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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두부”
김 용 필
쫒는 자와 쫒기는 자, 형사와 범인은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관계이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면 안 된다. 죄는 징벌하되 인격을 모욕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죄는 행위에 대한 위법이지만 모욕과 학대는 존엄한 인간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죄값에 인권을 복속시켜 다루어선 안 되는 것이다.
김형사는 범인에게 무슨 인격이 있느냐며 죄인을 무자비하게 학대하였다. 공공질서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인들은 강력한 법으로 얽어매어 세상과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관으로 표독스럽게 죄인을 취조 하였다. 이에 많은 범인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 박인수도 그렇게 당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반성이나 후회 같은건 없었다. 그 모든 것은 김형사가 만든 법의 굴레이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당신이 죄 값으로 내 인격을 모독한다면 난 당신을 죽일 것이다.’
범인 박인수가 김형사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김형사는 모질게 사건이 날 때마다 그를 윽박지르고 구타하면서 죄를 자백 받아 감옥소로 보냈다.
“이젠 그만해라. 미친 새끼야. 들랑날랑, 감방이 너의 집 안방이라도 되느냐?”
“그래요. 감방이 안방만큼 편해요.”
“이번이 마지막이다. 조용히 몇 년 살고 나와.”
“악속한거예요. 살다 나오면 과거를 청산해 주는 거죠?”
“그럼. 걱정 말고 들어가기나 해.”
초범부터 재범 때 까지 늘 하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박인수는 출소하자마자 사고를 치곤 하였다. 김형사는 유사한 사고가 날 때면 그를 의심하고 그를 쫓아 다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며 끈질기게 쫒고 쫒기는 악연으로 살아왔다. 인수는 전과 3범이다. 그는 김형사가 자기 인생에 끼어들면서 만진창이가 되어버렸다고 울분했다. 김형사는 그와 같은 사악한 범죄인은 이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그를 집어넣었고 박인수는 집요하게 그를 응징 보복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어색한 관계 속에 끼어든 것은 4년 전 교정 교육차 서울 교도소에서 인수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재소자 갱생 교육 봉사를 갔다가 만난 것이다. 그는 절도죄로 수감된 21세의 전과범이었다. 강상우 교도관은 애정을 가지고 인수를 보호하며 내게 상담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난 그를 만나 정기적인 갱생 교육을 시켰이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어머닌 어린 그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심성이 착한 청년이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씩 교도소를 찾아가서 재소자 갱생 상담을 하였다.
“선생님, 제가 지은 죄는 법의 굴레 안에서는 달게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굴레 밖의 내 인격을 모독한 과잉 징벌은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합니까?”
“누가 죄 아닌 것으로 박인수씨를 모독 한단 말이요?”
“김형사가 내 죄보다 과장된 수사 기록으로 나를 괴롭혀요. 그자는 나의 약점을 이용하여 죄보다 큰 벌을 받게 만들어요. 언젠가는 응징할겁니다.”
“그건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권한이라 법적인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칼을 든 자의 권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죄수는 막 대해도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 의미가 아니죠. 고백하지 않으니까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선생님, 그 이야긴 그만하고요. 제가 죗값을 치루고 사회에 나가면 제 스스로 살아 갈수 있을까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럼요. 구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어요. 자기 적성에 맞는 일자릴 찾을 수 도 있고요. 그 길을 찾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어요.”
“나 같은 범죄자도 벌어먹고 살길이 많다는 말씀이군요?”
그는 힘없이 내 말을 뇌아렸다. 그것은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절망의 모습이었다.
“아무 생각 말고 교도소에서 가르치는 직업 교육에 열중해요.”
“걱정 말아요. 죄값을 받고 세상에 나가면 정직하게 잘 살아갈 것 입니다.”
“출소하면 나를 찾아와요.”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천사 같은 분이시고 어머니 같은 분이셔요.”
언제나 그를 상담하고 나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곱고 선하게 생겨 외모론 절대 범죄 같은 것은 저지르지 않을 청년이었다. 그는 자길 감옥소에 넣은 김형사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 청춘을 망쳤기에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복수의 형극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도소에서 재소자 갱생교육에 참여한 것은 ‘생명복지재단’ 회장이란 직함 때문이었다. 재단설립 목적이 그렇듯이 우리 사회의 어둡고 약한 자를 돕고 봉사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것이 아니고 뜻있는 지인들의 협조와 도움으로 생명복지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난 내가 벌이고 있는 사회봉사 활동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 그들이 소외받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그런 내 의지와 노력이 작은 빛으로 그들의 생에 밝은 빛이 되길 바라며 내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내가 돕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인 약자인 장애인, 독거노인, 출소 전과자, 능력 없는 다문화가족, 병약자와 노숙자들이었다.
처음 여자의 몸으로 사회봉사 일을 하게 된 것은 남편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한 경력이 이 일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여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빚쟁이 등살에 못 이겨 감옥소로 갔고 형을 살다가 억울함을 삭이지 못해 그만 자살을 해버렸다. 그런 연유 때문에 난 재소자의 고통을 알았고 마침내 약자 편에서 봉사하는 복지재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감옥소엔 양심에 오물과 때로 더럽혀진 사람들이 갇혀 있다. 이들의 마음엔 더러운 증오가 도사려 있다는 선입견으로 모두 꺼려한다. 그래서 교도소는 이들을 격리시켜 마음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다시는 더러운 구렁텅이 인생을 살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난 이들의 상처받은 가슴을 치유하는 조력자로 교도소를 자주 출입하며 죄수 상담을 하고 있었다. 시작 땐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들이 마음을 열면서 상담이 쉬웠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지능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더욱 필요한 사람들에게 미력하지만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날로 험악해 가고 있었다. 뉴스나 신문의 사회면 기사를 보면 범죄가 주 메뉴로 등장한다. 모자람을 충족하려는 몸부림이 욕구불만으로 표출하는 병리 현상이 범죄로 나타난다. 욕구불만은 계획적이거나 우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범죄의 저변엔 원한과 갈등, 돈과 치정에 얽힌 형상이 살인, 상해, 절도, 강도, 사기사건들이 흉악한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살기가 힘들수록 상대적인 박탈감이 범죄로 나타나는 같다. 게다가 청소년 범죄까지 어느 한 곳 안전지대가 없었다.
범죄를 막으려는 정부와 사회 각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날로 늘어나는 범죄는 우리 사회의 크나큰 난제였다. 교도소는 만원 상태에서 범죄인을 다스리는 행정은 끝이 안 보이는 난맥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상이 복잡해 질수록 신형 범죄가 양출되고 범죄인을 보듬지 못하는 시류 때문에 출소자가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들어오는 현상이 안타깝다. 어떻게 법으로 갱신 받은 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니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우리 사회의 모순이다. 도둑질 하는 놈은 먹고 살기 힘드니까 습관적으로 절도를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교도소는 범인을 교도하는 곳이 아니고 범죄를 재교육 시키는 곳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출소자 재활교육 부재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출소자들이 다시는 교도소를 찾지 않는 사회 재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였다.
지친 오후였다. 난 창밖을 바라보며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한용아 선생님, 박인수 알죠? 박인수가 곧 출소를 한답니다.”
강상우 교도관이 알려왔다. 사실 인수를 만난 후 다른 재소자 갱생교도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벌써 만기가 되었어요?”
“그가 선생님을 찾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가서 만나겠습니다.”
반가운 일이었다. 난 두부 가게에 가서 두부 한판을 사서 얼음에 재여 가지고 택시를 타고 교도소로 갔다. 시간이 있을 땐 내가 손수 두부를 만들어 갔는데 콩을 불릴 시간이 없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내가 교도소에 갔을 때 그는 깔끔한 복장으로 출소 대를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고 달려왔다. 가지고 온 두부를 내밀었다. 그는 미소를 띠며 맛있게 두부 2모를 먹어 치웠다.
“어디 갈 데가 있나요?”
“없어요.”
“그럼, 우리 집으로 가요. 쉬면서 거처할 곳과 일자릴 찾아봅시다.”
“아닙니다. 우선 아버지 산소에 가보고 외할머닐 찾아 갈 것 입니다.”
“그렇담 그래요. 그리고 일자리가 없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요. 내가 일자릴 마련해 줄게요.”
“이젠 남의 신세 지는 일은 안할 겁니다. 고마웠어요. 이 인사는 꼭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세상에 오직 한분, 나를 이해해 주는 분이셨어요. 은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인사를 남기고 그는 택시를 타고 떠났다.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그가 먹고 남은 두부 판을 싸들고 교도소를 나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출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두부를 싸들고 교도소를 찾았다. 언제부터인지 재소자가 출소할 때 두부를 먹는 습관이 생겼다. 두부는 고단백 식재로 지친 몸의 활력을 보충해 주는 뜻일 것이다.
두부는 콩속의 단백질을 간수로 응고시켜 만든 식품이다. 지금은 누구나 시장에서 사다가 먹지만 옛날엔 보통 가정에선 손수 만들어 먹었다. 손이 번거로워 보통 때는 만들어 먹을 수 없었고 명절 때만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난 두부 만드는데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콩을 2배 정도의 물에 12시간 담가 불려서 맷돌이나 믹서로 곱게 갈아서 끓인다. 눌지 않도록 계속 잘 저으면서 끓여서 체에 면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콩물을 부어주면 면보자기 사이로 콩물이 떨어진다. 이 콩물에 간수를 골고루 뿌려 다시 끓여 응결이 생기면 맷돌로 꾹 눌러 물을 빼내고 나면 두부가 응고된다. 그리고 보속에 남아 있는 비지는 보통 사료로 쓰지만 이것을 비지찌게로 해 먹으면 별미다. 비지를 뺀 콩물을 응고시켜 물과 같이 먹는 것을 순두부라고 한다.
아무튼 출소자에게 두부를 먹이는 이유는 고단백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 이기도 하고 두부는 정갈한 식재라서 두부처럼 깨끗하고 하얗고 순수하게 살라는 의미도 있다. 난 인수가 두부처럼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살기를 빌었다. 그뿐 아니라 늘 출소자를 보면 안쓰럽고 가엾은 마음이 든다. 그릇되고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교도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들을 깨우쳐 다시 세상에 보낼 땐 순수한 사람 그 자체이다.
그렇게 교도소는 법과 교도관의 노력으로 사람을 바르게 만든다. 항상 출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교도된 순수함으로 잘 살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무겁게 가슴을 억누른다. 무지한 짐승도 반복 가르치면로 행동의 변이를 일으켜 습관처럼 바꿀 수가 있다. 그러나 고지능의 사람을 가르치고 이끈다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가치관이 다르고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심을 가지고 났다는 성악설과 처음부터 착하고 선하게 태어났는데 환경이 사람을 악하게 만들었다는 성선설은 다른 것 같지만 일의 결과론에서 마찬가지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악한 사람도 선하게 되고 선한 사람도 악한 환경에 처하면 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정은 무시하고 나쁘게 된 결과만 가지고 말할 땐 성악설과 성선설은 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악하고 선하길 떠나서 범죄는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대부분 범죄는 계획 된 부도덕한 사고와 무지의 판단에서 일어난다. 바로 부도덕적인 범죄나 무지에서 오는 범죄를 막자는 것이다. 부도덕적인 범죄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양심을 속이는 것이지만 무지에서 오는 범죄는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어지기에 교도가 쉽다. 어쨌건 판단부족의 무지로 인해 한번 교도소를 다녀간 사람은 다시 교도소에 오지 못하도록 재활 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재소자들을 대해 보면 범죄인이 된 사유엔 생각의 오판에서 오는 범죄가 많았다. 사람은 각기 다른 인생이 있고 사정이 있으며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 그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하지 못하는 생각이 사고와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19세기의 산업화로 물질 만능이 일상화되면서 인간 상실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 계몽 사상가들은 도구주의의 병리 현상을 인간 중심으로 개혁 하려고 기존의 제도에서 이탈하고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난 그때 사회 계몽가들이 추구했던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가 없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이상 사회라는 주장이었다.
김형사가 나를 찾아왔다.
“한 선생님, 박인수가 또 사고를 쳤어요.”
“뭐라고요? 어제 출소한 사람이 무슨 사고를 쳐요?”
“강도짓을 했어요. 바로 출소한 다음 날에 범죄를 저질렀어요. 그래서 내가 뭐랬습니까? 그놈은 구제불능이니 관심을 끊으라고 했잖아요. 범법을 습관처럼 하는 놈이였어요.”
“김형사님은 왜 꼭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사실이니까요. 형사의 직업관이랄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번 범죄를 저지르면 평생 죄를 짓고 살아요. 박인수도 그런 놈이예요.”
“인수가 그럴리가 없어요. 고향의 아버지 산소에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서 했어요.”
“그 말을 믿어요. 어떻든 출소 하루 만에 또 범죄를 일으켰어요. 천생이 악한 놈이 라고요.”
“제발 그를 흉악범으로 몰지 말아요. 대체 어떤 범죄를 일으켰나요?”
“외딴 할머니 식당에서 무전취식하고 강도까지 했답니다.”
“강도짓을?”
“그래서 내가 온 것은 박인수가 선생님께 연락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서......”
“연락이 없었습니다.”
“오겠죠. 연락 오면 직각 알려주세요. 그리고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그자가 강간......어떤 짓을 할지모릅니다.”
김형사는 상황을 들려주었다. 출소하고 서울 변두리 할머니 혼자 경영하는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였다. 할머닌 오랜 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반가워서 원하는 식사를 성심껏 차려 내놓았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소주까지 마셨다.
“할머니, 밥값은 없으니 다음에 와서 갚겠소.”
“뭐라. 밥값도 없는 놈이 비싼 고기 안주를 시켜 먹어?”
“절대 밥값은 안 떼어 먹겠소. 그리고 감옥소에서 막 나와 고향에 갈 차비가 없어서 그러니 5만원 만 빌려주시오.”
“뭐라? 밥값도 안내는 놈이 5만원을 빌려 달라고, 이런 강도가 있나? 경찰을 부를 거야.”
라고 고함을 치자 박인수는 부엌 칼을 집어 들고 할머니 목에 대고 협박 하였다.
“난 교도소에서 나와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놈이요. 돈 있는 대로 내 놓으시오.”
놀란 할머닌 주머니를 내주었다. 주머니에 십여 만원이 있었다. 그는 돈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할머닌 신고를 했고 경찰은 그가 어제 출소 했다는 점에서 박인수 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 사건이 박인수를 잘 아는 김형사에게 넘어갔다. 김형사가 수사를 자청 하였던 것이다.
정말 더러운 인연이었다. 초범 때 인수를 잡아넣은 것도 김형사였고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를 때도 김형사에게 잡혔다. 그런데 다시 그가 그 사건을 맡은 것이다. 마치 두 사람은 전생에 무슨 원수진 일이 있는 것처럼 악연의 끈으로 맺혀 있었다. 그런데 출소하고 찾아간 곳이 술집이었고 술집 계집과 연애 하느냐고 교도소에서 번 돈을 다 날린 것이다.
정말 서글픈 일이었다. 어떻게 교도소를 나온 다음 날 범죄를 저지른단 말인가? 그동안 그에게 들인 노력의 대가가 겨우 이거란 생각에 배신감이 들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김형사가 그를 잡았다고 전화를 하였다. “한 선생님, 박인수를 잡았습니다. 경찰서에 있으니 한번 만나보시오.”
“알겠습니다.”
난 다시 경찰서로 면회를 갔다.
우린 유리벽을 두고 마주앉았다.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를 볼 면목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표정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난 힘들게 입을 열었다.
“다시는 이런 곳에서 안 볼 줄 알았는데 또 보는군요.”
“운이 나빴습니다. 선생님, 나를 위해 어떤 말도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을 뵙기가 두렵습니다.”
“알겠어요. 아무튼 내가 힘닿는 데까지 감형 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죄송해요. 배가 고파서 그만 실수를 했답니다.”
“나를 찾아오지 그랬어요. 강도짓을 했으니 어떻게 해요?”
“그런데 강도짓은 안 했습니다.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순순히 돈을 빌려줬어요. 할머니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그런데 김형사가 얽어 만들었어요.”
“뭐라고? 김형사가.......?”
“이놈은 내가 죄짓길 바라는 놈이에요.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는 일어났다. 면회소를 나와 김형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포기하세요. 개전의 정이 없는 놈입니다. 그 자식 절대 개가천생 할 놈이 아닙니다. 아마 이번엔 높은 형을 받을 것 입니다.”
“김형사님, 박인수씨는 강도짓을 안했습니다. 왜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요?”
“말 삼가세요. 내가 범죄를 조작 했다는 뜻인가요? 그자의 말을 믿어요?”
“네, 칼로 위협하고 돈을 빼앗은 강도짓 안했는데 형사님이.......”
“선생님, 지금 선생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세요? 공권침해, 업무방해예요.”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밥값을 안낸 것은 사실이에요. 돈을 빼앗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할머니가 그를 동정했어요.”
“헛소리 말아요. 그는 칼로 강도짓을 하고 돈을 빼앗았어요.”
그길로 난 밥집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닌 내가 묻는 말에 시종일관 침묵이었다. 김형사가 단속을 해둔 것이다. 용서해 달라고 했더니 법이 판단할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만 하였다. 마침내 인수는 검찰에 송치 되었다. 난 담당 검사를 찾아가서 사실을 고하고 선처를 빌었다. 검사는 경찰의 조서를 거부할 수 없다며 최대한의 호의만 베풀 수 있다고 하였다.
재판 일이었다. 박인수씨는 3년형을 받았다.
“봐요. 그놈은 악질 범이라니까요.”
김형사가 빈정대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치안을 다스리는 경찰이 아니고 사회악을 만드는 치한입니다.”
라고 내 뱉었다.
“그 말에 후회할 겁니다.”
“고발하세요. 난 당신을 증오합니다. 비리를 밝히고 말겁니다.”
그가 감옥소로 떠난 후 난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말았다. 남편이 그리웠다. 감옥에서 죽은 남편이 생각났다. 남편도 그렇게 억울하게 당했다. 남편의 사업은 놀랄 만큼 잘 되었고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불행이 다가온 것은 정권이 바뀌면서였다. 전 정권에 줄을 댓다는 괘씸죄를 걸어 남편의 사업을 방해하였다. 세무 조사등 피말림으로 사업은 위기에 봉착했고 마침내 엄청난 데미지로 회사가 파산에 이루러 청산을 하게 되었고 남은 것은 엄청난 빚이었다. 빚을 청산 못하고 남편은 가출을 해버렸다. 대신 가족들은 빚 독촉에 고통을 받았다. 난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에 욕설을 퍼부었다. 집을 나간 지 1년 만에 경찰서에서 소식이 왔다.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가 잡혀 왔다는 것이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은 마를 대로 마르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여보, 미안해, 당신을 볼 면목이 없구려.”
“차라리 도망가지 말고 처음부터 감방이나 갈 것이지, 이 꼴이 뭡니까?”
“미안해. 미안해요.”
남편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기죄로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억울한 죄값에 분개하더니 수감 1년 만에 자살을 해버렸다.
오늘도 교도 갱생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강상우 교도관이 퇴근을 하면서 나를 불렀다.
“한 선생님, 우리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좋습니다. 나도 쓸쓸한 참이었거든요.”
그는 내가 교도소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난 강 교도관을 따라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맡겨 논 술 가지고 와요. 안주는 기름진 걸로 하고요.”
서비스 걸이 기름진 안주에 고량주를 들고 나왔다. 술은 ‘마오타주’란 고급 중국 백주였다. 내가 알기로는 마오타주는 중국 최고 술이고 값도 만만찮았다.
“한 선생님, 이 술은 중국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보낸 것인데 좋은 술이래요.”
“알고 있습니다. 마오타주, 좋은 술이죠.”
“혼자 마시기 아까워서 한 선생님과 마시려고 맡겨뒀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는 내게 마오타주를 따라주었다. 우린 잔을 부딪치고 쭉 들이켰다.
“비싼 술이라서 역시 좋군요.”
그는 ‘귀주 마오타주’ 술에 관한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가 ‘귀주 마오타주’를 좋아하는 것은 그 술병 안에 들어있는 용 때문이란다. 유리 병 안에 유리로 조각된 용이 들어 있었다. 알코올이 용의 몸 안에 있는 진액을 빼낸다는 뜻이었다. 용의 진액을 빼냈으니 얼마나 귀한 술인가, 그런데 그의 덧말이 재미있었다.
“난 저 병속에 든 알코올입니다. 저 용은 죄를 지은 죄인이고요. 그래서 난 그들의 몸에 낀 때를 벗긴답니다.”
라고 말하고 웃었다. 난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알코올로 더러운 용의 살과 비늘 속에 꼬인 오물과 대를 깨끗이 씻어 낸 다는 것이었다. 교도관이란 오염된 세상에서 물든 죄수들의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교정하여 세상에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난 그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정말 훌륭한 교도관이었다. 세상에 이런 분이 많다면 세상엔 죄인이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알코올이 더러운 용의 몸을 씻어 내는 군요.”
“비늘 속까지 말입니다. 한 선생님, 난 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소외받은 사람 편에 선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훌륭한 일입니다. 한 선생님도 마오타주 같은 분이십니다.”
“강 교도관이야말로 수정방 안의 고량주 같은 존재로 더러운 용의 비늘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공직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씻어 보내면 뭐 합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다시 들어오는데......인간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막장으로 내닿은 그들이 가엾어서 못 견디겠어요. 새 인간으로 만들어 사회로 내보냈는데 사회에 적응 못하고 다시 감옥소로 돌아오는 죄수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출소하여 1년이 못 되어 거의 60%가 재범으로 다시 감옥소로 온다고요. 왜 그들이 다시 범죄를 짓고 감옥소로 오느냐고요?”
라고 그는 울분을 토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보듬지 못해서 그럽니다.”
“25년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죄수를 가르쳐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르게 사는 녀석이 거의 없었어요. 글쎄 구치소나 교도소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천국이래요.”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됩니다.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야, 공무상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한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왜 그들을 그런 일을 자처하십니까?”
“그들의 인생이 불쌍해서죠.”
“선생님이야 말로 이 시대의 성모마리아 입니다.”
그는 마오타주 병속에 들어있는 용을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박인수 생각이 났다. 5년형을 받고 청송교도소에 가 있었다. 난 곧장 청송으로 내려갔다. 면회를 신청했는데 그는 신청자 성함을 확인하고 면회를 거부하였다. 교도관의 배려로 그는 마지못해 내 앞에 섰다. 그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항상 그랬듯이 고갤 숙여버렸다.
“건강은 어때요?”
“보시다시피 건강합니다. 제발 날 좀 놔주세요. 왜 내가 싫다는데 쫓아다니세요.”
“난 박인수씨를 좋아하니까요.”
“싫습니다, 차라리 욕이라도 하세요.”
“욕하고 있어요. 아직 내가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어요.”
“선생님의 공자님 같은 말. 귓전에도 안 들려요. 왜 인지 아세요. 선생님 말씀과 내가 보는 세상은 달라요. 그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예요.”
“귀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귀를 여세요.”
“듣기 싫어요. 감방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요. 출소하면 한탕 멋지게 쳐서 잘 살겠다는 모의를 하고 있어요. 우리 같은 죄수들은 질시, 냉대, 시선, 혐오감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 발붙이고 살아 갈 공간이 없으니까요.”
“박인수씨,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요?”
“이것이 저의 본 모습 입니다. 배가 고파서 절도를 했어요. 그런데 법은 악질 범으로 몰아서 가뒀어요. 내가 구치소에 온 초범의 죄가 뭔지 아세요? 단순한 밥도둑이었어요. 배고픈 죄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 못해 벌인 밥도둑 죄를 김형사란 놈이 중죄인으로 몰았어요. 그래서 2차, 3차는 더 강하고 큰 죄를 저질렀던 겁니다. 이번에 들어온 것도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김형사란 놈.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놈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내 인생에 태클을 걸어요. 그런데 가만히 당하라고요?”
“그분은 경찰이예요. 범인 잡는 경찰, 업무상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임무니까요.”
“할머니에게 내가 칼을 들었나 물어봤어요?”
“사실은 할머니가 말을 안 해요.”
“그것 보세요, 세상이 다 그렇다니까요. 김형사 놈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선생님, 저잘 지낼 테니 찾아 오지마세요.”
“알겠어요. 출소하면 연락해요.”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다. 그러나 그 눈빛이 슬펐다. 그 눈빛 속에 서린 어떤 증오와 끓는 울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쓸쓸했다. 범죄인과 교도상담사.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관계다. 법이 죄를 교도하는데 무슨 갱생 상담이 필요 하느냐고 혹자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대화자가 필요하다. 가슴을 열고 진실을 말하고 싶은데 누구하나 그 진실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냉혹한 법에 휘둘려 상처받은 그들에게 인간적인 따사한 동정이 필요하지만 누구하나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반발심리, 그로 인하여 많은 죄수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전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법이란 범죄를 막는 것이 아니고 범죄를 키우는 격이 되어버렸다.
감옥소란 자유를 구속하는 곳이지만 냉혹한 사회보다는 이곳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죄수들이 많다. 동안 수많은 재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면담을 하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불러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은 나의 진실을 곧대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말이 그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절대 격리만으론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발걸음이 점점 무겁다. 집에 갔더니 희숙이가 와 있었다. 소희숙 그녀는 5년형을 마치고 막 출소한 32살의 아가씨다. 그녀 역시 교도소에서 만났다. 절도 3범의 중형을 받고 나왔다.
“어떻게 살거예요?”
“섬으로 가려고 합니다.”
“섬?”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섬에 가서 살렵니다.”
“섬에 가서 뭘 벌어먹고 살아요?”
“조개를 파먹고 살죠 뭐.”
“내가 일자리 한번 알아볼까요?”
“아닙니다. 거처할 곳도 없어요. 남해의 작은 섬에 이모가 살고 있어요. 이모 집으로 가려고요.”
“그래요. 이제는 바르게 삽시다. 나 박인수 면회 갔다 왔어요. 몹시 힘든가봐요.”
“그랬군요. 나도 딱하지만 그앤 너무 안 됐어요. 정말 천성이 고운 아이인데. 김형사란 놈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요. 빵집에서 빵 하나 훔쳐 먹었다고 구치소로 보냈어요. 그냥 놓아줄 작은 죄를 크게 만들어 보냈어요.”
“남을 원망하지 말아요. 왜 자기가 지은 죄를 남의 탓으로 돌려요? 김형사는 자기직분을 다할 뿐이예요.”
“되로 받을 죄를 말로 받게 하는 놈인걸요. 김형사, 언젠가는 인수에게 보복을 당할거에요.”
“그런 소리 말아요.”
“선생님. 동안 고마웠어요. 절대 전 다시는 감옥소에 안갑니다.”
“희숙씨. 내가 선도하는 죄수들이 다 희숙씨 같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네. 실망하지 않도록 잘살 겁니다. 그리고 인수 걱정 말아요. 잘 적응할 놈입니다.”
희숙은 출소 후에 남해 바다로 떠났다. 오늘 교도소에 상담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김형사를 만났다. 의협심과 출세욕이 강한 형사였다. 그는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경찰이었다. 그에게 어떤 사건이건 걸려들기만 하면 척척 해결 해 내는 베터랑 형사다. 그런데 죄수들의 말을 들으며 그는 사건을 얽어매는데 명수라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귀신같이 법인을 잡아내고 그 범인에게 더 큰 죄를 뒤집어씌워 벌을 받게 하는 경찰이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선생님, 박인수가 석방되었답니다.”
“벌써, 형기를 마쳤나요?”
“모범수라 특별 사면을 받았나봐요.”
“잘했군요.”
“그런데 그놈 말에요. 갈 곳이 없어요. 곧 다시 들어올걸요. 그러니 선생님이 잘 보살펴 주세요.”
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내게 무슨 덩텡이를 씌우려고요? 김형사님, 제발 인수를 그런 눈으로 보지마세요.”
“알잖아요. 출소 하루 만에 들어온 놈이잖아요.”
“그건 김형사님이......”
엮어 만든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 그런 악질 누범을 옹호해요. 그놈은 언젠가는 선생님의 등을 칠 놈이라고요.”
“내가 아는 인수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두고 보세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라니까요.”
김형사는 마치 그가 다시 교도소로 오길 기다리는 말투였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화가 났다. 갑자기 강상우 교도관의 말이 생각났다.
‘오물에 찌든 죄인을 깨끗하게 씻어 내 보냈는데 출소한지 1년을 채 못 채우고 돌아오는 녀석들이 안타까워 못 견디겠어요.’ 그런데 그는 정이 떨어지게 잡아드리기만 하는 형사였다. 강교도관 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수는 출소한 후 다시 검찰에 걸려들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심으론 반가웠으나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던가. 연락도 할만도 한데 그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 내심으론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동안 녀석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녀석은 연락조차 안하고 어디론가 떠났던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은혜를 모르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오늘도 나의 생명복지 재단에 출소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사회적인 약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희망을 찾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교도소에서 잘 가르쳐 보내지만 사회는 다시 그들을 더럽게 물 드린다는 강 교도관님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이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을 따뜻하게 돌봐주고 있었다. 이런 일이야 말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하는 갱생 교육이었다.
김형사가 또 전화를 걸어 왔다. 심심하면 거는 버릇이 있었다.
“선생님, 인수 소식 들었나요?”
“아닙니다. 아직도 인수를 미행 하나요?”
“미행이라뇨. 그놈이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
“뭐라고요?”
“그놈이 나를 찾아와서 폭행하고 달아났어요.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몰라요?”
“폭행을 했다고요?”
“네, 그놈이 나를 구덩이에 파묻으려고 했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그놈을 잡으면 평생 콩밥을 먹게 할 겁니다.”
“제발 그를 건드리지 말아요. 자유롭게 잘 살게 내버려 두란 말입니다.”
“그놈이 나를 땅속에 매장시키려고 했다고요.”
“믿을 수 없어요.”
김형사는 늘 이랬다. 인정머리라곤 눈 씻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비정한 사내였다. 아무튼 인수가 어딘가에서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을 했는데 다시 사고를 쳤다니 걱정이었다. 김형사를 폭행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형을 받을 텐데.......
그런 어느 날 남해로 간 희숙이 연락을 하였다.
“선생님, 남도에 한번 다녀가세요.”
난 인수 소식도 전할 겸 남해로 내려갔다. 희숙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녀는 여수의 초도라는 섬에서 ‘베도라치’ 라는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주 메뉴는 꼬시래기 국수(냉면)와 꼬시래기 두부 회무침, 베도라치 탕을 팔고 있었다. 베도라치는 꼬시래기 해초를 먹고 사는 못생긴 미꾸라지 같은 고기인데 회와 탕으로 먹으며 죽여준다는 것이다.
외딴섬인데도 베도라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속살을 얇게 떠서 말아 논 베도라치 회와 얼큰한 매운탕에 고량주까지 곁들인 근사한 술상을 내 놓았다.
“선생님, 한잔 받으세요.”
그녀는 내잔을 채워 올렸다.
“사업이 잘 되나봅니다.”
“베도라치 회와 탕을 먹으려고 육지에서 손님들이 많이 와요.”
“음식을 잘 하나봐요.”
“세상에 없는 귀한 식재에 탕 맛을 즐기려고 오는거예요.”
난 잔을 비우고 베도라치 회를 입안에 넣었다. 마치 복어 회같이 씹히는 맛이 일미였다.
“베도라치라고 했나요?”
“네, 귀한 횟감입니다. 베도라치 탕도 드셔 보셔요. 간 해독 숙취엔 최고래요.”
역시 베도라치 매운탕은 어느 매운탕에도 비길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린 주거지 맞거니 잔을 몇 번 돌렸다.
“정말 희숙씨를 보니 보람을 느껴요. 이렇게 성공한 삶을 살다니 고마워요.”
“제가 고마운걸요. 선생님은 내 인생의 멘토입니다. 평생 받들고 살 겁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외로운 소녀였다. 고아로 태어난 그녀는 살기가 힘들어 절도를 하였고 출소 후에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 전과자로 살았는데 나를 만나 획기적인 인생 전환을 한 것이다. 난 많은 죄수 중에서 그녀와 인수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선생님, 반가운 사람이 또 있어요. 놀라진 마세요.”
그때였다. 냉면과 두부 무침을 쟁반에 들고 오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가지고 온 냉면과 두부 무침을 내 앞에 내려놓고 엎드려 큰절을 하였다.
“선생님, 저 박인수 입니다.”
“박인수씨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선생님, 인수는 저의 남편입니다.”
“뭐라고요? 두분이 부부라고...... 그런데 왜 말을 안했어요?”
“먹고 살기가 바빠서요. 그보단 놀라게 해드리려고요.”
“언제 부부가 되었어요?”
“인수가 출소하는 날 내가 불렀어요. 그리고 내 사업을 도왔고 번개불에 콩볶듯이결혼을 하고 살아요.”
“뭐요? 번개처럼......”
연상의 여인이었다. 난 그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언제 다시 교도소로 돌아오나 설마설마 걱정 했고 출소 후 연락을 안 한다고 원망도 했는데 인수는 바르게 살고 있었다. 그를 이곳에 끌어드린 것은 희숙이었다.
“선생님, 이건 제가 개발한 국수입니다. 꼬시래기 국수라고 해요.”
“꼬시래기 국수, 콩 냉면이잖아요.”
“아닙니다. 이건 꼬시래기 란 해초인데 삶으면 국수발처럼 돼요. 그것에 콩물을 부어 콩국수로 먹지요.”
난 꼬시래기 국수를 한입에 넣어봤다. 맛이 냉면과 흡사했다.
“맛이 좋아요. 이걸 인수씨가 개발했다고......?”
“네, 또 있어요.”
그는 꼬시래기 두부 무침을 내놨다.
“두무 부침. 모두 두부와 연관한 식품이군요.”
“네, 선생님이 출소 할 때마다 사온 두부를 보고 내가 고안했어요.”
꼬시래기 두부 무침은 꼬시래기 해초에 두부를 으깨 넣고 베도라치 살을 넣고 무친 물회 같은 것이었다. 맛이 일품이었다.
“베도라치 회와 탕은 제가 개발했고요. 꼬시래기 국수와 꼬시래기 두부 무침은 인수가 개발했어요. 모두 선생님이 먹여준 두부에서 아이템을 구했어요.”
“두부를 자주 먹더니 두부 음식을 개발했군요.”
“네 선생님. 마음껏 드십시오.”
인수와 희숙의 식당은 장사가 잘 되었다. 꼬시래기와 베도라치는 인수와 희숙 자신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일거양득, 베도라치는 꼬시래기 해초를 먹고 자라기에 꼬시래기 밭에 베도라치가 많다는 것이다. 꼬시래기를 거두면 반듯이 베도라치를 잡을 수 있었다. 그들도 그런 공생관계처럼 부부애로 산다는 것이다.
순두부 베도라치 찜이 유난히 먹음직스러웠다. 순두부 속에 깊이 베도라치를 넣어 찜한 것이다. 마치 두부 속에 미꾸라지를 넣어 만든 찜과 같은 것인데 어찌나 맛이 좋던지, 인수는 자신의 모습을 두부 베도라치로 표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조용히 인수를 불렀다.
“정말 김형사를 죽이려고 했나요?”
“네, 구덩이에게 매장을 시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김형사가 전화를 했더군요.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해요.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정말 죽이려다가 살려뒀어요. 난 그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고 있어요.”
“박인수씨. 무슨 소리예요. 제발 감옥소엔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절대 다신 감옥엔 안갑니다. 맹서해요. 그러나 김형사는 평생 내가 짓밟고 살 겁니다. 말 안 듣고 까불면 감옥에 보낼 거예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는 김형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한 대접을 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기분이 몹시 좋다. 인생을 범죄로 끝낼 것 같은 그들이 재활로 성공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 후 인수와 희숙은 우리 복지재단의 기부천사가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변한다.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쓰레기로 여겼던 사람들도 환경에 따라 변한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타인에 의해서 변할 수 있다. 심약한 사람에겐 누군가의 작은 힘이 변화에 힘을 주는 것이다. 공은 들인 대로 배가되고 죄는 지은 대로 받는다.
김형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인수를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꼭 할 말이 있거든요.”
“모릅니다.”
“지금 이 말을 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아서요.”
“내가 알바는 아니죠.”
“선생님, 아직도 저를 증오하나요? 형사가 범인을 체포하는데 혐의자를 취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요.”
“그렇다고 의심만으로 죄 없는 사람을 취조하면 안 되죠.”
“박인수가 그것 때문에 내게 원한이 많은 모양인데 아무튼 용서를 빌라고요.”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비십시오.”
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뭔가 다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답지 않은 전화였다.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그는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전과자에게 혐의를 씌우고 주변 사람을 괴롭혔다. 물론 경찰은 강력사건이 나면 초등수사로 동일 사범의 전과자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를 하는 것은 관례였다. 수사 결과 혐의가 없으며 석방하겠지만 조사를 받는 본인에겐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다.
며칠 후 아침에 신문 기사를 보고 깜작 놀랐다. 선량한 시민을 전과자로 만든 악질 경찰에 관한 기사였다. 수사 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사건을 조작하여 범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경찰의 잘못 된 수사로 인하여 무고한 양민이 수십 번 옥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김형사가 박인수를 그렇게 죄인으로 만들어 넣는 바람에 박인수는 평생 범인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박인수가 아닌 김형사 자신의 고백으로 밝혀졌다.
난 초도의 희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인수씨 어디 있어요?”
“선생님, 김형사가 와서 인수를 데리고 갔어요.”
“김형사가......무슨 일이 있었어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네, 두 사람이 해변에서 심하게 싸웠어요. 그리고 배를 타고 섬을 나갔어요.”
“김형사가 박인수를 데리고 갔단 말이죠?”
“네,”
“그럼 박인수씨가 김형사를 어떻게 한 것이 아닐까요? 복수 같은 것......?”
“글쎄요? 답답해 죽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분명히 무슨 일이 난 것이다. 박인수가 김형사를 어딘 가에 구금하고 압력을 가하여 진실을 고백케 한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선생님, 김형사가 인수의 인생을 망친 것은 사실입니다.”
“박인수씨가 김형사에게 복수를 한 것은 아니겠죠?”
“모르죠, 언젠가 김형사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뭐라고요?”
라며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보도를 접하고 어디론가 증발된 김형사와 박인수를 찾아 나섰다. 틀림없이 큰 사고가 난 것이다. 박인수가 김형사를 어떻게 한 것이다. 그런데 김형사와 박인수가 취한 채 호텔에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그들은 초도에서 나와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호텔 바에서 실컷 술을 마시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한용아 선생님, 걱정 말아요. 김형사가 박인수에게 용서를 빌었답니다. 기막힌 사실 하나 알려 줄까요? 글쎄 두 분이 부자지간이랍니다.’
사연은 박인수가 이혼할 때 아내가 데리고 간 한살박이 아들인데 아들이 범법자가 되어 돌아다니자 그 아들 몰래 아들 주변을 맴돌았다는 것이다. 난 그만 스마트폰을 떨어드리고 말았다. 그들이 부자지간이란 기막힌 사실보다는 자식의 도벽을 고치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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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용필
전 KBS 교육방송 극작가. 소설집(청살무)으로 등단. 열린 문학. 교단문학 신인상. 한국 문인 협회회원. 한국 소설가 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부회장역임. 공무원 연금문학회 회원. 국정 홍보 리포터 역임. 새교육 공동체 정책 리포터 역임. 현 여수 인터넷 방송 주필 칼럼리스트. 교육공무원 정년퇴임
0. 문학상 - 한국 바다문학상. 여수 해양문학상. 등대 해양문학상. 스토리(연극. 영화. 드라마) 문학상 . 공무원 문학상. 타임아일랜드 예술상. 공무원 연금수필 문학상. 경남 스토리 소설 상. 제1회 직지소설 문학상. 인천 스토리텔링 최우수상 등 다수.
0.작 품 집 -소설집(청살무, 달빛소나타). 장편소설(잃어버린 세월. 사랑의 노예. 말코. 인간사냥. 사마르칸트 여인. 잃어버린 백제. 아골타의 황금대제국. 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 연해주. 전쟁과 여인 (e북). 불타는 한라산(e북). 코리언 드림(e북). 에세이집(화엄경으로 배우는 성공 비결 108가지(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도서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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