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형섭교수의『유교정신과 우리세대』안성환/230912
오늘 강의 주제는 ‘유교정신과 우리세대’이다. 유교에는 13경이 있다고 한다. 오늘은 13경 중 오서(五書)에 해당하는 소학(小學),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까지의 내용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소학(小學)은 송나라 때 주자가 옛것을 모아 미래의 학자를 열어주려고 50대 후반에 지었다고 하며, 대학(大學)은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라고 했다. 참, 뜻이 매우 깊은 말이다. 논어(論語)에서는 논(論)자는 자세히 따져보고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한 뒤에야 기록한다는 뜻이고, 어(語)자는 어떤 논란에 대해 대답하고 설명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다’란 말에 그냥 숙연해 졌다. 이어 맹자(孟子)는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라고 했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라고 했고, 중용(中庸)은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넘침과 모자람이 없는 것의 이름이고, 용은 평상이다. 라고 정리하였다. 이 정도만 이해해도 오늘 오서(五書)에 대한 개념은 이해 다 했는 기분이다. 감동이다.
강의 첫 화두가 ”지금은 왜 유교인가? “거기에 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유교는 낡은 사상이 아닌가?” 낡은 것은 버려야하는가? 이다. 그렇다면 장롱 속에 숨겨 둔 백 년 묵은 금덩어리를 버려야 하는가? 물론 유교사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지침서가 될 만한 교훈적 가치들이 참 많다는 뜻이다. 유교에도 5가지의 갈래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중 첫째 ’유교(儒敎)‘는 종교적 관점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유는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하늘의 명을 따르는 ’천명사상‘이 종교적 향이 짙다고 한다. 둘째 ’유가(儒家)‘는 제가 백가에서 볼 수 있듯이 학문의 한 갈래라 하셨고. 셋째 ’유학(儒學)‘은 유교와 유가에서 파생된 학문의 일종이라 하셨다. 넷째와 다섯째 유림(儒林)과 사문(斯文)은 유교와 유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 그들의 사회를 말한다고 한다. 유학(儒學)의 공부에는 크게 도학문과 존덕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도학문은 경전공부고, 존덕성은 마음공부라고 한다. 경전공부와 마음공부 잘 정리해 놓은 것이 행중지경(行重知輕)인데, 행중지경이란 말은 머릿속에 지식만 있는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더 좋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벽시계는 빨랐다. 강의 마칠 시간이 임박할 때쯤 교수님께서는 깔끔하게 마무리하셨다. “신독(愼獨)“ 과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이다. 이 말은 ’신독‘은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조심하라는 뜻이고. ‘일일신우일신’은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뜻이다. 마치 금석학을 새기듯 가슴속에 긁어 새기는 듯하였다. 감동의 시간이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인 만큼 내 생각을 정리한다..
얼마 전 어느 철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문학자는 늘 과거 이야기만 하고 과학자는 늘 미래이야기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은 사조가 없고 인문학은 사조가 있는 것일까? 과학은 절대적인 반면에 인문학은 Normal(표준)이 시대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맞고 틀림이 없듯이 그를 듯하고 그를 듯하지 않은, 즉 잣대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 인문학일까? 이번 ‘유교정신’의 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유학자들만 공자나 맹자에게 지혜를 얻으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공자나 맹자가 과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역사의 변증법에 이런 내용을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영원히 훌륭한 것은 없다. 자기 시대가 있다. 한 시대에 발전시켰다면 다음 시대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첨단이란 과학과 발달한 문명속에 청각과 시각을 총동원해도 옛 선비들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