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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시간이 멈추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지되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드디어 눈을 떴을 때, 나는 “손가락이 부러졌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신문은 내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 만에 의학적으로 사망판정”을 받았으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및 각계각층의 간절한 기원에 힘입어 십 분 만에 소생하는 기적을 부렸다”고 썼다. 그리고 “정신을 되찾은 후 첫마디가 ‘손가락이 부러졌어요’”였다며, “무의식중에 나온 이 말을 통해 고故 김기식씨기 얼마나 대단한 애국심으로 용의차량에 돌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84년, 백남준은 4월 1일 지구가 콩알처럼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게 보여주었고, 가을에는 아랍인(이스라엘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원래 아랍출신이다)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한국을 방문했다. KBS는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가운데 그가 손가락을 구부리고 고장 난 시계(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렇게 많은 고장 난 시계를 어디서 구했는가 하는 것이다)를 움직이게 하는 쇼를 방송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이 세상이 얼마나 원더풀한 곳인지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모든 사람이 원하면 어떤 기적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위 기사에는 거짓은 없었다. 내가 살아나기를 온 국민이 기원했다. 기사의 제목은 ‘원더보이, 희망의 눈을 뜨다’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원더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나를 ‘원더보이’로 만든 사람은 권대령이었다. 보통의 군인들과 달리 사복이었던 그는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바지가 보통 네 개의 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처럼 항상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다니는 다중인격자였다.
“군君은 이제 조국에게 희망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말하자면, 소녀시대(주: 이수만이 ‘소녀시대’를 기획한 것은 80년대 초이고 SM을 설립한 것은 1989년이다) 같은 것이다. 조국의 미를 상징하는. 애들은 항상 다리를 흔들며 웃고 있지 않은가? 너도 그 애들을 본받아 눈물 따위는 보이지 말고 늘 웃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군에게서 희망을 얻을 것이다. 비록 네 아빠는 조국을 위해 산화하셨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다리라도 흔들어야 할 텐데, 다리는 깁스. 권대령이 아빠 이야기를 하자 가슴에 물이 차는 것 같았다.
“앞으로 군의 인생은 많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주정뱅이 아빠와 있는 것보다 나와 지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앞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겪을 것이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군은 나를 아버지로 여기고 따라야 한다. 나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대하겠다.”
권대령이 말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나는 울기 시작했다.
“몰라요. 몰라. 빨리 우리 아빠 데려와요. 앞으로 말을 잘 들을 테니까. 아빠를 살려주세요. 왜 날 살렸어요. 아빠가 없는 세상이라면 살고 싶지 않아요.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2.
내가 눈물이 많은 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취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눈물은 외로움의 찌꺼기인가 보다…다다다…. 그러니 소원을 말해봐…봐봐….” 그렇다. 나와 아빠는 소원말하기 놀이를 즐겼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적어도 마음은 부자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은 엄마를 찾는 거였다(당시 TV에선 미야자키 하야오가 레이아웃을 담당한 <엄마 찾아 삼만리>가 절찬리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를 잊기 위해 매일 밤이면 소주를 마셨다. 엄마의 부재가 아빠에게 너무나 큰 상심을 주었는지, 그는 독약까지 준비해 놓고 종종 나를 위협했다.
그런데 그런 아빠는 다른 한편으로 비망록을 작성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런저런 낙서는 물론, 여러 가지 신문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 기사는 뭘 잊지 않으려고 스크랩한 건가요?”
“옛날에 내게 ‘오랑’은 말레이어로 사람이란 뜻이고 ‘우탄’은 숲이란 뜻이라는 걸. 그래서 오랑우탄이란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걸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럼 오랑우탄 때문에 스크랩한 건 아니네요. 숲속의 사람들이 서운하겠네. 고마운 사람이었나봐요. 그 사람.”
“어떻게 알았지?”
“고마운 사람이니까 잊지 않으려고 하겠죠.”
“어설프게 복선 같은 것을 깔려고 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 자, 네 소원이나 말해봐라.”
“아빠가 지니(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니는 당시 인기가 있던 한국산 딜도의 제품명이기도 했다)인가요? 소원을 말해봐~라니. 어쨌든 좋아요. 저는 착한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뭐라고? 착한 소설가? 소설가면 소설가지 왜 거기에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보통의 소설가들은 비평가의 수많은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고상하지 못한 판에 몸을 담글 생각이 눈꼽만큼 없어요. 그냥 저는 제가 느끼는 이 감정, 예를 들어 외로움, 눈물, 기쁨 같은 것으로 다른 누군가(이를테면, 독자)와 소통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지금 아빠가 그런 것처럼.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소주 한잔에 고단한 삶을 잊고 저 별들을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너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원하는구나. 그런 것을 원한다는 것은 네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능력만 아니라 네 마음도 그대로 전해주는 능력, 그러니까 교감과 동조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할 텐데.”
“복잡한 것은 모르고요. 저는 그냥 공감을 향해 노를 젓고 싶을 뿐이에요.”
“그런데 애야, 어린왕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네 나이는 성인잡지를 훔쳐보거나 몽정이나 할 때이다. 그런데 너한테는 도무지 그런 게 없으니…. 감수성만 넘쳐날 뿐이고…. 쯧쯧. 그런데 말이다. 무언가에 대한 동정이나 동감이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죄책감에서 온 게 아닐까? 왜 허치슨인가 스미스인가 하는 사람이 그랬잖아?”
“아빠! 지금은 80년대라고요.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절. 어떻게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 그건 그렇구나. 그런데 죽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을 거야. 2012년이 된다고 해서 공감의 계기가 더 적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나저나 하늘에 별들이 참 많구나.”
“정말 그러네요. 몇 개나 될까요? 인류가 지금까지 먹어온 별사탕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아니, 그보다는 그 별사탕을 먹고 죽은 정자 수 정도가 될 거다. 나도 군대에서 네 형, 누나를 많이 죽였을 거다.”
“아빠! 저 별들이 별사탕이라면, 건빵은 뭘까요?”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닐까? 모두가 별사탕만 골라 먹었으니까.”
“아빠! 외로웠겠네요. 건빵은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두가 외롭단다. 이 세상에서는. 건빵이라고 예외일 수 없지.”
여기서 문제가 하나 나갑니다.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그건 우리가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어마어마하게 고독하다.
1천65억분의 1만큼 고독하다.
1을 1천65억으로 나누면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3878947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3878947은 0이나 마찬가지다.
나란 존재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몸이 아직 정자를 생산하는 데에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3.
아빠와 내가 탄 빨간색 트럭과 정면충돌한 차에는 무장간첩이 타고 있었다고 권대령은 말했다. 그 간첩은 남한에 존재하는 구멍가게에 침투 건빵을 입수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왜 하필 건빵이죠? 잘 이해가 안 가요.”
“군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는 수없이 일어난다. 평범한 식료품도 탈취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북괴가 얼마나 잔악한 놈들인지 잘 보여준다. (……)”
“군과 군의 아버지는 바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애국애족을 마음으로…….”
“아니요. 우리는 그런 거 본 적 없어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에요.”
“조사 결과, 군의 아버지는 군복무 시절에 취사병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다른 사병과 달리 부식을 훔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취사장의 부식고를 노리는지…. 특히 건빵을 말이다.”
“건빵이 아니라 별사탕이었겠지요.”
“하긴 그렇지. 별사탕은 전투식량 2호인 비빔밥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지. 그런데 문제는 이런 거였단다. 모두가 건빵에는 관심이 없고 별사탕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별사탕은 건빵봉지 뜯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 즉 별사탕을 위해 별사탕이 아닌 건빵을 훔쳐야 한다는 이 모순.”
“그럼, 그 뒤에 건빵은 어떻게 되는 거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빤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보며 달콤한 별사탕을 먹는다는 것(당분이란 반군대적인 미각이다), 그것은 수많은 건빵폐기물과 마주한다는 의미한다. 물론 건빵도 같이 먹으면 상관이 없지만, 그것은 종교활동에 가서 초코파이 한 상자를 먹고 돌아와 짬밥을 다시 먹는 것만큼이 난감한 일이지. 그래서 별사탕을 둘러싼 모험은 항상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라고 할까. 별사탕은 사라지고 건빵만 산더미처럼 남는 형국이지.”
나는 건빵만이 천장 가득히 쌓여있는 창고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확실히 그것은 건빵산 속에서 별사탕을 찾기만큼이나 어이없는 풍경이었다.
“그러면 별사탕만 지급하면 되지 않나요? 건빵은 지급하지 않고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그랬다가는 오늘의 국군은 없었을 거다. 인간의 몸은 마음보다는 자신을 동정하기 쉽지. 그런데 자신을 동정하게 되면, 약 2년간의 군 생활은 지옥이 된단다. 바꿔 말해, 억지로 끌려온 젊은 친구들이 사제의 맛(별의 맛)만을 기억하게 한은 군에 적응하기가 힘들지.”
“그럼, 별사탕 없이 건빵만 지급하면 되지 않나요?”
“옳은 지적이야. 하지만 말이야. 군용 별사탕은 맛은 사제의 것이지만, 그 기능은 매우 군대적이지.”
“무슨 말이죠?”
“(작은 목소리로) 이건 일급비밀인데 말이다. 여기서만 듣고 흘려라. 만약 이 사실이 공개되면, 군에서 파업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군용 별사탕은 정자를 파괴하여 성욕자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단다. 생각해 봐라.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남자 수십만 명이 별 문제없이 2년간 군복무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 그게 가능하다면, 뭔가가 있는 거야. 별사탕은 자신보다 많은 정자를 없애고, 건빵은 그렇게 성욕이 사라진 몸에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시스템이지.”
그때 문이 열리며 사병 한 명이 들오면서 힘차게 경례를 때렸다. “충~~~~~성!”
그는 간호병이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FB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명동 한 복판에서 “FB를 가장 잘 던지는 사람?” 하고 외치면 익명의 인파 속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등장할 정도였다.
“이 친구가 너를 잘 돌보아줄 것이다.”
4.
나는 휠체어를 타고 청와대에 갔다.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권대령은 자신이 구상하는 컨셉트와 어긋난다고 단호히 거부했다. 긴장된 시간이었다. 거대한 홀에는 나 이외에도 10여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실인마라는 말이 들려왔다. 환청일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인마, 다시 같은 단어가 들렸다. 하지만 누가 하는 생각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대신에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복부가 파열되어 즉사한 시체, 내심 뜨끔했다. 그렇다. 나는 아빠를 잃은 고아이기 이전에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간첩도 인간이 아닌가? 그런 그를 내가 탄(물론 운전을 한 것은 아빠다) 트럭으로 죽게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그는 고작 별사탕을 훔쳤다는 이유로 죽은 셈인데(왜 별이 아니고 별사탕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별은 북한도 충분했는지 모른다), 그에게도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자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의 아들, 형, 누나, 동생, 그리고 아빠를 죽인 나와 내 아빠를 증오하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살인마!
그렇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순간 물밀 듯한 두려움과 회환에 온몸이 떨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내 차례가 돌아왔다.
“어찌 지내나? 잘 지내나?”
“네, 각하님.”
권대령은 차렷 자세로 대답한 뒤, 다시 열중쉬어로 돌아갔다.
“이 애가 원더보이인가? 그런데 이렇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지?”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이때 불이 꺼지고 무게 있는 음악이 홀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정에 셀 수 없는 수의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것은 바로 최근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한 야광 별 스티커였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면, 은하계가 그대로 내려올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살인마!”라고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또 누구지’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각하님과 권대령을 포함하여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말은 다름 아닌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순간 누군가 불을 켰다.
당시는 1984년이었다. 광주사건의 기억이 생생이 남아있던 시기, 자칫 잘못하면 아무도 알지 못하고 곳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호수에 내버려지던 시대였다. 권대령의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헐크처럼 녹색으로 변했다. 순간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에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알다시피 내 능력 중 하나는 언제든지 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울음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훌륭한 지렛대이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은 물론 걸이나 우먼들이다. 그러고 보면 보이나 맨들은 이런 능력을 좀 더 계발할 필요가 있는 존재들이다.
모두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열심히 계산하는 동안, 최근 16비트짜리 IBM 컴퓨터(이때부터 DOS가 주류가 된다) 구입한 권대령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빠른 속도로 상황을 판단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하님, 이 친구는 간첩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지요.”
그러자 각하는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펴고 다시 대머리 호인의 얼굴로 돌아갔다.
“참으로 착한 친구로군. 간첩 한 명을 죽인 정도로 죄책감을 갖는다니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입니다.”
“맞아. 이런 친구들에게는 말이야. 뭔가 몰두하는 할 게 필요하지. 프로야구 같은 거 말이야. 그래, 원더보이. 좋아하는 야구팀은 어디지?”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야구는 알지만, 프로야구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권대령이 16비트 특유의 빠른 연산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합니다.”라고 대신 대답했다. 급조된 것 치고는 나름 센스가 있는 대리답변이었다. 이 상황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나오면, 너무 평범해진다. 당사자가 원더보이가 아닌가?
“뭐라고? 그거 제일 못하는 팀이 아닌가? 어쨌든 독특한 친구군.”
“아마도 엠블럼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슈퍼맨이 배트를 들고 있는….”
5.
나는 두 가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능력이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유리 겔라가 비법을 전수해달라고 방한을 적이 있다. 하지만 시험삼아 그의 손가락 먼저 부러뜨리겠다(당연히 농담이었다)고 하자 꼬리를 감추고 줄행랑을 쳤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그 뒤 젓가락을 부러뜨리는 묘기를 선보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능력 때문에 권대령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시국사범을 취조하는 데에 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초능력자란 다른 말로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관리대상이자 이용대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는 극비리에 나와 같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관이 있다. 이름 하여 <지능개발연구소>.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이 학교는 미국의 <사비에 영재학교>를 모델로 한 것이데, 실제로 학점교류도 맺고 있었고, 우수 졸업자는 유학도 가능했다. 학비는 일정 정도는 국가의 지원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충당해야 했다. 예컨대 <지능개발연구소> 학생들은 <묘기대행진>에 나가거나 밤무대 등에서 일정 기간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경찰에 파견되어 프로파일러 비슷한 역할을 해주거나 카지노에서 권대령을 도와 상대방의 패를 읽어야 했다.
언젠가 피터 매그니토 박사가 우리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순전히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는 지금 근원에 직접 닿아 있는 거야. 에너지는 거기에서 비롯하지. 네가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근원의 에너지는 원하는 만큼 네가 머무를 테니까. 우리는 한 번 죽고, 여러 번 살고, 무한대로 존재하지. 그 무한대의 영역이 지금 네가 닿아있는 근원이야.”
“좋은 말이네요.”
“그렇지. 이런 애매모호한 말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거든. 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사람들은 명료하고 논리적인 것을 싫어해. 문학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마 그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런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천문학이나 양자역학도 문학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지.”
“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죠?”
“너만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도 네 장래희망이 착한 소설가라는 것 정도는 안단다. 그런데 말이야, 착한 소설가가 되려면, 먼저 거세부터 해야 한단다. 아니, 이미 사실상 거세가 되었다고 해야 정확할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초능력을 가질 수는 없을 테니까. 생각해봐.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성욕마저 사춘기 청소년처럼 왕성하다면, 그는 아마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 거야. 생텍쥐페리라는 작가를 아나?”
“당연히 알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왕자』를 쓴 작가인데….”
“그렇지. 바로 그거야. 착한 소설가가 쓴 매우 착한 소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생텍쥐페리가 그런 착한 소설을 쓴 게 발기부전증으로 고생하던 시기란다. 어린왕자에게 성욕이라는 게 눈곱만큼도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떤 의미에서 어린 왕자는 성기라는 것 자체가 없는 인간이니까. 그림을 봐봐. 사타구니가 여차처럼 밋밋하잖아?”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믿죠?”
“내가 직접 만나봤거든.”
순간 나는 그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는 듯 그가 말했다.
“애써 계산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나와 같은 돌연변이들은 200년, 500년도 살 수 있거든. 그건 그렇고 중요한 것은 그보다 내가 그에게 소설공장을 소개시켜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호의를 거부하고 착한 소설을 쓰는 것을 선택했다는 데에 있지.”
“소설공장요?”
“응, 오래전 볼프강 베르테르라는 분이 만든 기관이지. 자세한 것은 「강냉이와 나」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내가 네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어린왕자를 코스프레하지는 말라는 거다. 성적 욕망이 제거된 공감의 공동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또는 한심한) 집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하는 소리다. 적어도 성적 욕망이 있는 자는 상대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잔인함에 한계가 있거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와 나눈 이야기는 꽤 유익했다. 언젠가 그 의미를 알 날이 있으리라.
6.
우여곡절 끝에 나는 재능연구소를 탈출하여 상경했다. 그때의 감상을 나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 바 있다.
그들은 충분히 약했지만,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그들을 억세고 질기게 만들었다. 그 강인함의 원천은 기차에서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또 운명처럼 재회하고, 자주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러다가 그를 사랑하고, 화상을 당한 사람처럼 사랑한 흔적을 지우지 못해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기다리며 나는 검거나 하얀 혹은 잿빛의 머리칼들과 모자들과 스카프들과 대머리들과 파마머리들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에게도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으리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제는 나도 알겠다.
그리고 이것을 글로도 옮겨보았는데,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 약간 감상적인 면이 흠이지만, 열심히 살아보자는 희망적 메시지가 잘 담긴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좋았다.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부분도 포함되어 있지만, 좋은 글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소설가의 임무란 뭔가 복잡한 것을 쓰는 것도 뭔가 새로운 것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착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가슴을 열고(여성들은 시늉만 내면 된다) 우의와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나는 가판대의 진열된 스포츠신문을 보았는데, 삼미 슈퍼스타즈가 10연패에 빠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삼미 슈퍼스타즈, 각하님과의 만남에서 들은 이 팀명을 기억해냈다. 신문 위에는 몇 가지 잡지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좋은 생각』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 잡지와 같은 착한 소설을 반드시 쓰리라 다짐했다.
일단 홍대로 갔다. 왜 홍대냐고 묻는다면, 원래를 명동으로 가려고 했지만, 지하철을 그만 잘못 갈아탔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상마당 앞에서 길거리에서 나누어준 광고지를 돌돌 말아 입에 밀착시킨 채 외쳤다. “FB를 세상에서 가장 잘 던지는 사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다시 외쳤다. “FB를 가장 잘 던지는 사람람람람!!! 콜록콜록.” 그러자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대뜸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 원더보이지?”
자신을 강토(그는 허영만의 팬이었다)라고 소개한 그는 일전에 내가 출연한 <송년특집 원도보이 대행진>을 시청하다가 내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손에는 민음사판 『사기열전』(주: 이 부분은 간접광고임을 밝힙니다)이 들려 있었다. 강토 형은 나에게 선사상善思想이라는 출판사에 소개시켜 주었고, 나는 사환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출판사의 발행인은 <착하게 살자 국민본부> 공동대표인 도선 스님이지만, 실제로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것은 강재진이라는 해직기자였다. 그렇다. 이때는 해직기자가 가뭄에 잡초 나듯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런 책들을 읽었다.
『시튼 동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적과 흑』, 『폭풍의 언덕』, 『베니스에서의 죽음』(비 내리는 밤기차에서 토마스 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대부분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죽으니까), 그리고 『코스모스』(별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왜 이런 책을 읽었는가 하면, 나중에 소설을 쓸 때 독자들에게 떡밥을 던져주기 위해서이다. 딱히 연관이 없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저런 구절이나 에피소드를 집어넣으면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풍부해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열심히 책을 읽는 작가, 그리고 “너 읽었어? 나도 읽었어!” 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 그런 작가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문장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다.
“강토는 강해지고 싶다고 말했어.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너는 이미 온전해. 우린 완벽하기 때문에 여기 살아있는 거야. 생명이란 원래 온전한 것이니까.”
이런 문장을 읽으면 착한 독자들은 밑줄을 긋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할 것이다. 하나 더 들어볼까?
“절망적이에요.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괴로워하질 않잖아요.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는 경외하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죠.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고 이적행위이니까요. 그러니 고통받은 사람들은 고독해질 수밖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국가는 왜 자기 안에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건가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고통’이란 단어를 반복하는 이 글을 유치한 문장들의 조합이라고 폄훼하지 말기 바란다. 네 문장은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감동적인 글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더구나 이 문장은 연탄재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고통에 대한 집착, 그렇다. 강토 형에게는 그런 게 있었다. 강토 형은 국가적 폭력에 죽었다고 한다. 그는 기억력이 좋았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장학퀴즈>에 나가기도 했는데, 죽지 않았다면, 국회위원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강토 형은 애인의 죽음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해왔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지우고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고 많은 방법 중에 왜 하필 남장인지에 대해서는 애인이 총각으로 죽은 것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그녀)는 그것으로 만족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분신이었다, 변신이 아니라. 여기에 숨겨진 논리는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면, 어떤 국가나 권력도 개인을 억압할 수 없었을 거예요. 타인의 고통을 공포보다 더 강하게 느껴야만 한다는 건 그런 뜻이에요. 지금과 다른 국가를 원한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여겨야만 해요.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거예요. 그건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일이겠죠.”
분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뭔지 궁금했다. “도대체 분신이 뭐지? 나를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인가?”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아 수많은 원숭이를 만들어낸 손오공이 잠시 떠올랐다. 여기서 어떤 분은 내 나이에 분신이 뭔지 모른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나라는 캐릭터를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간단히 말하면, 원더보이란 리틀프린스의 다른 이름에 가깝다. 생각해 보라. 어린왕자가 ‘분신’이라는 단어를 알까? 먹지도 싸지도 않는 그가.
모든 캐릭터는 나름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고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인생이란 한강과 같은 것이라고. 해가 지는 쪽을 향해 그 너른 상물이 흘러가듯이, 인생 역시 언젠가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로 접어든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리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7.
그 즈음 나는 놀랍게도 엄마를 만났다. 그것은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심부름으로 우체국으로 가는 중에 전파상 텔레비전에서 중계되고 있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를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엄마들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주: 당시 삼미의 치어리더의 복장은 원더우먼이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엄마”라고 외쳤다. 그 소리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는데, 그때 엄마들 머리 위로는 HONGKONG이라는 가락지를 단 거대한 철새 무리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저 높이 날고 있는 새의 가락지, 그리고 거기서 표시된 글자까지 보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또 잊었나? 내가 돌연변이 원더보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대로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얼마 있지 않아 끔찍한 상황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가득 품은 채 우체국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 우체국 앞 광장이 사람으로 들끓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는 호기심에 뛰어가 까치발로 보니, 맙소사 강토 형이 왼손에는 책 한 권(제목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었다)을,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서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놀란 마음에 다짜고짜 이렇게 내질렀다.
“강토 형, 그러지마.”
“어쩔 수 없어. 이게 최선이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지 않는 이 세상은 불로 정화될 필요가 있어. 나는 그것을 위해 군불이 되고 싶을 뿐이야.” 그(그녀)는 면접에 단련된 수험생처럼 너무 비장하지도 않고 또 지나치게 경박하지도 않게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그(그녀)의 냉정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그녀)의 몸은 온통 기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발 밑 역시 기름으로 흥건했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아름다운 청년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닥불이 피어오르길 기다리듯이 말이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다시 생각해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 지구라는 별은 아직 형처럼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
“아니야. 좋은 생각만으로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어.”
정확히 이렇게 말한 후,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켰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초능력을 발휘했다. 즉 강토 형의 엄지손가락을 부러트린 것이다. 악! 형은 고통스럽다는 소리를 냈지만, 이미 지퍼라이터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나머지 손가락도 마저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 아니었다. 불이 붙은 라이터는 그 때문에 흥건한 바닥으로 춤을 추면서 낙하했기 때문이다.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미처 선글라스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 우습게도 라이터불은 바닥에 닿자마자 치익~하고 꺼졌다. 그렇다. 강토 형은 분신에 실패한 것이다. 모든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항상 성공만 하는 삶은 얼마나 따분할까?). 고로 분신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분신만큼은 성공한다고 믿는다. 즉 비장미를 위해 실패를 애써 외면하는 것인데, 이는 착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다.
강토 형은 분신을 차분히(즉 일상생활처럼) 준비해 왔다. 우선 황학동 도깨비시장에 가서 월남전 때 인기가 있었던 지포라이터(월남지도가 그려져 있었다)를 주인아저씨와 실랑이 끝에 애초에 부른 가격보다 5천원 저렴하게 샀고(경제적인 소비를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유서도 썼다.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피를 말려가면서 썼다. 유서에서 발견되는 오탈자는 그 자체로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분신을 포기할 생각까지도 했다.
마지막 준비는 역시 휘발유를 사는 것이었다. 그(그녀)는 오늘 아침 준비한 돈을 가지고 주유소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통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따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통 값을 치루고 나니 휘발유를 가득 채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반 정도만으로 거사를 치루기도 왠지 멋쩍었다. 자 상상해 보라. 기름통에서 머리 위로 콸콸 쏟아지는 장면을 연출해야 하는데, 찔끔 나오고 만다면? 그처럼 허무한 장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주유원이 묘안을 제안했다. 무언가를 태우기 위해서라면(아마 그는 태워야 하는 대상이 사람의 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경유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경유는 휘발유보다 싸서 가진 돈으로도 통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강토 형은 너무나 고마워서 주유원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얼굴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여드름이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90도 인사로 대체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완성되었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움을 피하려고 한 강토 형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우리에게 ‘공감’보다는 ‘공포에서 어리둥절함으로’라는 낯선 지평으로 열어주었다. 그렇다. 경유의 발화점이 낮아 불이 붙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당황한 강토 형은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집으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내가 그(그녀)의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린 후였다. 강토 형은 이도 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인식한 듯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원더보이!~”
바로 그때였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운 FB가 어디선가 날아와 강토 형 앞에 박혔다. 순간 모닥불이 확 피워올랐고, 하늘의 별들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연신 깜빡거렸다. 갑자기 별사탕이 먹고 싶었다.
8.
1987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빗자루로 천장에 벽지를 바르는 법을 배웠다.
연탄 세 장의 구멍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필드소코프를 사용하는 법도 배웠다.
생각만으로 강토 누나와 자는 법도 배웠다.
동정을 떼는 순간,
밀려왔던 우울과 멜랑콜리.
그리고 1987년 여름이 되자,
베드로와 요한 만큼 고독해 보이는 형들이 말했다.
우리가 살 세상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누군가 예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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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불교문예> 여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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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곳곳에서 빵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취사병이기 때문에 다른 사병과는 달리 부식을 훔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었다고 한다"ㅋㅋ아직『원더보이』를 읽지 않아 소조님이 이런 메타-소설을 써서 꼬집으시려는 부분이 어딘지 잘 잡히진 않지만요. '착한 소설가' 디스 정도가 눈의 띄고, "공감을 향해 노를 젓고 싶을 뿐이에요"에는 작년에 『느낌의 공동체』출간하신 신형철 평론가님 디스도 좀 섞여있는 것 같은데ㅎ 혹시 이런 메타-소설들만 모아 출간하실 계획을 하고 계신건 아니신지?^^
[원더보이]를 먼저 보시면 읽으시면, 재미가 배가 된다는 소문이... ^^ 자매편으로 <목소리의 재구성-너의 목소리가 들려 remix>도 있는데, 이것도 기회가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좀 더 써서 <remix 비평집>이라고 해서 묶을 생각입니다. 다음은 어떤 작품을 Remix하지요? ㅎㅎ
어제 원더보이 다 읽었습니다. 평이 하도 안 좋아 읽지 않으려다 연휴기간 심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어서는 당췌 펴지지 않았습니다. 희선 씨와 그의 남자 친구에 대한 구라를 펼칠 때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의 법대생 데자뷔...김연수는 그야말로 닭은 개똥을 싸지 않고 닭똥을 싼다고 슬프게 말하는 여드름 투성이 어린왕자 맞네요. 아놔...
^^ 그런데 왜 세일즈포인트와 평점은 그렇게 높은지 수수께끼입니다. 혹시 알바?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요.
통쾌합니다!
^^
이 글의 정체성은 뭔지 당췌. 모르것군요...유치해!
홀로 심각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