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 준 사람의 죄가 더 크다.”(요한 19장 11절)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 앞에서 준엄하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대통령은 물론 집권 여당과 권력기관, 언론기관, 그리고 기득권을 가지고 서민 위에 군림하는 세력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에게는 날선 검처럼 신앙 양심을 찌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이후 갈수록 국민이 천부의 기본적 권리를 제약받고, 표현의 자유가 날로 옥죄어 드는 현실을 보면서 천심과 다름없는 민심을 거스르는 정부의 잘못을 질책하는 사제들의 충정을 깊이 헤아립니다. 아울러, 겸손히 낮은 목소리로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면서 밝고 따뜻한 사회를 위해 신명을 다하려는 서원을 하는 1,265 분 사제들에게서 우리는 큰 힘을 얻습니다.
시대의 징표를 내다보고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려는 사제들의 이번 선언을 깊이 묵상해 보건대, 지적하신 현안과 제반 문제는 더 이상 묻어 두거나 미룰 수 없이 화급한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분단의 치유와 평화 유지, 그리고 경제 개발의 난제 속에서도 소중히 가꿔온 민주주의적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상실감이 가장 아픕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오직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고, 주리 틀리고, 목숨을 빼앗겼습니까?
민주주의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선결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방송 통신에 대한 여러 유형무형의 탄압을 하고 미디어법을 통해 공영방송을 대기업과 조중동에 넘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조차도 보장하는 집회 시위에 대해 갖은 구실을 달아 불허하고, 선량한 집회 참가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여 연행합니다. 공개적인 남북교류 인사들에게 국가보안법으로 들씌우는가 하면, 인터넷 정보 바다를 감시 통제하려 듭니다. 양심과 정의의 표현인 시국선언에 참가한 17,000여 교사들에 대해 전례 없이 형사고발과 징계로 대응하는 현실에 그저 기가 막힐 뿐입니다.
인권과 생명의 존엄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거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대해 공권력이란 이름의 폭력으로 무자비한 진압을 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용산대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기도하는 사제들을 길거리로 내동댕이치는 일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도 없었던 충격적인 일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도 추락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다른 무엇에 우선하여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제일의적 선택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희망은 국부의 총량을 늘리는 일 못지않게 열매를 나누는 복지균점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후 부자와 극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으로 사회 양극화를 깊게 만들고 있으며, 비정규직, 최저임금, 실업대책 등 저소득층을 위한 현안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경제 정책이 아니라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재벌 건설사를 살리기 위한 4대강 준설공사에 22조 원의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붓는 대역사를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정책도 귀족학교 설립과 경쟁만능정책으로 치달아 교육 복지를 요구하는 교육주체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미숙한 대북정책으로 남북이 화해와 교류 협력이 아닌 대립과 갈등 관계로 되돌아가 마침내 안보위기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이정표인 6․15선언과 10․4선언은 양측 정상이 서명한 최상급 합의사항이었지만 이젠 사문화되어 휴지조각처럼 내던져질 운명에 처했습니다. 정부는 대북 문제를 대화와 평화로 풀기보다는 응징과 압박을 외세에 구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까지 합니다. 남북이 공영과 상생을 통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화해는 상대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히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적 가치인 소통과 여론 수렴, 그리고 합의의 절차를 배척했습니다. 도리어 위선과 오만, 독단과 거짓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거짓말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몰고 온 검찰의 수사 왜곡에서부터 교육청의 성적 거짓 보고까지 나라의 공공기관이 온통 거짓말 경쟁을 벌이는 형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앞으로 이 사회에 협잡과 거짓이 정직과 진실을 누르고 출세의 길을 보장하는 병폐가 만연할까 두렵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각계 각층의 외침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고 성찰하기 바랍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화해, 나눔과 공의가 실현되어 평화와 생명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복된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구체적 행동으로 책임 규명과 함께 상응한 조처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하여 절망과 분노로 들끓는 국민에게 다시 희망을 품게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화해와 일치를 기도하는 사제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두 손 모읍니다.
2009. 7. 13
천주교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 생명․환경연대 / 정의평화위원회 / 천주교정의구현상주연합
첫댓글 숲사람님께서 일부러 올려주셨네요. 서울대교수들이 시국선언했을 때 청와대 사람들이 서울대교수가 몇 명인데 뭐 그 정도야 했다 하지요. 그 정도가 어디까지 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오래 전 임수경양이 혼자서 판문점을 넘어올 때 문규현 신부님이 사제단을 대표하여 가셨듯이 시국선언 교사 징계 운운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신부님들이 일어서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나서서 시국선언을 해야 그들이 귀를 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