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찰과 계곡과 폭포와 자연과 동물 등이다. 폭포는 산동면에 수락폭포와 화엄사계곡의 폭포 그리고 쌍계사 부근의 불일폭포가 좋다. 수락폭포는 여름에 찾는 게 좋다. 겨울에 찾으면 돌에 튄 물이 얼음이 되어 괘 미끄럽다. 다른 계곡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리산의 사찰여행 중에 마지막으로 화엄사를 여행한 것에 대해 말하기로 한다.
익산에서 전주를 오랜만에 찾았다. 오락실에서 몇 게임을 한 후 전주에서 구례구역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약 50여분 후 구례구역에 기차는 도착했다. 구례구역에서 구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에서 내려서 잠시 걸으니 구례읍내의 글로리호텔이다. 글로리호텔에서 전화를 해서 박형과 정형보고 먹을 것을 좀 사오라고 했다. 1시간여후 박형과 정형이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압구정김밥 집에서 김밥 4인분을 사가지고 왔다. 누드김밥, 참치김밥, 보통김밥, 김치김밥이었다. 먹으면서 정형보고 화엄사를 찾자고 하니, 정형이 내일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박형은 객실에서 잠시 있다가 갈 것이라고 한다. 옆 객실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박형이 좋겠다고 작은 소리로 말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박형은 자기의 집인 남원으로 돌아오고 나는 객실에 남았다. 객실에서 호텔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비빔밥을 시키려다가 말았다. 시골 읍내의 작은 호텔이라서 그다지 볼품이 없었으나, 위성방송과 그 밖의 방송들은 나올만한 것은 다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정형이 나를 데리고 왔는데, 오전 10시다. 아침에 뭐를 먹었냐고 물으니 아침에 밥 생각이 없어서 비빔밥은 안 먹고, 근처 마트에 가서 햄버거랑 우유랑 과자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와서 먹었다고 했다. 키를 호텔프런트에 반납하고 차를 타니 박형도 차안에 있다. 화엄사를 찾으려고 국도19번을 타야 되냐고 물으니 박형이 웃으면서 국도 19번은 잠시 타는 것일뿐 화엄사로 가는 길로 바로 간다고 한다. 버스에서 여중생과 여고생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버스 안에서 내린다. 여중생의 교복치마와 단발머리 그리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보기가 좋다. 화엄사 터미널에서 구례터미널까지는 금방이요, 화엄사터미널에서 전주로 가는 버스도 있다고 하나, 나는 버스를 안 타도 된다. 왜냐하면, 차를 잘 모는 박형이 있으니까. 화엄사 입구에도 많은 식당들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치고 화엄사 매표소로 와서 어떤 비구스님의 법명을 대니 매표소직원이 그냥 통과시켜 보내줬다. 몇 년전에 화엄사를 찾았을 때에 엘지 세이커스 프로농구단 선수들이 화엄사 입구도로에서 러닝을 했다. 화엄사 매표소를 지나고 얼마 못 있어 화엄사 경내 앞까지 들어왔다. 한국 5대명찰중에 꼽으라고 하면 화엄사가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대찰이다.
화엄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화엄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나 줄여서 화엄경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오신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연기조사는 한국에 와서 많은 사찰들을 많이 창건했다. 화엄사와 연곡사도 연기조사가 세웠으나, 화엄사가 있기 전에 연기조사는 화엄사 연기암을 먼저 지었다. 이 연기암은 연기조사의 법호를 딴 암자다.
화엄사를 창건할때에 백제 성왕이 통역과 스님들과 연기조사를 모시고 와서 절의 터를 잡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화엄사는 8원 81암자가 될 정도의 큰 사찰이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화엄사는 재로 사라졌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암자는 구층암, 연기암, 지장암, 보적암, 미타암, 금정암 등이 있다. 하나의 특이한 점은 여수에 있는 향일암도 화엄사 소속의 작은 암자라는 것이다.
화엄사에서 가장 눈을 끈 건물은 장육전을 복구한 각황전 건물이다. 이 건물은 2층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2층부분에는 그냥 천장만 있었다. 제주도에 있는 약천사는 동양 최대 규모이며 부처님도 엄청나게 커서 절 건물도 5층으로 되어 있으나, 3층까지 출입이 가능했다. 그 밖에 석탑들이 있기는 했지만 아름다웠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의 등산코스와 화엄사에서 각 암자를 거쳐서 가는 코스가 있으나 겨울이라서 얼음이 얼어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여기를 가는 것은 포기했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의 등산코스가 화엄사에서 각 암자를 거쳐서 가는 코스보다 조금 더 가깝다. 여름때 이 등산로로 한 번 왔었다.
화엄사 앞에서 정형과 박형이랑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고 정형은 자기 집으로 데려다줬다. 나는 버스로 집인 익산까지 가려고 했으나 박형이 처가인 성남까지 가는데 익산을 거쳐야 되는데 같은 방향이라서 태워주겠다고 해서 승낙했다.
박형의 차는 구례에서 남원을 지나고 있었다. 서남대학교를 지날 때 저 학교 건물이 너무 초라하다고 말하니 박형이 동감이라고 말하면서 같이 웃는다. 박형의 차 안에 트윈폴리오 테이프와 정태춘 테이프와 들국화 테이프와 그 밖에 가요모음집이 있었다. 박형보고 트윈폴리오가 기억이 나느냐고 하니 트윈폴리오도 기억이 나고 들국화는 더 기억에 난다고 한다. 부산사무실의 전부장님도 트윈폴리오와 정태춘을 잘 아신다. 하기야 그럴만도 하다, 전부장님은 70년대에 동아대학교를 다니신 분이니까. 정형은 전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85학번이다. 박형은 삼수를 해서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90학번이다. 차 속에서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와 우리를 듣고 정태춘의 촛불, 우리는, 탁발승의 새벽, 떠나가는 배,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를 듣고 있으니 예원대학교 팻말이 보이고, 한일장신대학교 팻말이 보이더니 죽림온천이 보였다. 이 온천에 목욕을 하려 왔었다. 박형이 나보고 죽림온천에 목욕하려 가자고 한다. 나는 사양했다. 차는 전주외곽도로를 지나더니 봉동쪽으로 들어갔다. 이 봉동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백제예술대학이 나온다. 내 친구 공용석과 발음이 닮은 공룡석상(큰 공룡, 작은 공룡) 2개가 보였다. 형보고 여기서 그냥 나는 버스타고 집에 가면 되니 처가인 성남으로 가라고 하니 박형이 집까지 태워준다고 한다. 익산의 학교 중에 원광대학교가 유명하다고 하니 박형이 알고 있다고 한다. 테이프를 정태춘에서 들국화로 바꾸었다. 차 속에서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도우미들이 춤추고 있었으며, 집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 박형이 나에게 몇만원을 주면서 친구랑 같이 밥이나 사먹으라고 한다. 나는 사양을 하다가 마지 못해서(?) 받았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잠시 자고 일어나니 오후 6시 반이다. 저녁을 알아서 차려먹고, 박형한테 전화를 하니 아직도 성남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다.
이 화엄사여행기는 지리산의 사찰을 한 번 더 찾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