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내다보는 인류의 달 탐험사에서 다음 목표는 달 기지 건설이다. 심우주 탐사의 새로운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될 달 기지 건설에 요즘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유럽우주국(ESA)이다. 유럽우주국은 향후 세워질 달 기지에 ‘문 빌리지’(Moon Vill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빌리지’(마을)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단순한 시설이나 이익 공유 차원을 넘어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기구가 최근 이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로드맵을 밝혔다. 2040년 100명 안팎이 달에 상주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달의 얼음을 물로 녹여 자원으로 활용하고, 달 기지의 여러 시설물과 도구들은 3D 프린터로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달 토양에서 식물을 직접 재배하는 기술도 개발할 계획이다. 달에서 가장 긴요하게 쓰일 자원은 달 극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이다. 물은 수소와 산소를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섞으면 로켓 연료를 확보할 수 있다. 실제 달 기지 건설이 가시화 단계에 들어서면 3D 프린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지구에서 필요한 물자를 가져가는 것보다 현지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적층방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조할 경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용이 저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팅 재료 후보로는 달에 있는 현무암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가깝다. 일부에선 공상과학소설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달 기지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버나드 포잉 박사는 최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열린 유럽행성과학대회에 참석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강조했다.햇빛 닿지 않아 초고온 등 위험 없는 남극 유력포잉 박사는 달에 건설할 영구기지를 철도 건설 효과에 비유했다. 즉 철도역이 들어서면 그 주변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뒤이어 지역경제가 번창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유럽우주국 구상에 따르면 달 기지에는 우선 과학자와 기술자,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개척단이 맨먼저 자리를 잡는다. 포잉 박사는 그 규모를 6~10명로 보고 있다. 목표 시기는 2030년이다. 이후 점차 상주인력이 늘어나면서 2040년엔 100명, 2050년엔 1천명 안팎으로 불어난다. 포잉 박사는 21세기 중반에는 달 상주인원 사이에서 가족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달에서 아기 첫 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달 기지 건설의 유력한 후보지는 달 남극 지점이다. 이곳에는 무엇보다 햇빛이 닿지 않아 방사능 노출이나 초고온 등 위험한 환경을 피할 수 있다. 또 그동안의 달탐사 위성을 통해 분석한 결과 많은 양의 물이 얼음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도 큰 이점이다. 특히 달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암 동굴은 최적의 달 기지 입지다.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 다른 우주공간에서 쏟아지는 각종 우주선과 크고작은 운석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행성과학대회에서는 달 궤도 위성들의 관측정보 등을 토대로 분석한 최신 연구 결과들이 보고됐다. 이탈리아 파도바대의 리카르도 포조본 박사는 “지구의 용암동굴은 폭이 기껏해야 30m이지만 달의 용암동굴은 폭이 1㎞ 이상, 길이가 수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면 수백명이 거주하는 마을 전체를 동굴 안에 지을 수도 있다. 달의 용암동굴은 화성의 용암동굴 폭 250m에 비해서도 4배나 큰 규모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중력이다. 달과 화성의 중력은 각각 지구의 17%, 38%에 불과하다. 달의 중력이 이렇게 낮다 보니 용암의 부피가 커지면서 널따란 동굴이 생긴다는 것이다. 유럽 과학자들은 이에 대비해 지구의 용암동굴에서 달 동굴 탐사 훈련도 하고 있다.신기술 개발하고 더 먼 우주 탐사 전진기지 기대지난 2009년 달 착륙 40년을 맞아 달 기지 건설을 제안했던 유럽우주국의 얀 뵈르너 사무총장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이어받는 차세대 우주개발 국제협력 프로그램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모범적인 우주 협력 사례로 평가받는 국제우주정거장은 2000년에 가동을 시작해 오는 2024년 퇴역할 예정이다. 유럽우주국은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유럽연합 회원국은 물론 세계의 달에 관심이 있는 어떤 국가나 단체에도 문이 열려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이를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과 국제적인 협력망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중국국가항천국(CNSA)과 함께 달기지 건설 협력을 선언했다. 협력 대상엔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기업도 포함된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우주 개발을 정부가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다. 갈수록 정부가 관여해야 할 부문이 복잡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타산에 밝은 민간기업들은 달의 광물자원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이들이 가장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미래 핵융합 발전 원료로 각광받는 헬륨3다. 헬륨3는 지구에는 희소하지만 달에는 매우 풍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이미 달에서 헬륨3를 채취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과학 연구 차원에서도 달의 가치는 엄청나다. 무엇보다 지구 초기 역사에 대한 물증을 간직하고 있다.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뒷쪽 반구에 전파망원경을 설치하면 다른 전파의 간섭 없이 우주를 더욱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더 깊은 우주 탐사를 위해 달의 물질을 활용한 3D 프린팅 같은 신기술도 개발, 시험할 수 있다. 달은 화성을 비롯한 더 먼 우주 탐사의 전진기지로도 제격이다. 중력이 약해 지구처럼 우주선 발사를 위해 강력한 로켓을 써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지구 궤도까지 가는 비용은 지구에서 가는 것보다 달에서 가는 비용이 40배나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달기지의 주요 구조물들은 현지에서 3D 프린팅 방식으로 제작한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란사로테섬에서 용암동굴 탐사 훈련을 받고 있는 유럽 우주비행사들. 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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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여행비 현재는 1340억원, 20년 뒤엔 1/100로포잉 박사도 2040년 달기지 방문을 꿈꾸고 있다. 가족도 함께 갈 것인지에 대해선 “그건 비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가격 기준으로 달 여행비는 대략 1억유로(1340억원)”라며 “그러나 20년 후에는 비용이 100분의 1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 여행비용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달 자원 개발과 여행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지가 좌우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는 올들어 회수한 로켓을 다시 사용하는 데 잇따라 성공함으로써 이 부문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한 6곳의 달 지점 보존을 추진중인 ‘모든 달종족을 위해’(For All Moonkind)‘라는 비영리 단체의 공동설립자 미셀 핸론(Michelle Hanlon)은 달 기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했다. “2030년 달에 기지가 생기고 2040년 수백명의 달종족이 탄생한다는 아이디어는 좋다. 그러나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술과 능력을 넘어 달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는 깊은 책임감이 따른다. 우리 스스로 미래의 이름으로 과거를 저버리도록 놔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