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라는 낯선 이름표를 붙이고
그가 우리 앞에 나타난 1984년은
이 땅이 나와 내 자식들이 살아갈만한 곳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언제까지 이따위로밖에 살 수 없는가 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함께 가져야 하는
어중된 시절의 한 복판이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대신 빗나간 애국심 충만했던 사람들이 설쳐대던 시절,
일단의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타락의 길을 가고 있을 때도
세상을 굴리는 큰 힘은 분수 지킬 줄 알고 눈빛 선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쉽게 포기하고 익숙해진 잘못될 일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자신의 노래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렇듯 생전의 김광석은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지
친한 친구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 어느 날 갑자기
삼십 년 딛고 섰던 세상에서 일부러 발을 헛디뎌버렸다.
광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김광석,
팍팍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만나
가슴을 열어 하나가 되는 소통의 순간에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던 김광석,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즐겨 그의 노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몸 가까이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 그와의 옛일을 떠올리며 쓴
추억여행에 동승한다는 것은, 생전에 해보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의 글을 빌어 편승해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노래를 들은 누구는 잃었던 힘을 얻었다 말하기도 하고
잊었거나 잃은 줄만 알고 살다가 옛사랑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고도 하지만
내게 있어 그의 노래는 언제나 쓸쓸하고 슬프고 처량한 느낌이었다.
그는 한동안 ‘거리에서’라는 노래를 부르기 꺼려했다고 한다.
가수의 운명이 노래 내용을 따라간다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웃음 속에도 부끄러움이 가득 묻어나던 그의 표정과
힘찬 소리의 바탕에 애조(哀調)가 깔려 있던 그였고 보면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을 스스로 마감해버린 것은
그래서 또 하나의 미신적 전설이 되고도 남을만하다.
책을 읽다가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노래로 들을 때와 달리 글로 적힌 가사를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시(詩)처럼 읽는 노래가사는
스스로 노래를 부를 때는 물론이고
음악에 귀를 맡긴 채 가사집을 펼쳐보던 때와도 완연하게 달랐다.
제목과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마치 생전 처음 낯선 글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게 가사로서의 글이 아니라
문자의 기능이 배제된, 멜로디가 더해진 소리로만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깊은 생각 없이 혼자서 얕은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광야에서’,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그의 마지막 노래가 되어 버린 말 그대로 ‘부치지 않은 편지’ 등……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노래를 비롯해서
모두 오십 편 가까운 노랫말과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글쓴이 문제훈의 개인적 단상들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여러 그림과 생각들이 있다.
김광석과 그의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하고 쌉쌀하고 흥겹고 아린 기억들,
그러나 빛나는 시절들로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에 동승해보기를 손짓해 권하는 책이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될 어느 날을 염두에 둔 김광석의 꿈이었을 것이다.
마주 오는 바람을 향해 전신으로 부딪쳐가는 오토바이의 속도감이
그가 꿈꾼 자유의 날갯짓이었을까?
그러던 그가 흡사 바람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바람의 한 끝을 놓지 못한 채 눈을 감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믿는다.
첫 장에 실린, 정호승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부치지 않은 편지’를 적는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기는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첫댓글 광석이형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형의 몸무게로는 그 오토바이를 감당할수 없었다고 하는 야그가 있다. 화장을 했을 때 사리가 만만치않게 나와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는 야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