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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매체미학과 예술의 정치화> 제1강. 아우라와 그 운명 * 일시: 2024년 8월 21일(수) 오후8시. * 형식: zoom 온라인 * 강사: 정혁현 * 참석자: 박연옥, 서선미, 서은혜, 정단희, 정명수, 이샛별, 유혜숙, 조세랑, 김안선, 박영균, 이학승 (11 명) *전반은 이번 강좌의 목적과 참고문헌을 소개했고 후반부에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우라에 대한 설명은 다음주로 이어집니다. |
* 주 교재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17), 도서출판b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07), 길
* 참고서적
_ 랑시에르의<감성의 분할> (부제: 미학과 정치): 담론 체제의 변화-> 인간은 세계의 중요한 변동에 따라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게 구조화되는데 그것은 감성(오감)이 분할(분배)되는 방식과 오감이 사용되는 방식이 재배열되는 것.
_로절린드 크라우스 <북해에서의 항해>, <언더 블루 컵>: 포스트모던 예술에 대해 이론적 정당성을 열었음에도 오늘날 예술 실천에서는 혹독하게 비판하는 입장.
_ 최종철 <로절린드 크라우스>(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_ ‘옥토버’ 미술 비평지에서 활동하는 할 포스터의 <강박적 아름다움>: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초현실주의를 읽는 텍스트. 아우라의 몰락이라고 말했으나 애도하는 태도 보임. 복제를 복제하고 자율적으로 변형시키는 AI 시대에 아우라는 사라졌는가? 혹은 이 시대의 아우라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정신분석학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함.
* 벤야민을 읽는 방법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을 비판, 보충적으로 읽고 검토해 보자. 벤야민의 비평적 입장을 따라 읽어보자. 번역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원작 역시 그보다 더 큰 언어의 일부라 보고 번역하는 것은 그 원작이 충분히 담지 못한 더 큰 언어를 보완하는 것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말하는 번역자의 과제다. 번역은 창작 과정이다. 읽는 과정 그 자체가 독자의 창작 과정이다(독자 비평 개념). 미술 또한 관람자의 감상에서 작품이 완성되거나 풍부해진다. 이 텍스트는 90년 전에 쓰여졌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심원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벤야민 텍스트는 오늘 우리에게 유효한가?”
오늘날 비평 일반에서의 전제는 텍스트의 의미는 독해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증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벤야민이 신비스럽게 제기했던 원작보다 더 큰 언어가 있다는 가정하에 텍스트를 읽을 것이다. 우리 각자가 개별적이고 독특하게 읽는다면 텍스트들이 분산되는 게 아니라 더 큰 텍스트를 향해서 운집할 것이다. 무수한 텍스트가 만들어질 때 각자 고유한 빛을 발한다. 이것을 인정할 때야말로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텍스트들은 이후 흩어질 뿐 아니라 운집하며 일정하게 별자리를 구성한다. 이것이 벤야민이 역사적 유물론자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변증법적 이미지의 내용이다.
벤야민의 ‘섬광 같은 이미지’ 역시 그런 의미다. 섬광은 역설적 은유다. 섬광은 번개가 번쩍하며 어두웠던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되나 그것은 섬광을 풍경 속에서 볼 때의 이야기다. 섬광이 우리에게 떨어진다면 그 순간 세계는 하얗게 휘발될 것이다. 감춘 것이 드러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분산되고 해체된다는 것이다. 창조적 능력이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로서의 섬광이다.
* 벤야민은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1935년 집필했으며 계속 수정했다. 이듬해 완성본 2판을 만듦(프랑크푸르트 사회문제연구소). 미국 기관지에 싣고 싶어 했으나 검열이 심해 파리에서 발행. 1936년에 출간된 불어 번역본이 벤야민의 유일한 출판물이다. 벤야민이 소비에트 예술운동을 염두에 두고 독일어로 정리한 것이 3판이나 소비에트에서는 발간하지 못하고 그가 죽은 후1963년 독일에서 뒤늦게 출판되어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다.
* 출간된 1936년이 아닌 1963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의 의미
1936년은 유럽이 2차 세계대전의 격랑(스페인 내전의 프랑코 정권,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속으로 빠져들 때이고 그에 대한 진보 세력의 대응을 위해 벤야민은 긴급한 심정으로 글을 썼다. 독일 나치 집권 후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글들은 당시 많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벤야민은 기술 복제의 힘이 혁명적 세력에게 사용되지 못하고 반동적인 세력에게 사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파국을 우려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계급 모순이 강화되던 때이고 권력자의 지위는 불안해지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이 격화되는 혁명적 상황이었다. 전쟁은 바로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_전쟁의 효과
1. 계급모순을 민족(타민족과의) 모순으로 호도. 후발 자본주의국(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1차 대전 후 자본주의 발달->생산력 확장 위해 필요한 새로운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했으므로 선진 자본주의국들의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싸움.
2. 1차 세계대전 중 어느 날 갑자기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이 시작되어 유럽 전역 예술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는 계급 모순이 문화적 양상으로 나타난 것. 아방가르드 운동은 당대의 원근법적 시각을 해체하고 새로운 재현 체계를 실험했다. 당시 지배계층은 이 아방가르드를 무질서와 혼란으로 받아들임.
* 지젝의 흥미로운 제안
_ 지젝은 1, 2차 세계대전은 아방가르드 운동을 잠재우려는 자본가들의 시도라고 말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감각 체계를 흔드는 예술적 사건이야말로 특정한 감각체계를 바탕으로만 전개될 수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위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본주의에 적응한 인간을 근저로부터 잠식시켜 다른 체제를 위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바이러스가 바로 예술이다.
_ 누가 벤야민을 죽였나?
지젝은 1940년 9월, 스페인으로 망명해 미국으로 가려다 국경이 닫혀 자살한 벤야민의 죽음을 암살이라고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우연히 읽은 스탈린이 암살자를 보내 벤야민을 죽였다. 그의 글이야말로 소비에트 혁명의 대의를 배신한 스탈린 체제에 대한 궁극적 위협으로 감지했기에 암살했다는 것. 지젝은 이 두 농담에서 예술은 그 자체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당시 벤야민의 철학이 기득권 체제에 궁극적 위협이었을 것.
* 벤야민의 죽음 이후 왜 그의 글이 폭발적 반응을 얻게 되었을까?
1963~1965년은 불황이 시작되던 때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전쟁으로 해결되면서(과잉생산된 상품 소비) 재생산이 이루어져 호황기를 맞았다가 자체 모순으로 불황기로 들어섬. 고정자본을 늘려 생산을 늘렸으나 소비는 한계가 있기에 다시 생산 과잉에 이름. (이 시기의 전형적 방식: 전쟁- 호황 - 공항- 전쟁- 호황- 공황...) 1963년 불황기. 미소 냉전 대립이 전후 세계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었다. 비판적 지성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둘 사이의 대립이 구성하는 현실을 돌파할 것을 주장했다. 젊은이들은 68혁명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모두를 거부하고 다른 미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벤야민이 글을 쓴 시대는 새로운 비판 이론을 갈급하게 요청하던 시대였다. 다양한 시대적 상황이 발화됨. 68과 전 세계적인 다양한 운동과 담론은(정치적으로는 제3세계 운동, 담론적으로는 다양한 포스트주의의 백가쟁명, 페미니즘의 성격변화 등) 이런 상황에서 야기되었다.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했던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의 글은 제3의 길인 절충주의가 아니라 명확한 좌파 입장에서 당시 현실 사회주의의 타협과 배신을 통찰하고 근본적 차원의 대안과 방법을 예시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상황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영화이론은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맑시즘, 페미니즘 등 다양한 메타 담론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줄기 이론은 1986년 영국과 미국의 ‘문화연구이론’이라는 간학문적 경향이었다. 대개 포스트주의적 입장. 문화연구에서 핵심적 이론은 ‘대중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일반에서는 대중을 매스 (mass 덩어리)로 파악했고 문화연구에서는 포퓰러 popular로 번역했다->'민중적', '인민적.' 대중에 대한 믿음이 전제됨. 대중은 매스미디어의 피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대화하고 비판하고 협상하고 타협하고 창조하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본 것. 하지만 오늘날 개발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들은 결국 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개발되고 판매되는 과정 속에서 대중은 어떤 방식으로 대화 비판, 협상하며 상품의 생산에서 인류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다.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벤야민의 감각 구조 - ‘제의’ 형식과 ‘전시’ 형식으로 구분. 후에는 제1, 제2로 구별)
벤야민의 매체 미학과 예술의 정치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 개념인가?
*2판 제사題辭 와 3판 제구題勾
(제사: 책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 제구: 제목 글귀)
_ 2판 제사
“진실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허위는 그가 원하는 것이다”(마담 드 뒤라스)
벤야민이 이 논문을 쓰는 정치적 목적과 관련된 경구임.
_ 3판 제구
“모든 예술에는 물질적인 부분이 있다…최근 20년 이래 소재도 공간도 시간도 모두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커다란 변혁이 예술의 기술 전체를 변화시키고 또한 그럼으로써 예술의 수법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며, 마침내는 어쩌면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극히 마법적인 방법으로 바꿔버리게 될 것임에 대비해야 한다.” (폴 발레리, <편재성의 획득>)
3판 제구는 이 논문의 바탕이 되는 전제와 관련된 글귀다. 2판과 성격이 다르다. 벤야민은 왜 바꿨을까? 폴 발레리의 인용문이 논문의 인용문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다. 벤야민이 소비에트에 소개하려고 준비했던 3판 논문 제구는 '작설하고 본문으로 당장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글귀. 당시는 물질의 생산 양상이 달라지고 기계문명이 놀라운 속도로 발달하고 대규모의 기계와 공장이 들어섰던, 미래주의자들이 찬양해 마지않던 경이로운 시대였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20세기를 유토피아로 예견했듯. 인간의 위력을 드러내는 구체적 물질로서 기계적 대상들이 나타나고 그 놀라운 생산력이 인간의 삶의 양상을 바꿔 놓았다. 당시 인간의 가장 중요한 필요는 물질적 필요 충족이었고 이때 존엄한 인간 존재로 행동하고 꿈꿔왔던 유토피아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본 것. 벤야민은 그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실체를 드러내는 시대를 살았다.
물질적 세계가 달라지면 예술가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예술 창조의 수단과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궁극적으로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도 바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예술이란 개념은 아우라가 몰락하는 그 순간과 더불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말속에는 애도의 감정이 있지 않을까? 마술적, 신비적 과거를 잊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가 예술 안에 있을 것이다. 아트는 예술(art)과 기술(technique)의 공통 어원인 테크네techne (기술)였다.
*마르크스의 예언적 가치가 예술 연구에 제기하는 요구
_마르크스의 두 가지 논의를 요약해 보면.
1. 자본주의가 발전될수록 무산계급 착취가 심화된다.
-> 자본은 끊임없이 재생산을 위해 잉여 자본을 투여해야 하므로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적 모순이다.
2. 하부보다 상부 변혁은 느리게 진행된다 -오늘날의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는 누적된다. 주요 상부구조적 양상이 변화될 뿐이다. 벤야민이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을 바탕으로 논문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 자본은 확대재생산되어야 하므로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은 점점 줄어든다. 이것이 사회적 노동과 사적 소유의 모순이다. 자본가가 악의적으로 분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경쟁관계가 있기 때문에 (생산비 절감) 기술 혁신을 위해 고도의 장비를 새롭게 설비해야 하므로 노동자 몫에서 경비를 지출한다. 소위 잉여 생산물에서 가져오는 것,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는 경쟁관계에서 끊임없이 집중화되고 있는 자본에 배타적으로 소유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산력 발달은 노동을 통해 발전한다. 생산력은 기술적 수준이다. 농업 중심 사회인 고대사회는 왕과 노예로, 중세는 귀족과 농노로,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그 생산력에 맞는 생산관계가 있다. 상부구조는 각자의 체계에 맞는 제도와 사상(정신)으로 구성된다. 생산관계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기술의 잉여 생산물이 분배되는 게 아니라 지배자에 의해 착취된다. 이 체제를 규율 짓는 법과 제도가 구성되고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정신 체계인 종교와 철학, 문화, 예술이 구성된다. 생산력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반면 상부구조는 하부가 바뀌어도 오랜 변화 과정을 겪는다.
오늘날에 와서는 상부구조적 성과들은 하부구조의 변화에 의해 대체되어 가는 게 아니라 누적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많다. 포스트모던적 사상은 그동안 인간의 역사를 통해 누적된 고대, 중세, 근대적 정신성이 뒤섞인 것. 최근의 신유물론은 원시적 종교인 애니미즘과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사물을 행위자로 간주하는 신유물론의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Object Oriented Ontology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모두 객체로 봄. 사물은 인간과 특정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며 그 자체로 물러나 있는 것), 도나 헤러웨이처럼 여러 정체성이 중첩된 잡종적 존재인 여성을(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사이보그(인간과 기계의 경계)로 규정하는 등 인간이 대상으로 여겼던 것들도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들. 노동 과정 속에서 신유물론, 객체지향론 등 모든 물질 대상들은 자기의 성질을 가지고 인간에게 주체로써 나타나고 행위하고 있다. 인식력은 인간만 가진 것은 아니며 동물권 뿐 아니라 사물권까지 주장. 이는 최근 상당히 매력적으로 확산되는 사유다. 오늘날 포스트주의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의해 상부구조가 대체된다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성이란 것은 항구성이 있어 중요한 위치에서 부차적 위치로 떨어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고 한다. ->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발전 과정을 통해 과거는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퇴행을 준비하고 있다.
*벤야민이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을 바탕으로 논문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1 이런 요구는 무산계급이 권력을 쥔 이후의 예술이나 심지어 계급 없는 사회의 예술에 대한 명제들보다는 현재의 생산조건에서의 예술의 발전 경향에 대한 테제들이 상응한다.
-> 맑스의 테제를 바탕으로 오늘날 기술발전으로 인한 사회 변화와 예술이 생산되는 양상과 예술 개념이 변화되는 상황에서 마르크스 이론이 탐구해야 할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 ‘허위는 그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르크스가 원한 사회는 계급 없는 사회이므로 이것을 가정해 개념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현실 상황에서, 여기서 당장 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이론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
2 이 테제들은 전승된 많은 개념들- 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 신비 등의 개념을 불식시켜버리고 있다. 이런 부류의 개념들은 만약 제어되지 않고 적용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현실의 소재를 파시스트적 취향으로 가공하게 된다.
->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 신비 등은 오늘날에도 횡횡하지만 벤야민 시대에는 잦아들기 시작한 낭만주의 예술 비평 개념이었다. 기계 복제 시대에는 불식된 개념이다. 이 개념이 허용된다면 손쉽게 예술이 정치의 심미화에 이용될 것이다. 벤야민은 기계 복제 시대에 요청되는 개념들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3 요구되는 것은 현재의 조건에서 예술 정책에서의 요청들을 정식화하는 개념들이다.
예술작품은 언제나 복제가 가능했다. 주물, 석고, 판화 등. 벤야민은 사진에 독립적 예술의 위상을 부여하기보다는 사진술이 가진 기계적 복제 능력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 즉, 기계 복제 시대 예술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이 시대의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을 위한 디딤돌로 보았다.
* 카메라 옵스큐라(암실)는 중세 시대부터 사물을 정확히 재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던 기계적 방식이다. 화가들은 외부 빛이 투사되어 거꾸로 맺힌 상을 복제해 그림을 그렸다. 인간의 두 눈은 뇌의 시지각을 통해 하나의 상으로 인식하지만 카메라 옵스큐라는 외눈박이다. 둘은 다르나 외부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는 기본적 체제가 같다. 빛에 동판을 부식하는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는 일회성을 갖는 예술이며 기술복제 시대로 넘어오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1839년 프랑스의 다게르가 발명. 초기 사진 처리 과정의 한 방식. 은판 표면에 포지티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은판사진’)
_ 1900년 경에 기술적 복제는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기술적 복제는 전통적인 예술작품 전체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고 또한 이들 작품의 작용 방식에 지극히 깊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술의 기법 사이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 사진술에서 획기적인 발전은 스냅 사진이 가능한 순간부터다.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을 스틸 이미지로 포착하는 이것이 결정적이다. 이때부터 기술 복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시지각을 뛰어넘는 어떤 상을 보여주기 시작. 벤야민은 이것을 무의식적 시지각 상이라고까지 함. 움직이는 상의 이미지가 빛을 통해 인간에게 인식되는데 빛의 정보는 인간이 받아들였지만 뇌는 빨리 반응하지 못해 보지 못한 장면을 사진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각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인간의 시지각에 중요한 변혁을 가져왔다.
1872년 릴랜드 스탠포드가 말의 네 다리가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지 내기해 머이브리지에게 촬영을 의뢰, 5년 후인 1877년 연속 촬영에 성공한다.
최초의 영화인 <열차의 도착>(50초),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해 유료로 상영. 영화 개념에 상업성이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 대중이 동시에 감각하는 이미지가 영화(에디슨이 먼저 발명했으나 1인용). 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예술작품이기에 대중적 소비를 전제로 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벤야민은 말함.
* 원작이 갖는 ‘지금- 여기’라는 특성이 그것의 진보성 개념을 형성한다.
_ 복제품이 결여하는 것은 ‘지금-여기’라는 특성, 즉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재해 있는 곳에 유일무이하게 현존해 있는 특성이 있다.
->지금은 시간성, 여기는 공간성이다. 화가의 원본은 단 하나다. 하지만 기계적 복제가 되는 순간 ‘지금 여기’는 사라진다.
_ 진본성이 관계되는 영역 전체는 (원리적으로는) 기술적 복제 가능성을 -물론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다.
->복제 가능성이 있다면 원본성은 불가능하다.
_ 역설적으로 복제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진본성에 차이와 등급을 매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목판술이 개발되었을 때 판화가 한정판이냐 무한한 복제판이냐에 따라 가치 등급이 매겨졌다. 이런 복제품의 가치를 매긴다는 생각 자체가 진본성 개념을 비로소 자각하게 만들었다는 역설.
_ 진본성은 수공업적 복제에 대해서는 완전한 권위를 유지하는 데 비해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장인이 만들었냐. 얼마나 유명하고 뛰어난 사람이 만들었냐에 따른 권위. 천재의 작품이라는 신화. (ex 신화성이 강화되며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 될수록 모나리자의 가치가 점점 더 부풀려진다)
첫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 수공업적 복제보다 훨씬 높은 자립성을 지니고 있다.
->원작 사진을 복제 즉 사진을 찍으면 작품 전체를 동일한 사이즈로 찍는 게 아니라 한 부분을 찍거나 여러 부분을 찍어 조합하거나 하는 식으로 변형적 복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복제품은 자립성을 지닌다. 그 자체로 원본을 지시하는 복제품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둘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자체로서는 도달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옮겨갈 수 있다. 특히 기술적 복제에 의해 원작은 수용자 쪽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진본성에서 ‘지금 여기’가 깨진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첫 회기부터 어렵게 느껴지네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두려워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여전히 어려워 고민 됩니다. ㅠㅠ
ㅠㅠ 목사님께 벤야민 모르는 사람에게 하듯 강의해달라고 말씀드려볼게요. 도표 같은 거도 미리 띄워놓고 설명해달라고 하고요. 노트에 쓰시는 건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목사님도 쓰시느라 정신없으시고요... 지인이 다섯 명이나 오셨는데 마지막까지 탈락 없이 그리고 모두 다음 강의 신청으로 이어질만큼 재미있고 의미있길 바래봅니다. 일단 한 주 더 힘내보자고요~
내용 정리해서 올려요. 천천히 읽어보세요. 힘내세요~
샛별님의 열정 대단함..감탄감탄...잘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