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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암(極樂菴)
극락암(極樂菴) 편액
有物先天地 유물선천지 無形本寂寥 무형본적료 能爲萬象主 능위만상주 不逐四時凋 불축사시조
一物 있어 천지보다 먼저 있는데 형상 없고 본래로 고요하다네. 능히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어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지 않네.
【解說】 이 게송은 중국 남조 양(梁)나라의 출신의 승려인 부대사(傅大士. 497~569)의 송(頌)입니다.
그런데 주련이 제 3구와 제4구가 바뀌어 걸려 있고, 제3구의 '상(象)'이 '상(像)'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원문과 다른 오자(誤字)입니다.
부대사(傅大士)는 동양(東陽. 지금의 절강성 의오(義烏) 출신으로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 스님입니다. 이름은 흡(翕)이고, 자(字)는 현풍(玄風)이며, 호(號)는 선혜(善慧)입니다. 또한 선혜대사(善慧大士)ㆍ어행대사(魚行大士)ㆍ쌍림대사(雙林大士)ㆍ동양대사(東陽大士)ㆍ오상거사(烏傷居士)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으며, 부홍(傅弘)이라고도 합니다.
일찍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았는데, 잡은 물고기는 언제나 대나무 삼태기에 담아 깊은 물에 넣고서 "떠나고 싶은 놈은 떠나고 머물고 싶은 놈은 머물러라.[欲去者去 欲止者留]"라고 말하여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를 어리석다고 여겼습니다.
16세에 유묘광(劉妙光)과 결혼하여 보건(普建)ㆍ보성(普成) 등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24세에 기수(沂水)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인도의 숭두타(嵩頭陀. 達摩)를 만나 마침내 어구(漁具)를 버리고 오상현(烏傷縣) 송산(松山)의 쌍도수(雙檮樹) 밑에 암자를 짓고 스스로 '쌍림수 밑에서 장차 해탈할 선혜대사'라는 뜻으로 '쌍림수하당래해탈선혜대사(雙林樹下當來解脫善慧大士)' 라는 호를 붙이고 자신이 도솔천(兜率天)의 미륵궁전으로부터 와서 설법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암자로 돌아와 좌선을 하며, 7년 동안 고행한 끝에스스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전적(典籍)에도 능통하여 점차로 배우고자 몰려드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들 모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진하였습니다.
534년(中大通6) 제자인 부담(傅暀)을 시켜 양무제(梁武帝)에게 상ㆍ중ㆍ하 삼선(三善)의 정책에 관한 편지를 바쳤습니다. 그해 윤 12월에 무제의 초청으로 궁궐에 들어가 중운전(重雲殿)에서 경전을 강의할 때 무제도 함께 경청하였는데, 모든 사람이 무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났지만 부대사만은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소 신료들이 비난하자 부대사는 "법의 기반이 움직이면 다른 모든 것이 불안합니다.[法地若動 一切不安]"라고 응답했습니다.
535년(大同1) 4월 송산으로 돌아왔고, 539년(大同5) 종산(鍾山)으로 가서 3월 16일 수광전(壽光殿)에서 무제와 더불어 진제(眞諦)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게송을 바쳤습니다.
540년(大同6) 송산의 쌍도수 사이에 불전(佛殿)ㆍ구층전탑(九層塼塔)을 짓고[雙林寺] 그곳에서 경ㆍ율ㆍ론 천여 권을 서사(書寫)했습니다.
541년(大同7)에는 스스로 현겁(賢劫) 천불(千佛) 중 한 부처님이라 선언했습니다. 544년(大同10) 집과 전답을 희사하여 대시회(大施會)를 베풀었습니다.
548년(太淸2) 자신의 몸을 불살라 삼보를 공양하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간곡히 만류하면서 19명의 제자가 대신 분신하겠다고 하자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 오래 되지 않아 전쟁에서 패하여 양나라는 멸망했습니다.
부대사의 지도를 받던 대중들은 매우 많았는데 끊임없이 그들을 위해 강설하였고 매번 대중을 이끌고 손가락과 팔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였습니다. 《법화경》을 21회 전독하기도 했고, 무차회(無遮會)를 자주 개최했으며, 회계(會稽)에 보왕상(寶王像) 10존(尊)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대장경 독송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윤장대(輪藏臺)를 건립함으로써 대중들이 그것을 돌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후대에 만들어진 윤장대에는 모두 부대사 삼부자의 상을 안치하게 된 것입니다.
천태종의 일심삼관(一心三觀)에 대한 독창적인 이해를 가지고 삼관사운(三觀四運)을 심요(心要)로 삼았습니다.
569년(太建1) 4월 제자들을 불러 놓고 결가부좌한 채 세수 73세로 입적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쌍림산 정상에 묻고 미륵하생(彌勒下生)이라는 호를 붙였습니다.
부대사는 지공(誌公 : 寶誌)과 더불어 양대(梁代)의 이대사(二大士)로 불립니다. 저서로는 《심왕명(心王銘)》ㆍ《환원시(還源詩)》 등이 있고, 《어록(語錄)》 4권을 남겼습니다.
유물선천지(有物先天地) 일물(一物) 있어 천지(天地)보다 먼저 있는데 무형본적료(無形本寂寥) 형상 없고 본래로 고요하다네.
유물(有物)이란 '어떤 일물(一物)이 있다'는 뜻이고, 선천지(先天旨)는 '천지(天地)보다 먼저'라는 뜻이니, 유물선천지(有物先天地)란 무엇인가 어떤 일물이 있는데 이 일물이 천지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물(一物)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형(無形)은 '모양, 형상(形象), 형태(形態)가 없다'는 뜻이고, 본적료(本寂寥)는 '본래로 텅 비어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무형본적료(無形本寂寥)는 형상이 없고 본래로 텅 비어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 不會生不會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불회생불회멸 명부득상부득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이 일물(一物)이 '천지보다 먼저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것은 곧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의 겁전(劫前)의 소식이자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이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소식입니다. 이것은 알음알이로 아는 것이 아니라 참구하여 확철하게 깨달아 알 일입니다.
두렷이 환히 밝은 것 이것을 일러 '마음이다', '성품이다', '도다', '진리다' 하고 이름 지어 갖다 붙여도 그 참된 모양을 나타낼 수 없어 선가(禪家)에서는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서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이 동그라미가 일물(一物)을 참되게 온전히 나타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방편일 따름입니다. 《노자(老子)》 『제25장 상원(象元)』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유물혼성 선천지생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以爲天下母. 적혜요혜 독립이불개 주행이불태 이위천하모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오부지기명 강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혼돈하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엇인가가 천지보다도 먼저 있었다.
고요해 소리가 없어 들을 수도 없고 텅 비어 모양을 볼 수도 없고, 홀로 우뚝하여 변하지 않고, 두루 어디에나 작용하며 멈추는 일이 없어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 하겠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억지로 자호(字號)를 붙여 도(道)라 부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대(大)라 한다.」
여기서 '무엇인가'를 불교에서는 일물(一物)이라 합니다. 도가(道家)에서도 이 일물(一物)은 너무나 고요해 소리가 없어 정이무성(靜而無聲)이라 하고, 바탕이 텅 비어 움직이나 모양을 볼 수 없어 동이무형(動而無形)이라 하면서, 무엇이라 하기 어렵기에 억지로 '도(道)다', '대(大)'라고 부름을 알 수 있습니다.
능위만상주(能爲萬象主) 능히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어 불축사시조(不逐四時凋)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지 않네.
만상(萬象)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말하고, 주(主)는 주인(主人)이란 뜻이니, 능위만상주(能爲萬象主)는 '일물(一物)이 능히 모든 만물 즉 삼라만상의 주인이 되었다' 는 말입니다. 일물은 삼라만상의 구체적인 근거입니다. 즉 일물이 만물을 주재(主宰)한다는 말씀입니다. 일물(一物)은 체(體)이고 만상(萬象)은 용(用)이라 하겠습니다. 일물이 이(理)라 하면 만상은 사(事)이고, 일물이 본(本)이라 하면 만상은 말(末)이라 할 것입니다.
일물(一物)을 '마음'이라 한다면 일체만법(一切萬法)은 마음의 짓는 바이니 만상만유(萬象萬有)가 모두 마음의 화현(化現)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곧 조물주(造物主)가 되는 것입니다.
불축(不逐)은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고 사시(四時)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말합니다. 조(凋)는 '시들 조'인데 여기서는 변화(變化)하는 것을 말합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일체 만사만물(萬事萬物)은 생겨나고 머물었다가 변화하며 이윽고 사라집니다.
사시(四時)로 본다면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으니 봄에 났다가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두고 겨울에는 갈무리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사시는 이렇게 끊임없이 교체되면서 변화합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마음과 만사(萬事萬物)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며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며 끝없이 변화하니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그런데 불축사시조(不逐四時凋)라 했으니 일물은 이런 사시의 변화를 따르지 않습니다. 일물(一物)은 체(體)이고 이(理)인 주인이니 여여부동(如如不動)입니다.
옛 선지식들은 그것을 백적적 청요요(白的的 淸寥寥)라 했으니 "밝고 분명하며 맑고 고요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불능유 화불능소(水不能濡 火不能燒)라 하였으니 "물이 능히 적실 수 없고 불도 그것을 능히 태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선가귀감-
이 뭣고?
능위만상주 불축사시조(能爲萬象主 不逐四時凋).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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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