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밴쿠버의 하늘. 가을처럼 맑고 파랗다.
그 푸른 창공을 뚫고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 차 안에서 찍어 본 밖의 기온은 30도.
엊그제까지만 해도 추워서 겨울 츄리닝을 입었는데... 밖에 나갔다 더위에 혀 나온 개 몰골로 들어와 컴을 켠다. 예전 써 논 글들 뒤지다보니 4월에 쓴 다음의 글이 있는데...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옮긴다.
EBS '명사의 스승'이란 프로에서 '아름다운 시인 신달자' 란 제목의 방송을 봤다.
신달자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지만 글을 읽지 못했던 착한 어머니와 많은 여자들로 어머니를 울렸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프다. 훗날 그녀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20년 가까이 누워 지낸 남편과 그 옆에 나란히 누워 9년을 쓰러져 지낸 시어머니는 그에게 삶의 고통을 맛보게 했다.
신달자는 대학시절 김남조 선생의 수업을 들으며 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한 번에 10편이나 되는 시를 쓸 정도로 열정은 가득했지만 한 편의 시에 모든 것을 담길 원했던 스승 김남조는 신달자에게 "시를 보는 정교한 눈을 가지지 못했다"며 혼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스승 김남조는 1973년 신달자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을 '평생 문자를 받들면서 살라'는 뜻의 '봉헌문자'로 직접 제목을 지어줄 정도로 남다른 제자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김남조와 신달자는 지금도 때론 친구처럼 모녀처럼 애인처럼 지낸다. 그는 김남조 시인의 이름을 들었을 땐 그이가 남자인줄 알았단다. 하여 그의 시 '아가에게'를 읽었을 때 그렇게 감상적인 남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아가의 머리맡에 햇빛이 앉아 놉니다/ 햇빛은 아가의 손님입니다// 아가가 세상에 온 후론/ 비단결 같은 매일이었습니다/ 아직 눈도 아니 뵈는 죄그만 우리 아가// 아가는 진종일 고이 잡니다/ 잠은 아가의 요람/ 아가는 잠에 안겨 자라납니다/ 아가는 평화의 동산/ 지즐대는 기쁨의 시내입니다.’ - 김남조 ‘아가에게’
김남조 시인이 신달자를 키운 1기 라면 2기를 키운 시인은 박목월 시인이다. 숙명여대 '문학의 밤'에서 처음 만난 박목월 선생은 졸업과 결혼 이후 우울증을 앓고 있던 신달자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매일 밤 집안의 모든 서랍장을 열고 닫으며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 박목월 선생은 그토록 찾아 헤맨 그 무엇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신달자는 "박목월 선생님은 내 시의 아버지이자 생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우리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 지금 계절에 딱 맞는(다시 옮기는 지금은 조금 늦었다만) 그의 시어를 1절만 음미 해 보자.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박목월 4월의 노래
(난 이번 방송을 보며 동요 '송아지'의 노랫말도 박목월 시인의 작품 이란 것을 새삼 알았다).
이런 스승들을 통해 갈고 닦아 내놓은 신달자 시인의 시 중 다음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시다.
그 곧은 정신/나라 위해 만세 불렀으면/유관순이 되었을
그 타는 열정/시에 바쳤으면/황진이가 되었을
식구를 위한 밥 한 솥에/목숨을 건
그 평범한 순교는 아무곳에도 이름자가 없다
어머니, 우리 나라 어머니 - 순교자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중에서)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땅은 나의 아버지//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들었다//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발톱 저리게 황망하다 - ('아버지의 빛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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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경향신문에 소개된 신달자 시인 관련의 글이다.
좀 길지만 읽고 나면 가슴에 아린 여운이 남더라. 시간 되면 읽어보길 권하며~
첫댓글 오랜만에 아침부터 정독했네! 신달자...이름을 들어본 정도였는데.. 명진이는 이 나이에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어 부럽네. 이렇게 고운(?) 문학적 감수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벤쿠버는 더워도 좋지? 가족이 있으니까!
hmm~ 글씨... 마누란 낼 공연이 있다며 난타(북) 연습 갔고, 딸은 쑥부쟁이란 한국 드라마를 같이 보자는데, 난 이렇게 컴에 매달려 각자 놀고 있다오. 이상기온인지 여기도 추웠다 더웠다 하네.
이야기 보따리가 푸짐하구먼~ 잘지내고있는것 같고..
맹진이는 프리랜서라 하였나? 일 시작한지 두달도 안되어 한달 휴가 받고 무지 좋것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그라,,,
어머니와 아버지..우리가 이 분들을 선택할순 없지..사랑을 아니 할수도 없지..우리를 낳아 주셨으니 말이다..살다 보면 때론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 같은 분을 만날 때가 있는 것 같아..나에게 있어 그런 분은 정달몽 선생님이었다..이제는 뵙고 싶어도 뵐 수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