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가다림
강소국인 우리나라는 디아스포라의 경우만큼은 강대국입니다. 2년마다 통계를 발표하는 외교부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7백 1만 2천명(2013년)에 이릅니다. 그 중 상당수가 외국국적동포지만, 최근에는 재외국민도 점점 늘어나 261만 명이나 됩니다. 통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국국적동포와 러시아국적동포의 수가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최근 2년 새 고려인이 4만 1959명 감소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는데, 그간 오류를 수정한 결과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치의 하강세가 눈에 띕니다.
독일에 사는 동안 처음 고려인을 알게 되면서 피부로 느낀 것은 부지런한 한국 사람의 경우에도 가난한 나라로 떠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부자 나라로 이주한 사람은 여유 있게 살더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구소련 고려인의 경우 나라가 망한 후 너무 가난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반면에 독일에 온 사람들은 비자를 받은 당당한 노동이민자였습니다. 대부분 학력도 높고, 3년 이후를 바라보면서 힘든 광산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봄,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리서치 한다면서 카자흐스탄 알마타와 우스또베를 찾아 간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그 때 만난 동포 중에 알마타 국립고려극장 극장장 김겐나지와 공훈가수 문공자 부부를 독일로 초대하였습니다. 나중에 두 분을 초청할 마음을 품은 것은 김겐나지 씨가 우리 일행을 그 댁으로 데려 간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아내는 남편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들은 밤늦도록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김겐나지는 극장장으로서 경영상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였고, 문공자는 자기가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닌 고향 사할린 동포의 서글픈 사연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고려극장 단원들이 구소련 땅 전국으로 위문공연 다니던 고달픔과 사할린 동포들 위문공연실황을 비데오로 보면서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깊이 공감한 바 있어서, 이번에는 그들 부부를 우리가 위로하고 싶어졌습니다. 비로소 2년 후에야 성사된 초청배경입니다.
독일로 돌아온 직후 교회와 재독한인사회에서 고려인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습니다. 초청을 제안할 때에 반대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 많은 경비로 극장후원을 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역제안도 합리적인 방안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집집마다 숙식을 도우면서, 가능한 여러 지역에서 연주회를 열기로 준비하였습니다. 역시 사람은 만나서 살붙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효과만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려인 손님들은 유명한 연주자와 가수임에도 어찌나 몸가짐이 겸손하고, 심성이 착하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칭찬하며 좋아하였습니다. 십여 차례 공연을 통해 재독한인사회에 고려극장의 존재를 알리면서 후원을 요청하였는데, 기대보다 열배 이상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자고 한 동기였는데, 오히려 늦가을 을씨년스런 독일 한인공동체가 그들 덕분에 동포애란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해외동포 끼리는 서로 통하는 무엇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고려인 연예인 부부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고려인 노동요로 특송을 불렀습니다. 노래에는 나라 없는 설움과 가난으로 쫓겨난 고려인들의 삶이 배어있었는데, 메마른 광야에 물길을 내고 논농사를 지은 부지런함과 수확에 대한 감사가 느껴졌습니다.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누렇게 벼이삭/ 우거우거져 파도치지/ 에헤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왓싹 왓싹 자라나게”.
그들이 머물던 두 주간 동안 번번이 공연을 하던 가수와 기타리스트나, 듣는 한인동포이든 유학생이든지, 조국과 고향과 어머니를 떠난 비슷비슷한 처지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역지사지’라더니, 독일한인들은 구소련 고려인동포들을 이해하였고, 두 고려인도 독일동포의 서러움과 공감하였습니다. 그렇게 처지를 바꿔 생각하니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하고, 살기가 팍팍해진다는 말들 합니다. 예전 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사는 것은 맞는데, 우리는 급속히 성장하고 변화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감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함께 살아갈 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이제 탐욕의 경제를 내려놓고, 마음 속 깊이 사랑과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참! 감사를 뜻하는 러시아어 ‘블라가다림’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의미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