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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원문보기 글쓴이: 감자튀김조각
휴고 터너 2018 / 05 / 26
<야마시타 골드>
스털링 시그레이브와 페기 시그레이브의 책 <야마시타 골드>는 20세기의 가장 충격적인 비밀 중 하나를 밝혀준다. 이 책에선 일본이 아시아 전역에서 약탈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보물, 보물을 숨긴 수백 군데의 장소, 그리고 훗날 미국 정보부가 되는 단체에 의한 보물의 은밀한 회수 등 여러 내용들을 다룬다. 미국은 일본이 이러한 막대한 부를 숨기는 것을 도움으로써 일본이 전후 파산했으며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전세계가 믿게끔 속였다. 일본은 수천만의 민간인을 죽였으며 노예 노동과 국제 헤로인 무역으로 거대한 수익을 올렸다. 대부분의 보물들은 필리핀에 묻혔으며 이는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흥망을 좌우했다. 이 막대한 부는 일제 전범들의 수중에 남았으며 이후 수십년간 일본의 자민당에 의해 통치되는 부패한 일당 민주주의에 쓰일 자금이 되었다. 여기에는 미 정보부와 야쿠자가 합세했다. 이 보물들은 일제와 독일의 전리품을 관리한 블랙 이글 트러스트를 통해 앨런 덜레스나 존 맥클로이 같은 인물의 통제를 받기도 했다. 금괴들은 연방준비은행, 영국 중앙은행, 스위스의 UBS, 시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 그리고 금괴를 훔친 다른 주요 은행들에 보관되었다. 또한 이 금괴들은 세계 경제 조작, 금융 약탈, 정치인 매수 및 뇌물, 그리고 존 버치 협회 같은 극우 단체에 대한 자금으로 쓰였다.
책을 읽어본다면 얼마나 많은 금괴가 알렉스 존스 같은 사기꾼이나 다른 극우 활동가들에게 쓰이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이들이 금과 은 판매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보물들은 이란-콘트라 사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세계반공연맹의 자금으로 쓰였다. 이 책은 역외 금융과 골드 카르텔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작가는 오늘날 초부유층이 역외 금융 계정에 23조 달러를 쌓아두고 있는 반면, 전세계의 보건과 교육 수준은 열악해지고 있으며 집없는 사람들과 빈곤율은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야마시타 골드>는 비밀, 탐욕, 배반, 살해, 그리고 거짓말로 얼룩진 흥미로운 내용들을 보여준다. 시그레이브는 맥아더 군정과 연합한 일제 전범, 폭력 조직, 무자비한 일본 왕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한 미쓰이, 미쓰비시, 가와사키, 쓰미토모 같은 거대 기업들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들을 밝히며 미국이 전후 일본을 개혁했다는 신화를 깨부순다.
시그레이브는 1895년 10월 7일, 일본에 의해 조선의 명성황후가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명성황후는 두 명의 시녀와 함께 살해되었고 그녀의 시신은 휘발유가 뿌려져 태워졌다. 이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일본은 소위 "애국 단체"를 이용했는데, 이들은 파시스트 무장 단체였고 폭력 조직과 연계된 비밀 결사었다. 이들은 일본 왕실이 선호하는 유용한 도구였으며 불안정화, 암살, 협박, 그리고 훗날 심리전이라고 불리는 표준적인 전술을 사용했다. 이 두 개의 주요 단체는 흑룡회와 현양사다. 흑룡회는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고 중국을 정복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현양사는 조선을 정복하는데에 집중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큰 사업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조직 범죄와 정보기관들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일본도 다른 제국과 다를 것 없이 기만적이었으며 이들은 명성황후가 조선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그녀의 힘없는 남편 고종은 곧바로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윽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에 개입하려고 한 조선의 우방 중국은 일본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대만과 만주 일부를 얻어냈다.
조선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심지어 조선인들은 일본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제되었다. 한반도 전체가 일본의 소유가 되었고 수세기 동안 쌓인 부가 약탈되었다, 금과 은, 귀한 청자 등이 약탈되었다. 일본은 전문가들을 고용해 조선의 고대 필사본 수백여 권을 모으게 하고 목록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 사료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기 위해 일본으로 보내지거나 불태워졌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조선 왕실의 무덤을 파내 대규모로 약탈하기까지 했다. 조선에서 생산된 쌀은 일본으로 보내졌다. 조선인들은 노예 노동을 위해 일본으로 이주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대 총독 이토 히로부미는 공격적인 군국주의를 반대한 야마가타 파벌의 수뇌였다. 그러나 그의 반대파들은 흑룡회의 수장 우치다 료헤이를 이토의 참모진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료헤이의 폭력단은 18,000명의 조선인들을 죽였다. 이에 혐오감을 느껴 사임한 이토는 암살되었다. 일본은 이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 물었고 이는 합병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테러 자작극은 일본이 즐겨쓴 전략이었다. 6백만 명의 조선인들이 노예 노동을 강요당했고 1백만 명이 일본으로 보내졌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이런 성노예 제도는 이후 미국이 조선 또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점령한 뒤 다시 채택되었다.
같은 시기, 일본은 오늘날 대만으로 알려진 포모사를 식민화했다. 일본은 대만에 대규모 헤로인 생산단지를 세웠고 이곳은 수십년간 세계 마약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04년, 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에 대한 기습 공격을 벌여 차르가 보복을 위해 파견한 발틱 함대를 격파했다. 러시아는 치욕스러운 평화 협정을 맺을 수 밖에 없었고 북만주의 소유권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조선과 달리 만주는 대부분 황무지였다. 만주에는 목재와 미네랄이 풍부했다. 이후 일본은 빠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중국 국민당 및 청방과 연합해 대규모 아편 재배 사업에 착수했다. 중국 국민당과 그들의 삼합회 연합 조직인 청방은, 그들의 더러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비밀 결사를 만들어 파시스트 폭력 조직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일본과 유사하다. 물론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일본인들은 부을 빼앗기 위해 종종 중국인에 테러를 가했다. 만주는 "대륙낭인"으로 불리는 일본인, 또는 저자의 용어로는 "외지인, 간첩, 비밀 경찰, 투기꾼, 광신적인 폭력배, 마약상, 군 장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본은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중국의 황제였던 푸이를 꼭두각시로 내세웠다.
치치부 왕자
만주의 진짜 실세는 만주 4인방이라고 불린 도이하라 대령, 그의 측근 다나카 소령, 훗날 전쟁장관이 되는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령, 마지막으로 훗날 전시 총리가 되는 도조 히데키였다. 정부 관료에 대한 수차례의 암살 미수로 감옥에 갇혀 있던 파시스트 폭력배 고다마 요시오를 기용한 것은 군사 정보부의 도이하라였다. 일본 파시스트들은 그들의 계획에 방해되는 자라면 누구든지 죽였다. 일본 왕실과 밀접한 관계였던 고다마는 미 정보부의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서 수십년간 일본 정계를 조종했다. 만주는 광둥군의 근거지로 여러 범죄 행위를 통해 엄청난 부를 창출해냈다. 만주는 실질적으로 도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여기에 반대하면 암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동시에 만주의 헤로인 거래와 약탈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는 공모자들의 충성심을 사들였다. 그 이면에는 불법 마약 거래를 통제해서 부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장악한 히로히토 천황, 그리고 미쓰이와 미쓰비시 재벌이 있었다. 중국은 값싼 헤로인으로 넘쳐났다. 또 일본은 헤로인이 들어간 특허품으로 중국인들을 속이기 위해 "Golden Bat" 이라는 담배를 판매했다. 또 일본은 중국에 정제 헤로인이 넘쳐나도록 했다. 일본은 만주를 공업화시키려고 했으나 그 비용이 너무 컸다. 이를 위해 일본은 중국의 나머지 땅을 정복해 수익을 올리는 것에 착수했다.
일본의 "애국 단체"와 정보기관이 기획한 일련의 자작극을 통해 일본은 전쟁 광풍에 휩쓸렸고 더 많은 중국 영토가 점령당했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전면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장개석 총통은 거의 저항하지 않았고 그가 약탈한 막대한 보물과 함께 긴 후퇴를 시작했다. 당시 중국 국민당은 헤로인 무역에서 나오는 수익을 나누기 위해 수년전 일본과 비밀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국민당은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 물자를 일본에 되팔기도 했다. 난징은 무방비 상태였다. 히로히토 천황은 잔인한 파시스트인 아사카 왕자를 보내 악명높은 난징 대학살을 감독하도록 했다. 이는 중국에 테러를 가해 항복하도록 만드려는 계획이었다. 이후 몇달 동안 300,000 명의 사람들이 머리가 잘려 죽거나 총검술 연습 대상으로 죽었다. 일본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중국인들은 "사복을 입은 군인"이었으며 20,000~80,000 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과 동시에 벌어진 수많은 전쟁 범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히로히토 천황은 남아있는 중국의 보물을 일본 왕실의 수중 아래에 확보하기 위해 황금백합작전을 지시했다. 광적인 치치부 왕자가 황금백합작전을 맡았으며 다케다 왕자 역시 작전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수세기 동안, 중국의 황제들은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해왔다. 이는 상인 계급들이 지방 관료들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거대한 암시장을 숨겼다는 의미이다. 현명하게도 수세기 동안 상인들은 은행을 믿지 않았고 그들의 부를 보석이나 금의 형태로 숨겨왔다. 또한 중국인들은 지난 3,000년 동안 귀중한 예술품과 역사서를 수집해왔다. 난징 대학살이 격화되는 동안 황금백합작전의 지휘부는 부유한 상인들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유괴, 고문, 가족에 대한 협박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내용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들의 다른 수법은 더러운 작업을 맡은 중국 폭력 조직에게 헤로인을 넘기고 금을 받는 것이었다. 고다마 요시오는 상하이의 비밀 결사와 거래하는 중국 지하세계의 일본 연락책이었다. 상하이를 거점으로 한 형제단에는 청방의 수뇌와 국민당 장군이 소속되어 있었다. 일본은 황금백합작전을 통해 난징에서만 6,000톤의 금괴를 성공적으로 약탈했다. 일본은 가능한 한 많은 예술품과 문헌들을 약탈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 공산당 게릴라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에 의해 긴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 어느 한 곳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곳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제국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일본은 소련을 공격했지만 주코프 장군에게 참패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에 주의를 돌렸다. 당시 미국은 국민당을 통해 전후 중국을 지배하길 원했기 때문에 일본의 보급망을 계속 차단하고 있었다. 어쩄든 일본은 진주만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불과 몇 달 만에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로부터 동남아 전체를 확보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필리핀이 곧 일본의 차지가 되었다. 일본은 새롭게 얻은 지역의 은행을 점령해 식민지 부유층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기록을 조사했다. 현지 주민들은 제국주의에 협력한 부유층이 어디에 보물을 숨겼는지 일본인들에게 귀띔해 주었고 복수했다는 생각에 좋아할 뿐이었다. 일본은 현지 통화를 불법화하고 가증권을 인쇄하며 대규모 화폐 계획을 획책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아시아 전역에 퍼져있는 중국인들을 숙청함으로써 중국에 테러를 가했다. 수만 명의 중국인들이 일본의 학살에 의해 잔인하게 죽었다. 중국에서만 일본은 2,3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비슷한 시기,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고 있었고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길 바란다고 주장하며 필리핀을 점령했다. 이것은 흔한 거짓 선전으로, 스페인이 항복하자 미국은 잔혹한 전술로 필리핀 내 독립운동을 분쇄시켰다. 같은 방식이 그리스, 조선,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수많은 나라들에 적용되었다. 물론 일본에게 긴 고립을 끝내도록 강요한 것은 미국이었으며 애초에 여러 사건을 통해 일본이 급속히 산업화되어 제국주의적 노선을 걷게 한 것도 미국이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부친은 필리핀을 침략하고 점령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일본은 전후에도 수십년 동안 점령하려고 노력을 기울여왔던 필리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래를 희망했다. 히로히토 천황은 교황 비오 12세와 친분을 맺는 동시에 교황청 은행에 막대한 자금을 예치했다. 이것은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금융 거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비오 12세는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크로아티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히로히토는 비오 12세가 미국과의 평화 협정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길 원했다. 일본은 전후에도 일부 식민지 영토를 차지하길 희망했으나 이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어쨌든 일본은 맥아더로부터 필리핀을 간신히 빼앗아 그에게 굴욕적인 퇴로를 강요했다. 1943년, 전황이 일본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은 더이상 본국으로 약탈품을 수송할 수 없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보물을 숨기기 시작했다. 전쟁 포로들과 현지 필리핀인들은 강제로 거대한 터널을 파야만 했다. 노예 노동자들이 비밀 유지를 위해 산채로 터널에 매장되거나 학살되는 것은 빈번한 일이었다. 일본은 폭격당할 확률이 낮은 역사적 유적지나 병원에 그들의 약탈품을 숨겼다. 일본은 미국 잠수함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가짜 의료선을 만들어 필리핀으로 금괴를 밀반입했다. 일본은 보물로 가득 실은 배를 침몰시켜 나중을 기약하기도 했다.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약탈품들을 은폐했다. 거대한 지하 공간에 수천 톤의 금괴가 채워졌다. 일본은 입구를 위장시키는 것과 보물 지도를 암호화시키는 것에 매우 뛰어났다. 미국은 전쟁 중에 그들이 파견한 간첩을 통해 이 금괴들이 숨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필리핀을 탈환한 후, 미국은 황금백합작전과 필리핀 방어 계획을 감독하기 위해 전쟁 후반에 필리핀으로 파견된 야마시타 장군을 체포했다. 악명높은 두 인물이 나오는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필리핀 간첩 세베리노 가르시아 디아즈 산타 로마나는, 금괴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야마시타 장군의 운전수 고지마 소령을 고문할 것을 지시받았다. 미 정보부의 저급한 선전 작가로 활동했던 에드 랜스데일이 산타 로마나를 감시하러 갔을 때 그에게 평생 한 번 뿐인 기회가 찾아왔다. 고지마 소령이 그에게 약탈품의 일부를 약속했던 것이다. 필리핀에 적어도 176 곳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가 있었지만, 에드워드 랜스데일과 산타 로마나는 이중에서 십여 군데만 발견했고 이는 수십년 동안 풍요를 누리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랜스데일은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쿠바에 대한 비밀 전쟁까지 손을 뻗쳤다. 저자에 따르면, 랜스데일은 이란-콘트라 사건에서 드러난 미 정보부의 "사업가"들을 양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타 로마나는 이후 수십년간 미 정보부의 불법 자금 수천억 달러를 관리했다. 1970년, 산타 로마나의 이용 가치가 떨어지자 550억 달러에 달하는 그의 막대한 부는 랜스데일과 시티은행의 존 리드에 의해 도난당했다. 에드 랜스데일은 일본으로 건너가 맥아더 장군에게 금괴의 발견을 말했고 워싱턴으로 가서 트루먼에게도 정보를 알려줬다. 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금괴를 발견했다. 대중들이 이 사실을 알면 온스당 35달러에 의존하는 브레튼 우즈 체제가 파괴될 수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브레튼 우즈 체제는 미국이 나치로부터 입수해 통제하는 대량의 금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서, 워싱턴에는 이미 블랙 이글 트러스트를 통해 나치의 금괴를 회수해 은폐하는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전쟁장관 스팀슨, 존 맥클로이, 로버트 앤더슨, 그리고 로버트 러벳이며 전부 외교 및 금융에 오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기록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돈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쿠데타를 지원하고 비밀 공작과 심리전을 펼쳤다. 이윽고 황금백합작전의 약탈품도 같은 이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 금괴들은 스위스의 UBS, 홍콩의 홍콩상하이은행, 영국 중앙은행, 체이스 맨해튼 같은 전세계의 은행을 받쳐주는데 쓰였다. 1945~47년 사이, 42개 국가에 금괴들이 숨겨져 있었다. 금괴는 영국, 이집트, 그리고 중국 국민당에 막대한 융자를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전세계의 정치인들은 뇌물로 금 보증서를 받았다. 이 막대한 부에 관여된 월스트리트와 정보기관 사이의 교차점에 대해선 일반인들에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거대한 부가 통제된다면 미국 정보부가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은 농담처럼 여겨졌지만 이는 실제로 케네디의 암살로 이어졌다. 주류 언론이 전직 미 정보부에 의해 조종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60년에 가까운 은폐가 놀랄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선 크리스토퍼 심슨의 <Science of Coercion>을 참고하길 바란다. 미 정보부와 OPC가 전세계의 미디어를 통제하는 동시에 프랭크 위스너의 악명높은 "Mighty Wurlitzer"는 끊임없이 냉전 프로파간다를 만들었다.
일본으로 되돌아와서, 미쓰이, 미쓰비시, 쓰미토모 같은 거대 재벌, 그리고 고다마 요시오, 사사가와 료이치 같은 폭력배들을 움직이는 천황과 그 측근들은 전후 그들의 재산과 함께 온전히 살아남았다. 고다마는 "사랑스러운 파시스트"라고 불린 맥아더의 보좌관 윌러비 장군과의 거래에서, 전범 재판 면제의 대가로 100만 달러를 미 정보부에 넘기기로 했다. 오늘날 100만 달러의 가치는 10억 달러에 이르며 이 돈은 "M 기금"에 예치되었다. 고다마 요시오는 전쟁 동안 천황의 개인 금고에 금, 백금, 다이아몬드, 그리고 다른 약탈품을 비축해 130억 달러를 모았다. 미국은 일본 산업 시설에 폭격하는 대신 노동자 거주지역을 목표로 삼았다. 왜냐하면 미국 기업들이 일본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나치 독일에도 공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공장은 전쟁 기간 동안 수많은 군수품을 생산했다. 독일의 비나치화는 일제 전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사기다.
일제 전범 재판은 전쟁에 있어 천황의 역할이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작되었다. 미국은 증인들을 매수하기 위해 특별 계좌를 만들었다. 고다마 요시오는 미 정보부의 급여 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그는 막후에서 자민당을 창설했다. 자유와 민주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자유민주당의 수뇌로 기시 노부스케, 요시다 시게루, 그리고 다나카 다쿠에이 같은 부패한 정치인들이 들어섰다. 자민당은 이후 70년간 일본을 지배하며 대규모 뇌물과 불법 리베이트 체제로 경제를 약탈했다. 천황과 그 측근들에겐 그들의 약탈품의 대부분을 보유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약탈품 일부 및 대규모 자금원의 창설은 맥아더가 감독했다. 야츠야 기금은 일본의 지하세계를 조종하는데 사용되었다. 극동 전범 재판의 수석 검사 조셉 키난의 이름을 딴 키난 기금은 증인에게 사용될 뇌물의 자금원으로 쓰였다. 그 결과 천황과 측근들은 보호받을 수 있었다. 키난의 주요 협력자는 만주에서 도이하라 장군의 오른팔이었던 전범 다나카 장군이었다. 키난을 술집과 사창가로 안내하고 그가 술에 취하면 항상 그를 안전하게 귀가시켜 온 인물은 다나카 장군이었다.
M 기금은 전후 일본 경제 재건 정책을 담당한 윌리엄 프레드릭 마커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마커트는 전쟁 중 포로들을 기니피그로 사용한 악명높은 731 생체실험부대를 해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731 부대는 미 국방부에 의해 재기용되었다. 나는 이들이 중국과 북조선을 겨냥한 세균전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M 기금은 정계에 뇌물을 주는 데에 사용되었고 역사상 가장 추악한 금융 사건 중 하나로 이어졌다. 쇼와 기금은 천황의 약탈품을 숨기는데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M 기금은 미국 정치인들도 부패시켰다. 닉슨은 그가 케네디에게 패배한 1960년 선거에서 뇌물을 받은 대가로, 부패한 자민당과 미 정보부, 그리고 마커트 장군 같은 맥아더의 측근이 관리하던 M 기금의 권한을 일본에 넘겼다. 그 거래의 일부는 오키나와를 반환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닉슨이 당선된 이후 이행되었다. 맥아더와 그의 측근 보너 펠러스와 윌러비 장군은 미국 극우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황금백합작전의 약탈품은 미국 극우 활동의 자금으로 흘러갔으며 맥카시의 마녀사냥에도 금전적인 지원 형태로 흘러갔다.
또다른 부의 원천은 미국 정보부가 중국 국민당, 일제와 조선의 폭력 조직과 함께 진행한 국제 마약 거래였다. 많은 자금이 세계반공연맹에 투입되었고 전세계의 파시스트 마약 거래상과 테러리스트들은 로널드 레이건의 애호를 받았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더그 발렌다인의 고전 <The Strength of the Wolf>를 통해 헤로인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에서의 반공주의는 첩보 활동과 병행된 대대적인 암살 계획으로 피비린내 나는 양상을 보였으며 아무도 감히 반대하고 나설 수 없었다. 암살은 잭 캐논이 지휘하는 기관에 의해 실행되었으며 테드 르윈의 악명높은 만다린 클럽을 포함한 일본 지하세계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 맥아더와 일제 전범, 그리고 폭력 조직이 제휴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고 한다면, 심지어 미국과 영국의 관료도 암살이 대상이 되었다. "KOTOH"는 암살을 실행에 옮긴 5명의 일본군 장교들의 이니셜을 딴 조직명이다. 같은 시기, 에드 랜스데일은 나폴레옹 발레리아노가 통제하는 필리핀 암살부대와 함께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는 열 군데가 넘는 나라에서 미 정보부의 적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앨런 덜레스와 프랭크 위스너의 OPC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OPC는 중국 국민당의 마약 거래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데스몬드 피츠제럴드 같은 인물들은 테드 섀클리 같은 자들에게 이란-콘트라 작전을 지도하기도 했다.
책의 많은 내용은 필리핀에 묻힌 금괴에 대한 것이다. 일본은 그들의 약탈품을 되찾는 일에 굉장히 탁월했다. 필리핀 대통령이 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산타 로마나와 친분을 맺어 금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으며 일본과 금괴를 되찾기로 합의했다. 이런 내용은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것들이다. 배반과 피해망상에 찌튼 수많은 일화들은 험프리 보가트의 고전영화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필리핀 소작농 벤 발모레스는 황금백합작전의 주요 인사였던 일본의 다나카 왕자에 의해 고용되었다. 벤은 보물이 어디에 묻혀있는지에 대한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 위치가 암호화되어 표기된 176개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한번은 그가 황금 대성당 모형을 포함한 금괴 일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으나 마르코스는 이를 몰수했다. 벤은 운좋게 살아남았다. 또다른 필리핀 보물 사냥꾼 로거 로하스는 1톤짜리 금부처를 발굴해냈지만 이 역시 마르코스에 의해 빼앗겼다. 그는 결국 고문당해 불구가 되었고 거의 죽을 뻔 했다.
보물을 발굴해내고 이를 녹여 제련하기 위해 마르코스와 존 버치 협회에 의해 고용된 광산 기술자 로버트 커티스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보너 펠러스 같은 맥아더의 측근이 수뇌로 있던 존 버치 협회는 1940년대 당시 보물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로버트 커티스는 존 버치 협회와 마르코스 양측 전부에게 배신당했고 거의 살해당할 뻔 했다. 그러나 그는 보물 지도의 사본을 입수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후 세계반공협회에 의해 고용되었다. 세계반공협회의 지도부에는 존 싱글러브 장군과 그의 동업자 로버트 슈바이처 장군이 있었다. 그들은 대규모로 민영화된 형태의 연방수사국에 쓰일 자금을 위해 금괴를 원했다. 물론 이런 기관들은 1980년대에 이미 존재했으며 같은 목적으로 1950년대에는 미국안보협회가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싱글러브가 가진 수십년간의 비밀공작 경험과 그가 맺은 새로운 필리핀 대통령 아퀴노, 또 레이건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금괴를 회수하는 막바지 단계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첨단 장비를 사용해 금괴의 위치를 알아낸 후 발굴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필리핀 군 헬리콥터가 날아와 계획이 틀어졌다.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정부 관료의 허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일화는 1986년 가을,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졌을 때 존 싱글러브가 왜 필리핀에 있었는지 설명해준다.
박정희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마르코스는 금괴를 발굴해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마르코스가 중국 인민은행에 720억 달러 규모의 금괴를 예치하는 것에 동의했으며 이것이 닉슨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아시아 정부들이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뇌물을 제공하는 미 정보부의 작업에 이용되어 왔다. 그 대가로 미 정보부는 마르코스가 그의 금괴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들에게 팔거나, 아시아 및 남미의 마약 카르텔에게 금괴를 팔아 마약을 사들이는 것을 허용했다. 마르코스의 미망인이 언젠가 중국 인민은행의 계좌에 접근하려고 시도한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면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멜다 마르코스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이 쓰러지자 은행들은 산타 로마나의 상속자들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위해 금괴를 훔쳤다.
마르코스는 황금백합작전의 약탈품으로 성공했고 같은 이유로 망했다. 마르코스는 그의 금괴를 자신들의 계획에 활용하길 원했던 레이건의 백악관과 미 정보부에 대항하여 너무 과한 흥정을 했다. 마르코스는 미 정보부가 주도한 색깔 혁명의 첫번째 희생자 중 하나가 되었다. 미 정보부의 지원를 받은 비정부기구들로 인해 화난 시위대들이 길거리에 넘치기 시작했을 때, 사주를 받은 미국인들은 마르코스와 그의 아내를 헬리콥터에 태워 하와이로 납치해 갔다. 마르코스의 재산은 필리핀 밖으로 공수되었다. 마르코스는 결국 질식으로 사망했다. 이것은 미 정보부가 그들을 위해 수십년간 일해온 우익 독재자들을 왜 전복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야마시타 골드>는 미 정보부, 마약, 또는 파시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하루에만 수조 달러가 오가는 전세계의 역외 금융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은 헤아릴 수 없는 부를 가지고 골드 카르텔과 밀접하게 연관된 가문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크루프, 로스차일드, 오펜하이머, 바르부르크, 그리고 록펠러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들이다. 오늘날 골드 카르텔과 다이아몬드 카르텔은 일제만큼이나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방법으로 세계를 약탈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만 잔혹한 전쟁으로 1,000만 명이 죽었고, 이는 콩고의 금, 다이아몬드, 우라늄, 그리고 희귀 광물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기록상에는 없는 돈이 비밀 공작을 위해 전세계의 은행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날 금괴의 대부분은 핵전쟁에 대비토록 고안된 스위스 알프스 비밀 벙커 또는 지하 터널에 보관되어 있다.
야마시타 골드를 탈취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사건은 2001년 여름, 조지 부시가 금괴를 노리고 네이비실을 파견한 사건일 것이다. 물론 그의 부친 조지 부시 시니어는 미 정보부와 그의 사업망을 통해 금괴와 무수한 관련을 맺고 있다. M 기금은 "57"이라 불리는 기괴한 금융 상품을 만들어냈다. 다나카와 그의 측근들은 일본의 은행들과 채권자들에게 이 채권을 거래하도록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면 살해 위협에 처해졌다. 오직 내부자만이 일본 정부가 57 채권이 위조라고 판명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헤이그는 파라과이의 파시스트 정부가 가진 57 채권의 일부를 회수하기 위한 회담에 고용되었다. 고맙게도 당시 그의 친구였던 부통령 조지 부시 시니어가 그를 대신해 일본에게 협상에 응하도록 협박 편지를 써주었다. 이 시기에 법률 고문이었던 노버트 슐레이가 57 채권에 대해 조사했을 때, 그는 미국 정부에 의해 누명을 쓰고 함정에 빠졌다. 그는 거의 몰락하게 되었고 이후 암살당했다. 스위스와 미국의 은행들은 사기꾼이나 다름없다. <야마시타 골드>는 지하세계부터 군사, 정보기관, 부패 정치인, 폭력 조직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거대 금융사까지 모든 것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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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외금융 거미줄망 : 제2의 대영제국
97% :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엔화의 왕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