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삼룡이
이 정 식
나는 갑자기 벙어리 삼룡이가 생각이 났다.
삼룡이 는 1925년 나도향이 쓴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글속에 내용을 보면 듣고, 보면서도, 말을 못하는 불쌍한 벙어리가 되여 농촌 농가 집에 충직한 종살이를 했다. 집주인 아가씨의 따뜻한 인간미에 감복(感服) 되어 온갖 멸시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인을 위해서라면 온 정성을 다했다. 어느 날 주인집에 화재가 나서 불에 타 죽을 위급 지경에 이르자 주인 가족을 모두 구하고 자기는 그 불속에 던져 버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의 마음이 내포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왜 나는 이 벙어리 삼룡이 생각을 했을까. 요즘 세상에 전해지는 소식이 너무나 비정(非情)하기 때문 이였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천사의 마음을 지닌 19세기 소설 속에 인물을 그리워하는가. 잠꼬대 같은 소리 말라고 비판할 사람 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삼룡이 같은 착한 일을 한 현실 이야기가 있었다. 1997년 12월 1일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을 옛 일기장 속에서 발견하고 벙어리 삼룡이 이야기가 잠 고대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서울 신당동에 사는 쉰여덟 살의 김 갑순 씨는 집에 불이 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중풍으로 앓아누워 옴짝 달싹 못하는 90객의 시어머니를 구사일생으로 구해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 얼마나 장한 인간 사랑이며 효행이었는가.
지금 세상은 하늘같은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부모를 가장 괴롭히는 존재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통계조사도 있다. 더하여 부모가 병들면 짐짝 버리듯이 한다는 세상이다. 중풍에 걸려 요지부동한 시어머니를 죽을 각오로 불 속에 뛰어들어 구해낸 일은 참으로 가상(嘉尙) 하여 귀감으로 삼아야할 일이다. 이것이 어찌 삼룡 이처럼 소설에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사랑 은 이것만이 아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 떨어져 죽음이 경각에 이른 시민을 순찰하던 한 경찰관이 용감하게 뛰어 내려가 살려낸 일도 있었고. 또 북한 어뢰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천한함 사건 당시 동료 장병의 시신 하나라도 더 찾고자 깊은 바다 속을 수없이 해매다 희생된 한 주호 준위의 전우애(戰友愛)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다.
이렇게 세상은 인정으로 살아가는 따뜻한 사랑이 얼은 강물을 녹아 흐르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록 소설 속에 나오는 벙어리 삼룡이 이야기나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도 전해오는 소설이야기지만 모두가 인간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孝)하는 고귀한 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이런 소설 이야기와 아주 거리가 먼 것일까. 우리의 현실에도 얼마 던지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강도를 잡아주는 요감한 시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기는 익사하는 안타가운 일도 수없이 많다. 이 세상에는 비정한일도 많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인간 사랑의 현실도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쩐지 인간비행(非行)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용(寬容)을 하면서도 희생 봉사하는 착한 일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목숨보다 돈만을 앞세우는 세상이라지만 피 땀 흘려 벌은 부(富)도 비리로 치부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아지듯 권력을 가진 자의 맑은 마음이 봄바람 불어오듯 해야 세상이 맑아질까. 하도 많은 사연들이 매일 같이 신문 방송에 쏟아지니 사회 관념도 무감각하게 변질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도저히 인간 행위라고 볼 수 없는 비정한 현실에는 올바른 비판과 응징이 있어야 하고, 인간비행에도 옥석(玉石)을 올바르게 가릴 수 있는 혜안과 의식수준도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도저히 묻어두고 살기에는 아쉬운 아름다운 인간사랑 이야기는 찾아 낼 수록 이 세상은 맑아지고 따뜻한 빛이 넘쳐 나리라 생각한다. 오늘따라 소설 속에 나오는 벙어리 삼룡이 이야기가 각박한 현실에 더욱 그리워진다.
*64(2013.4.12)
첫댓글 "비정한 현실에는 올바른 비판과 응징이 있어야 하고, 인간비행에도 옥석(玉石)을 올바르게 가릴 수 있는 혜안과 의식수준도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도저히 묻어두고 살기에는 아쉬운 아름다운 인간사랑 이야기는 찾아 낼 수록 이 세상은 맑아지고 따뜻한 빛이 넘쳐 나리라 생각한다. 오늘따라 소설 속에 나오는 벙어리 삼룡이 이야기가 각박한 현실에 더욱 그리워진다."
" 우리 사회는 어쩐지 인간비행(非行)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용(寬容)을 하면서도 희생 봉사하는 착한 일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목숨보다 돈만을 앞세우는 세상이라지만 피 땀 흘려 벌은 부(富)도 비리로 치부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아지듯 권력을 가진 자의 맑은 마음이 봄바람 불어오듯 해야 세상이 맑아질까."
'왜 나는 이 벙어리 삼룡이 생각을 했을까. 요즘 세상에 전해지는 소식이 너무나 비정(非情)하기 때문 이였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천사의 마음을 지닌 19세기 소설 속에 인물을 그리워하는가. 잠꼬대 같은 소리 말라고 비판할 사람 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 말씀들에 공감하면서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