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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먹기
글 : 김연수 / 푸드테라피협회(IFTA) 회장 |
동짓날 하면 팥죽이 생각난다. 유래는 중국에서 시작됐다. 옛날 공공이라는 사람에게 망나니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귀신이 돼 역병을 옮겨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공공은 “아들이 살았을 때 팥을 가장 싫어했다”며 팥으로 죽을 쒀 마을에 돌렸다. 이후로 역질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어 역신을 쫓았다고 한다. 중국 고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팥은 팥빙수, 단팥죽 등 사철 애용되는 곡식이다. 실제로 동국세시기에는 팥죽을 동지 뿐 아니라 초복, 중복, 말복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왠지 팥은 추위와 더 잘 어울리는 겨울철에 더 그리워지는 먹거리다. 어릴적 두 손 비벼 가며 먹었던 따끈따끈한 호빵,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계피가루 솔솔 뿌려진 단팥죽, 새알심 동동 띄운 팥죽. 단 한끼라도 팥이 주식이 되는 절기 동지가 겨울에 있기 때문일까.
과학적으로도 팥의 효능은 신통하다. 최근 항노화식품으로 부상되는 안토시아닌이란 성분이 특히 풍부한게 팥 껍질이다. 시신경에 영양을 공급하며 피로를 회복시킨다. 혈관이나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며 혈액순환을 좋게 해 피를 맑게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팥은 당질(56%)과 단백질(21%)로 구성되어 있고 비타민A, 비타민B1· B2, 엽산, 칼슘, 인, 철, 섬유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영양소는 티아민으로 불리는 비타민 B1이다. 탄수화물 대사를 도와 에너지를 생산해서 신체에 활력을 주고, 피로를 풀어주는데 팥에는 B1이 쌀 보다 4배 가량 많다. 탄수화물 대사가 원활하지 못하면 몸속에 피로물질이 쌓여 팔 다리에 통증이 생기고 잘 붓는다. 이로인해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신경쇠약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 조선일보 DB.
그래서 팥은 평소 잘 붓거나 피로를 자주 느끼거나 정신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 권장하는 식품이다. 때때로 피부에 뾰루지가 잘 생기는 경우에도 팥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몸 안의 정체된 수분을 소통시키고 체내 열독을 제거해 뾰로지를 낫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식은 땀을 자주 흘리거나 탈수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팥 섭취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겨울철 식품으로 팥을 추천하는 또다른 이유는 활동량이 줄어드는 계절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적당하기 때문이다. 팥은 지방의 체내 축적을 막아준다. 또 포만감을 줘서 과식을 막고, 부기와 노폐물을 제거하며 섬유질이 많아 쾌변에도 도움이 된다. 팥에는 인삼에 풍부한 사포닌 성분도 많이 있다. 사포닌은 당뇨, 심장질환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또 팥에서 주목할 만한 영양소는 엽산이다. 엽산은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호모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팥을 많이 먹으면 관상동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팥죽에는 달작지근한 단팥죽과 달지않은 동지팥죽 두 가지가 있다. 동지팥죽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소금이 잡귀를 쫒아준다는 속설 탓도 있지만 설탕은 팥 속의 사포닌 성분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소금을 넣으면 죽이 묽어지기 때문에 간은 마지막에 해야 한다. 단팥죽을 끓일 때도 설탕은 나중에 넣는다. 팥은 설탕을 넣으면 단단해져 처음부터 많이 넣으면 제대로 익지 않는다. 팥이 부드러워졌을 때, 거의 다 익었을 때 넣는다.
팥을 익힐 때 소다를 넣어 빨리 익히는 경우가 있는데 소다를 넣고 삶으면 빨리 익기는 하나 비타민 성분이 파괴된다. 한편 팥을 삶을 때 철제 냄비를 이용하면 팥의 안토시아닌 성분이 철과 만나 색이 검게 변하므로 내열 유리나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필자 약력 - 김연수
푸드테라피협회(IFTA) 회장 E-mail : ifta@iftanet.com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을 졸업했다. 푸드테라피라는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전파했으며, 푸드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을 만들어 자신이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가 됐다. 의학전문기자 출신으로 강연, 방송, 컬럼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통해 건강하고 즐거운 먹거리의 새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MBN <엄지의 제왕> 패널, KBS TV 비타민 <장수밥상>, 올리브 tv <당신을 바꾸는101가지 레시피> 진행자로 활동했다. 풀무원 ‘바른먹거리교실’ 기획 및 운영위원, 딤채 홍보대사, ‘사찰음식의 세계화’ 패널 등 웰빙의 식문화 확산에 기여한 건강음식 전문가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 10여 년간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해오다 의학과 음식을 접목시킨 ‘메디컬푸드’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 문화일보 ‘김연수의 메디컬푸드’를 통해 식재료를 우리 몸에 최적화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건강비법을 소개해왔다. 이후 ‘몸을 치료하는 음식’으로 웰빙식문화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건강음식들과 어느새 트렌드처럼 흔해져버린 웰빙음식들이 넘쳐나는 현실이 역으로 건강을 망치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에 나머지 인생2막을 걸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벼운 식재료들로 내 몸에 가장 적합한 치료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전파해오면서, 사람을 위한 사람 안의 푸트테라피스트로써 그 참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저서로는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5kg 가볍게 5살 젊게 5시간 활기차게>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1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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