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라
“진정한 등반가는 산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성공이 계속 되다보면 과욕을 부리게 되고, 자만하기 쉽다.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성공이 계속될수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겸허해야하며 자신을 낮추어야한다. 마음속에 자만(自慢)이 깃들기 시작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상황을 근거 없이 낙관하는 악습이 생긴다. 자만이 생기면 의지와 만용(蠻勇)이 구별되지 않는다.” (엄홍길, ‘거친산 오를 땐 독재자가 된다’).
지혜의 대명사 솔로몬이 모든 것이 풍족한 가운데 점점 더 하나님과는 멀어져 말년에는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을 되새긴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대화하여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자만에서 구하고자 사랑하는 자에게 피할 만한 고난을 계속 허락하시어 우리가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신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1653년(효종4년) 7월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겸손하여야 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효종대왕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
『이른바 납간(納諫)이란 뜻을 겸손히 한다는 말인데, 이윤(伊尹)은 ‘뜻에 맞는 말은 도리에 어그러지는지를 살피라.’ 하였고, 장손흘(臧孫紇)은 ‘계손(季孫)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질진(疾疢)1) 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옳다 하는 것을 따라서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 하는 것을 따라서 그르다 한다면,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기쁘더라도 일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약을 먹고 어지러운 것은 병에 이롭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일에 이로우니, 이것이 주사(周舍)가 입바른 말을 하던 일을 조앙(趙鞅)이 사모한 까닭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마음을 비워 간언을 받아들이고 허물을 고치는 데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니 막힘이 없는 아름다움을 뉘라서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기뻐하고 노여워하실 즈음에 나를 속이리라 억측하는 병통을 면하지 못하시어 바람·천둥 같은 위엄이 갑자기 진동하고 귀양 보내는 일이 조정에서 계속되니, 상하가 놀라 돌아보고 기상(氣象)이 서글피 막힙니다. 귀양 보내는 법은 예전에 사흉(四凶)을 처치한 방법입니다. 한 마디 말만 잘못해도 문득 이 벌을 주니 누가 언짢은 낯빛을 무릅쓰고 바른 말로 간쟁하려 하겠습니까. 당 태종이 일찍이 위징에게 노하여 ‘이 시골 늙은이를 죽여야겠다.’ 하였습니다. 잘 받아들이는 태종으로서도 죽이려고까지 하였으니, 포용하는 도량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오직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를 수 있고서야 언로(言路)가 소통되는 아름다움을 이룰 것입니다.
또 예전에는 백공(百工)이 기예(技藝)에 관한 일을 가지고 간언하였고 보면, 안으로는 공상(公相)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다들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경고(卿孤)2) 의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나름대로 해사(該司)에 미룹니다. 만약 서사(庶司)의 장(長)이 각각 그 직책에 관한 일을 말할 수 있게 한다면, 보고 듣는 것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간(臺諫)의 직임은 그 중함이 재상(宰相)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유온수(劉溫叟)가 어사 중승(御史中丞)이 되었을 때에 10년 동안 옮기지 않다가 죽게 되어서는 이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비워 두었습니다. 옛 흥왕(興王)이 이 벼슬을 중히 여기고 마땅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 한 것이 이러하였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요즈음은 대부(臺府)의 선임을 보통 임용처럼 여기고, 갈기를 잦고 쉽게 하여 두어 달 동안이라도 일을 맡는 자가 드무니, 공론(公論)을 넓히고 무너진 기강을 진작하기 바란들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바르고 곧은 선비를 극진히 가려 삼사(三司)에 두고서 어렵게 여기고 삼가며 오래 두고 오로지 맡겨야 할 것이니 책임이 일단 중해지면 사람들도 스스로 힘쓸 것입니다.
또 은대(銀臺)의 직임은 곧 옛 문하(門下)의 직임이니 그 임무가 매우 중대합니다. 당 태종이 일찍이 문하를 경계하여 ‘일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다 아뢰어야 한다. 문서를 봉행하기만 한다면 누군들 할 수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마땅한 사람을 정밀하게 가리고 구제(舊制)를 더욱 밝혀 정교(政敎) 중 공의(公議)에 맞지 않는 것을 봉환(封還)하도록 허락함으로써 나타나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게 하고, 정원(政院)의 계사(啓辭)는 조보(朝報)에 내지 말아서 들어가 임금에게 고하고 밖에서 순행(順行)하는 뜻을 보존시켜야 할 것입니다.』.
[註 1]질진(疾疢) : 겉보기와 맛은 좋으나 해가 되는 것.
[註 2]경고(卿孤) : 삼공(三公)에 버금가는 벼슬.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채근담(菜根譚)’은 먼저 상대에게 일보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정(人情)은 변하기 쉽고 세상을 사는 도(道)는 엄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곳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길을 양보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서도 조금은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좁은 길을 갈 때는 한발 물러서서 길을 양보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일부분을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양보의 미덕으로 가장 안전한 세상살이의 비법이다.”
성경은 이런 ‘채근담’의 양보의 수준을 넘어서 하나 되는 마음, 낮아지는 마음, 남을 중하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중하게) 여기고”(빌립보서 2장 2-3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장 12절, 16장 18절).
2024. 6. 6.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