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행 복지 시스템이 큰 틀에서 어떤 형태로든 전기를 맞이해야 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3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 개회식에서 한 말이다.
이어서 "경제는 발전해 가는데 풍요로운 경제 속에서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계층 이동 사다리는 점차 무너지고 좌절감과 소외감도 심해지고 있습니다."라고 당면 과제를 언급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가 기조 강연을 했다. ©조시승
서울시는 소득 격차 완화와 현행 복지제도 한계 극복을 위해 2022년 7월부터 아시아 최초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안심소득’은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과 가구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제도로,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이다. 커져가는 소득의 양극화에 대해 복지 해법을 찾기 위한 실험과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2월 20일과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2회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에서 지난해 7월부터 추진한 안심소득 시범사업 1차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이주호 부총리와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등 국내외 유수의 석학과 소득 및 복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 [관련 기사] 노벨상 뒤플로 교수 "안심소득 잘 설계된 정책"…중간조사 발표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이 열리는 DDP 아트홀2관에 참석자들이 입장 안내를 받고 있다. ©조시승
DDP(아트홀 2관)으로 가는 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입구의 등록대에서 명찰을 수령한 뒤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대부분 기자와 학생, 안심소득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과 관계자들이었다.
봉천동에서 왔다는 김형옥 씨는 "안심소득’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던 사람으로, 안심소득 사업이 잘되어 가고 있는지, 외국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어 왔다"고 했다. 또 복지 담당 공무원 전명수 씨는 "일선에서 접하는 복지 정책과 새로운 정책 입안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어 참가하게 되었다"고 참석하게 된 동기를 전했다.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 참석자들이 연사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조시승
본격적인 포럼 진행에 앞서 안심소득이 희망의 디딤돌이 된 사례 몇 편이 홍보영상으로 소개되었다. 몸이 아파도 반지하에 집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될 수 없었는데, 안심소득으로 치료하며 회복할 수 있었던 사례, 자녀 학비로 도움을 받은 사례, 중단했던 창업 준비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된 사례, 퇴직 후 20년 만에 매월 저축할 수 있게 된 사례 등이 소개되었다. 한결같이 안심소득 덕분에 팍팍했던 삶에 숨통이 트인 흐믓한 사례들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안심소득 덕분에 도움을 받은 사례가 소개되었다. ©조시승
이어 ‘소득보장제도가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안심소득 시범사업에 대한 1차 중간 조사 결과 발표와 해외 소득보장 정책 실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 이정민 서울대 교수는 '안심소득 시범사업의 1차 중간 조사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서울시는 2022년 7월 1단계로 중위 소득 50% 이하 500가구(실제로는 16가구가 포기하여 484가구)를 선정해 첫 급여를 지급했고, 2023년 7월에는 2단계로, 중위 소득 85% 이하로 대상을 확대해 1,100가구에 급여를 지급했다.
1단계 참여자는 3년, 2단계 참여자는 2년간 참여하며 6개월에 한 번 설문조사와 1년에 한 번 행정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1년 반이 지난 2022년 참여 가구에 대한 1차 중간조사 결과는 어땠을까? 현황을 파악해 본 결과, 이들 가구는 의료비·식료품비 지출 등 필수 생활 지출이 늘어났다. 그 외 우울감·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도 개선되어 자존감이 높아져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 강한 근로 의욕으로 절반 이상의 가구는 근로소득도 증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 시행에 앞선 이 정책 실험은 2025년 6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첫 번째 세션, 이정민 교수가 '안심소득 시범사업의 1차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시승
안심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비교해 봐도 장점이 두드러졌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정해진 소득 기준을 넘으면 수급 자격이 박탈되지만, 안심소득은 소득 기준을 초과해도 수급 자격이 유지돼 근로 의욕을 해치지 않았다. 또한 자산이 늘어도 수급액이 줄지 않아 자산 형성 동기가 부여된다. 그 외 신청 요건이 간단해 행정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도 안심소득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도 다양한 소득 보장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스톡턴시 2019~2021년, 잭슨시 2018 ~2023년)에서도 대상자들은 신체적 정신 건강(우울·불안 감소)개선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다고 한다. 전일제 고용율이 증가하는 등 더 양질의 일자리로 옮겨가 자존감을 높이기도 했다. 핀란드·네덜란드·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대상자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이 상승했고 스트레스와 불안 감소 등 주관적 지표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수치로 본 안심소득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근로 의욕을 북돋을 수 있는 필수 재화 소비 증가뿐 아니라 정신 건강 관련 지표도 비교 집단 대비 10% 이상 향상됐다. 안정적 수입으로 사적 소득 이전(58.5%↑)과 자선 활동(61.3%↑)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1단계 시범사업 지원 가구의 22%에 해당하는 104가구에서 근로소득이 증가했는데,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워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크레이그 리델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조시승
안심소득은 소득이 적을수록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 기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생활의지를 북돋아 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누구나 복지를 누리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약자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복지 모델의 해법을 지향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해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지적처럼 안심소득제도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소득 재분배 효과, 거시경제에의 영향 등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1인 가구일수록 다인 가구에 비해 급여액 산정 시 유리해 가족 해체를 유도하거나 편법 방식으로 가족 구성 형태를 바꾸게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처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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