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섶길 8-1 무봉산 코스의 내림길이다. 행여 길을 잃을까 앞선 분의 뒤를열심히 쫒았다. 산행전 섶길 안내자의 주의사항이 귓속에 단단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름과 내림이 가팔져 안전에 유의해야한다'했다.
내림길도 오름길과 같이 둘러쌓인 산들과 소나무와 상수리 나무의 울창함에 가려 주변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섶길 일행의 줄짓는 낙옆 밢는 소리가 산의 적막을 깼다. 등잔밑이 어두운 법일까. 평소 산을 좋아하는 터였지만 가까운 곳에 이런 깊은 산이 있을줄이야
진위향교를 코앞에 둔 막바지에 트인 시야가 나무들 사이로 겨우 들어왔다. 아!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진위향교 앞을 흐르는 강과 이를 건너는 세월교가 발아래 모습을 보인것이다.
평소 자전거를 타면서 만기사, 어비리, 남사등의 코스로 오고 가던 곳이고, 특히나 뒤늦게 사진을 알면서 어릴적 추억 때문일까. 진위강의 노을과 일출을 담아보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던 곳이다. 또한 이번 겨울 눈오는 날이 오면 꼭 사진에 담고 싶었던 곳이 아닌가
이렇듯 나의 가까운 기억뿐만 아니다. 아버지의 기억이 서려있던 6.25 전쟁중 1.4후퇴 피난길이었다. 이곳 봉남리에서 피난민들의 가슴아픈 사연들로 절절했던 하룻밤을 묶었다 한다. 어디 이곳 뿐이랴 유엔군 오인사격으로 널부러진 죽은자들을 보며 저 강을 건넜다는 아버지가 물려준 기억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고향 임진강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는 자전거에 어린 나를 메달고 진위강 곳곳을 틈나면 고기잡으러 사철 오르내렸다. 그 당시 맑은 물에 살던 모래무지, 피라미, 동자개 등 그물에 파닥거리던 은빛 고기들을 떼어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들과 천렵하던 학창시절의 추억과 사회 초년 용인 남사로 출퇴근하던 시절도 있었기에 추억이 남다른 길이다.
경기도 장단에서 아버지의 피난길이 온양과 유구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기억과 전쟁중 파괴된 망건다리옆 얼어붙은 강바닥을 건너 팽성을 거쳐 유구로 내려갔다는 기억은 내게 물려 주셨다. 이번 진위현에서 평택으로 또 망건다리를 건너는 평택섶길은 전쟁중 아버지의 피난길을 많이 품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 피난길을 걸어서 경험하고 싶었다. 평택섶길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부모를 일찍 여윈 16살 소년이 전쟁중 함께 피난 나왔던 많은 일가 친척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항렬이 낮아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던 나이 많은 조카와 단 둘이서 추위와 죽음의 공포 그리고 배고픔에 걷던 피난길이다.
이번 정도전길 9코스에서 그 고대하던 눈내리는 날의 세월교 사진을 담고, 섶길을 걸었다. 아버지가 걸었던 70여년전 피난길을 평택섶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생(生)과 사(死)가 뒤엉킨
그 해, 그 겨울
오늘,
달리 걸어봅니다.
아버지!
첫댓글 모두의 아픔이고 절절한 삶을 살아내신 아버지의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신 특별한 날이셨군요. 전 늦여름이 익어갈쯤 만났던 진위천 코스모스가 생각나는 시간입니다.아직은 어렸었던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역사는 깨어 있는 자에게 돌고 돌아서 우리도 그 시간속으로 함께 걸어가게 됩니다^^
지난 앨범을 뒤척이듯 다시 보다보니
아, 꼭 1년만에 댓글을 봅니다.ㅠㅠ
해가 또 바뀌고 섶길에도 다시 봄이 오려나봅니다. 긴 겨울 봄이 그리워 겨울 개나리를 꺾어 화병에 꽂아 봄을 미리 피우고, 그 봄을 기다려 음력 하늘에 경칩 쯤 되면 아버지는 바빠지셨지요. 밭농사 준비하느라... 아버지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다음 원효길에 봄은 얼마큼 와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