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인내의 삶
송나라 때의 도해(道楷, 1043~1118) 대사는
깨달은 후 선문禪門의 종풍宗風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숭녕년崇寧年에 정인사淨因寺에 머물라는 황제의 칙서를 받고
대관년大觀年에는 천령사天寧寺로 옮겼습니다.
어느 날 황제가 사신을 보내 가사와 정조定照 선사라는 호를 하사했습니다.
대사가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황제는 다시 이효수李孝壽를 직접 대상의
처소로 보내 조정의 포상의 뜻을 전했으나, 대사는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이일로 크게노여워해 그 주州의 관리에게 대사를 잡아들이도록 했습니다.
잡혀온 대사에게 관리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대사께서 허약하고 여위셨는데 병이 나신 건 아니지요?"
평소 대사의 어질고 후덕함과 충성심을 아는 까닭에 그리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관리는 디시 물었습니다.
"만약 병이 났다 하시면 처벌을 면하실 수 있습니다."
관리는 어떻게 해서든 대사가 풀려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대사는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병이 없으면 없는 것이지 처벌을 면하고자 어찌 거짓으로 병을 앓는다고 하는가!"
관리는 할 수 없이 대사를 좌천시키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도해 대사는 덕행이 숭고하고 품행이 점잖고 엄하여 황제의 지극한
영예를 받았지만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비록 처벌을 받았으나
욕됨을 참고 굽히지 않았으니 이러한 인내의 힘은 투철한
신앙에서 나오는 것으로 뒷사람들의 모범이 될 만합니다.
부처님 제세시에 어느 날 한 비구가 보석상점에 탁발을 갔습니다.
그 보석상에서는 마침 국왕께 바치기 위하여 진주를 꿰고 있었는데 스님이
탁발하러 온 것을 보고 주인이 음식을 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때 꿰고 있던 구슬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것을 거위가 삼켜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보석상이 나와서는 보석이 보이지 않자 그 비구가 몰래 훔친 것으로
잘못 알고 구슬을 내놓으라고 묶어놓고 채찍으로 비구를 마구 때렸습니다.
그런데도 비구는 사정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많이 맞아 비구의 몸은 해지고 피가 땅으로 튀었으나
그 거위와 함게 묶어 달라고만 했습니다.
한참 후 거위가 똥을 싸자 그때 보석이 함께 나온 것을 본 주인은 왜 처음
부터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비구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만약 거위가 진주를 삼켰다고 이야기하면 성질 급한 당신이
거위 배를 갈라 죽였을 것이 아니요." 하자 그 주인이 자기가 경솔했음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귀의했습니다. 그 비구를 아주비구鵝珠比丘라고 부릅니다.
거위 한 마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살가죽이 찢어지는 체찍질을
달게 참아내고, 욕도 참아낸 비구의 덕행은 일반인으로서는 여간해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불자의 몸으로 매사에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기본 생활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국가 · 사회 · 불교 · 대중을 위하여 신앙의 힘으로 자기 자신이
인내하고, 마땅히 작은 자기를 희생하며, 의義를 위해 몸을 사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행활 속에서 신심이 굳고 바르다면 자연히 인내의 힘이 솟고
강하여집니다. 이러한 인생관을 분명히 해서 실천해나갈 때
우리의 인격이 승화될 수 있고, 생명이 밝게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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