축하하고, 그 이념의 수호와 준법정신을 되새기는 날로 설명한다. 2026년부터는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뒤 18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는 단순히 하루를 쉬는 날이 늘어난 일이 아니다. 헌법의 가치와 정신을 국민의 생활 속에서 다시 생각하자는 국가적 선언에 가깝다.
제헌절의 참뜻은 헌법이라는 문서가 만들어진 사실만을 기리는 데 있지 않다. 왕이나 지배자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한 데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이 짧은 조항 안에는 수많은 희생을 통하여 얻은 근대 민주주의의 결론이 담겨 있다.
권력은 본래 자신을 확대하려는 성질을 지닌다. 한 번 손에 쥔 힘은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고, 더 넓은 영역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헌법은 바로 그 권력의 본능 앞에 세워 놓은 가장 높은 울타리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법원도, 수사기관도, 군대도, 정당도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사용할 수 없다.
제헌절은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절제의 날이며, 국민에게는 주권을 되새기는 날이다. 법률가만 헌법을 읽는 날이 아니다. 국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그 나라가 어떤 원칙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다.
헌법을 기념한다는 것은 헌법책에 꽃을 바치는 일이 아니다.
헌법이 명령하는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과 인간의 존엄을 현실에서 지키는 일이다.
Ⅱ. 가운뎃말
1. 헌법은 국가의 장식물이 아니라 권력의 한계선이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다. 모든 법률과 행정작용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으로 설명하며, 국가작용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할 때 이를 통제하고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핵심 임무라고 밝히고 있다.
헌법의 첫째 임무는 국가에 권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둘째 임무는 부여한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일이다. 권한을 주는 조항만 있고 제한하는 원리가 없다면 그것은 헌법이라기보다 권력의 사용설명서에 가깝다.
헌법은 국민에게 “국가를 따르라”고만 명령하지 않는다. 국가를 향하여 “국민의 존엄을 침해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동시에 권력에는 더 무거운 책임을 부과한다.
헌법 제10조가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헌법 전체를 밝히는 등불이다.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 원칙은 국가가 좋은 목적을 내세운다고 해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보를 말하며 자유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질서를 내세우며 국민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존엄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헌법이 권력을 불편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헌법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것이다.
살아 있는 헌법은 권력의 걸음을 늦추고, 그 손을 살피며, 힘을 행사할 때마다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요구한다. 헌법재판소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헌법을 장식적·명목적 규범에 머물렀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이 법전 속 문자로만 남고 공권력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헌법을 가진 나라일 수는 있어도 헌법주의가 살아 있는 나라라고 말하기 어렵다.
2. 헌법을 가장 자주 말하는 시대에 헌법이 가장 쉽게 소비된다
오늘의 정치에서는 헌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여야 모두 헌법정신을 내세우고, 서로가 헌법을 위반했다고 비판한다. 정치적 갈등이 커질수록 헌법은 더 빈번하게 인용된다.
문제는 헌법을 대하는 태도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항은 절대적 원칙으로 높이면서 불리한 조항은 외면한다. 같은 행위를 두고 우리 편이 하면 정당한 권한 행사라 말하고, 상대편이 하면 헌정질서의 파괴라고 규정한다. 헌법의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안경으로 헌법을 재단하는 셈이다.
이러한 선택적 헌법주의는 노골적인 위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겉으로는 헌법을 존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법치를 외치면서 법을 정치적 보복의 통로로 삼는다.
헌법은 승자의 전리품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패자를 응징하기 위해 사용하는 칼도 아니다. 정파의 이해를 국가의 원칙으로 포장하는 외투도 아니다. 헌법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보호해야 하며, 다수의 결정만큼 소수의 권리도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는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지만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힘이 소수의 존엄을 짓밟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헌법이다.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헌법 위에 설 수 있는 면허가 될 수 없다.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실은 거창한 위헌행위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공직자가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본분을 잊고 정파의 하수인처럼 행동할 때, 법 집행이 사람과 진영에 따라 달라질 때, 국회가 충분한 숙의 없이 법률을 밀어붙일 때, 수사와 재판이 정치적 의심을 받을 만큼 공정성과 절차를 잃을 때, 국민의 표현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억압할 때 헌법의 토대는 조금씩 금이 간다.
헌법은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만 필요한 비상문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집회가 허용되는가,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되는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가, 장애인과 노인이 차별받지 않는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하는가, 언론이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가와 같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헌법의 생명력이 드러난다.
헌법을 잘 지킨다는 말은 헌법 조항을 많이 외운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자유까지 인정하고,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절제하며, 목적이 옳더라도 절차를 어기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법치는 상대에게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기술이 아니다.
먼저 자신을 법 아래 세우는 윤리이다.
3. 헌법은 성전이 아니며 시대와 함께 자라야 한다
헌법을 존중하는 것과 헌법 개정을 금기시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헌법은 영원히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는 성전이 아니다. 사회가 달라지고 국민의 삶이 변화하면 헌법도 시대의 요구를 담아낼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의 열망 속에서 마련되었다. 대통령 직선제와 기본권 확대, 헌법재판제도의 부활 등 중요한 성취를 담았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와 국민의 의식은 크게 변하였다.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데이터 권리, 생명윤리, 지방소멸, 초고령사회, 저출생, 사회적 양극화, 새로운 노동 형태, 미래세대의 권리 같은 과제들은 1987년 당시 충분히 예상하기 어려웠다.
헌법재판소도 헌법이 국민의 합의된 의사를 반영하는 규범이며, 시대와 국민의 인식 변화에 따라 환경과 동물 등 새로운 가치를 개정이나 해석을 통하여 헌법적 차원에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규범이라고 설명한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는 미래세대가 현재의 정치과정에 충분히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입법자의 구체적인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대에 맞는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
권력구조의 개선,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 조정, 지방분권의 강화, 국민 기본권의 확대, 미래세대와 생태환경의 보호, 디지털 시대의 인격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은 충분히 숙의할 가치가 있다.
개헌을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순한 의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현행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만으로 민주적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낡은 제도를 방치하는 일 역시 헌법정신을 소홀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헌 자체의 찬반이 아니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어떤 절차로 고치느냐가 핵심이다.
국민의 자유를 넓히고 권력의 책임을 강화하며 미래세대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개헌은 국가의 성숙을 의미한다. 특정 세력의 집권 기간을 늘리거나 정치적 경쟁자를 배제하고, 권력기관을 장악하기 위한 개헌은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훼손하는 일이다.
헌법은 시대와 함께 걸어야 한다.
권력자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어서는 안 된다.
4. 개헌이 정치적 징치의 도구가 될
개헌에는 언제나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질서를 여는 창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이 자신의 욕망을 합법의 옷으로 감추는 문이 될 수 있다.
역사는 법률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모든 통치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헌법재판소의 교육 자료도 나치 독일의 폭력이 합법적인 선거와 법률의 외형 아래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헌법재판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제시한다. 법의 형식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의 내용과 목적, 절차가 인간의 존엄과 권력 제한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
특히 개헌을 정치적 징치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징치란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본래의 의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정치적 반대자를 제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과거의 경쟁 세력을 처벌하며, 특정 집단이 다시 권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헌법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포함한다.
정치적 책임은 필요하다. 위법행위에는 법률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권력에 대해서도 엄중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책임은 독립된 수사와 공정한 재판,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물어야 한다.
헌법 자체를 응징의 도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 시대의 분노를 헌법 조문에 새겨 넣으면 그 분노가 사라진 뒤에도 상처는 제도 안에 남는다. 오늘은 상대를 겨눈 칼이 내일은 자신과 국민을 향할 수 있다. 권력은 주인이 바뀌어도 그 속성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개헌안이 특정 인물의 임기를 겨냥하고 있는가.
특정 정당이나 세력의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 하는가.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을 공정하게 개혁하려는 것인가, 새로운 권력에 복종시키려는 것인가.
국민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것인가, 권력의 통제 수단을 늘리려는 것인가.
이러한 기준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개헌의 문장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과거의 적을 향하여 쓰여서는 안 된다.
헌법은 복수의 기록장이 아니라 공존의 계약서이다.
정치적 원한이 헌법의 잉크가 되는 순간, 민주공화국은 다음 세대에 갈등을 유산으로 넘기게 된다.
5. 개헌에는 넓은 합의와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
헌법 개정은 일반 법률을 고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행 헌법은 개헌안이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안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서 확정되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 개정에 폭넓은 정치적 동의와 국민의 직접적 승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법률은 다수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 헌법은 다수와 소수,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합의가 필요하다.
개헌을 선거 일정에 맞추어 서두르거나, 특정 정권의 임기 안에 성과를 남기려는 방식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공론화와 국민 참여, 전문가 검토, 지역과 세대의 의견 수렴이 선행되어야 한다.
권력구조만을 개헌의 전부처럼 다루는 태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를 몇 년으로 정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국민의 자유와 존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있다. 노동과 복지, 환경, 교육, 지방자치, 정보 인권, 미래세대의 권리를 어떤 원칙으로 담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개헌이 정치인들만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농민과 노동자, 청년과 노인, 장애인과 소수자, 지방에 사는 국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삶까지 헌법의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
헌법은 국가 운영자의 계약서가 아니다.
국민 모두의 삶을 감싸는 가장 넓은 지붕이다.
6. 헌법을 지키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헌법 수호의 책임을 대통령이나 헌법재판소에만 맡길 수 없다.
국회는 입법을 통하여 헌법을 지켜야 한다. 법원은 독립된 재판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행정부는 권한을 행사할 때 비례와 절차를 지켜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되 사실과 책임의 원칙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위헌적 행위에는 눈을 감으면서 반대편의 잘못만 비판한다면 헌법은 진영의 깃발로 추락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품격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민의 판단과 절제, 사실에 대한 존중과 상대의 권리에 대한 인정이 함께해야 한다.
자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이 듣기 싫은 말이 존재할 권리도 포함한다.
평등은 나와 가까운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반대편 사람에게도 같은 법의 기준을 적용하는 데서 완성된다.
법치는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엄격한 질서가 아니다. 권력이 클수록 더 엄격한 책임을 지는 원리이다.
헌법을 지킨다는 것은 거대한 영웅적 행동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직자가 사사로운 청탁을 거절하는 일, 판사가 여론보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일, 기자가 진영보다 사실을 앞세우는 일, 시민이 허위정보를 퍼뜨리지 않는 일, 다수가 소수의 목소리를 짓밟지 않는 일에 헌법의 숨결이 머문다.
헌법은 국민 위에 놓인 돌비석이 아니다.
국민의 삶 속을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강이다.
그 강물이 맑아야 민주주의의 들판이 마르지 않는다.
Ⅲ. 맺음말
헌법은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제헌절은 과거의 한 날짜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를 다시 세우는 날이다.
헌법은 완전하지 않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넓히고 권력구조의 결함을 바로잡으며,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권리를 담아야 한다면 진지하게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
현행 헌법을 무조건 신성시하여 변화 자체를 막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헌법은 살아 있는 공동체의 규범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듣고 미래의 요구에 응답한다는 뜻이다.
그 변화에는 분명한 금도가 있어야 한다.
헌법을 특정 정권의 연장을 위하여 고쳐서는 안 된다. 정치적 반대자를 제도적으로 제거하기 위하여 손대서도 안 된다. 수사와 재판, 언론과 선거제도를 권력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그 위에 개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헌법은 국민의 방패가 아니라 권력의 칼이 된다.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정신을 죽이는 일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헌정 파괴이다.
정치적 징치는 법과 절차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죄가 있다면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헌법을 고쳐 상대의 권리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제도화된 보복이다.
헌법은 오늘의 분노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오늘의 대통령보다 오래 살아야 하며, 오늘의 여당과 야당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한 세대의 승리와 패배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국민의 자유까지 지켜야 한다.
좋은 개헌은 권력자에게 더 많은 힘을 주는 개헌이 아니다.
국민에게 더 넓은 자유를 돌려주고, 권력에는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며, 소수자와 약자, 미래세대까지 국가의 보호 안에 세우는 개헌이다.
좋은 헌법은 모든 갈등을 없애 주지 않는다. 갈등을 폭력과 보복이 아닌 대화와 절차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다. 승자가 패자를 완전히 짓밟지 못하게 하고, 패자에게도 다시 참여할 수 있는 희망을 남겨 둔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제도를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된다.
제헌절에 우리가 태극기를 다는 까닭은 국가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이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며, 법이 강자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헌법은 종이 위에 쓰인 가장 높은 법이다.
헌법정신은 사람의 양심 안에 새겨진 가장 깊은 법이다.
종이 위의 헌법을 고치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속의 헌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바꾸어도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 상대를 제거하려는 증오,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적 법의식이 남아 있다면 새로운 헌법 역시 오래지 않아 낡은 권력의 옷이 되고 만다.
헌법을 지킨다는 것은 국가를 사랑하는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다.
개헌을 논의한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책임 있는 자세이다.
다만 그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있어야 한다. 복수가 아니라 공존이 있어야 한다.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있어야 한다.
헌법은 권력자의 손에 들린 칼이어서는 안 된다.
힘없는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방패여야 한다.
그 방패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펼쳐지는 나라, 그것이 제헌절마다 우리가 다시 꿈꾸어야 할 민주공화국의 얼굴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