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57〉
■ 추석 (유자효, 1947~)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아, 추석이구나.
- 2013년 시선집 <아버지의 힘> (시인생각)
*유례없는 폭염을 보인 2023년도 여름이 무사히 지나가고, 어느덧 한가위 추석이 코앞입니다. 그제부터 요란하게 내리던 가을비가 어젯밤 늦게까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 새벽에는 잠시 그치고, 밤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덮인 가운데 바깥은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가 가득합니다.
올해는 여는 해 추석과는 달리 긴 연휴를 맞게 되는데, 이제는 뵐 수 없는 부모님 모습이 무척 그립군요.
이 詩는 어느 해 추석을 맞이하여, 자신을 자애롭게 품어주고 사랑을 보이셨던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부드럽고 넉넉한 얼굴을 회상하는 작품입니다.
이 詩에서는 무엇보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큰 사랑을 쉰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으며 애잔해 하는 모습이, 짧고 간결한 글 속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잘 나타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요즘 같은 추석 무렵 이 詩를 천천히 읽으며 생각해보니, 정말 나이들 때까지 철이 없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띠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며 시인이 느꼈던 것처럼 덩달아 마음이 쓸쓸해지는군요.
우리 세대들에게는 대개 부모님 두 분을 다 떠나보낸 것이 현실이므로 추석이 되면 살아계실 적 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총총히 떠오르면서 가슴속 깊이 회한으로 시릴 수밖에 없나 봅니다.
… 비가 그친 이후라 더 그렇겠습니다만 이번 추석은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보일지 모르겠군요. Choi.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저도 연휴기간 포함 약 1주일 정도 ‘오늘의 詩’를 생략하고, 다음 주 10.5(목)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즐겁고 의미 있는 추석 연휴 보내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