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육체의 요구로 살아가는 축생이 아니라.
정신의 요구로 살아가는 지성의 동물이다.
먹고 입고 잠자는 곳에 목을 매 살아가는 가.?
무엇을 생각 하느냐 에 따라서 인생은 확연이 다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 인가.?
철학은 지식이고 종교는 생명임을 먼저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학승이 마조 도일 스님에게 물었다.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너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보이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닥입니까.?
너는 너라는 것이 있어서 못 보느니라.!
그렇다.
모두가 내라는 것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 불만 비교로 인해 집착이 따른다.
내가 시어머니라는 아상 때문에 늘 며느리가 불만이다.
나라는 자존심 때문에 친구와 동료 명예 직분으로 인해 다투며 원수간이 된다.
그 왜. 큰 시비가 있든가.?
불교 공부는 비우는 공부다
조 실 스님 방 입구나 총림의 불이문 입구에 방하착 이란 문구가 그렇다.
자기의 식견이나 알음 알 이를 모두 놓아 버리고 들어 오라는 말씀이다.
높은 산 흰구름이 자유로운 것은 무심이기 때문이다.
꽃이 떨어져 새잎이 돋아 나는 푸르름도 무심 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길은 도반과 함께 가는 바라밀의 길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된 인생길을 가고 싶어 하니 그 길이 바라밀 길이다.
인생은 도반과 함께 가는 나그네이다.
인생은 벗과 더불어 동료와 함께 끼리끼리 맞추어 살아간다.
벗에는 꽃과 같은 벗, 저울대 같은 벗(몸무개 다는 저울)
산과 같은 벗. 땅과 같은 벗이 있다.
꽃과 같은 벗은 향기가 다하고 잎이 시들면 버리는 벗이다.
저울대 같은 벗은 직위가 올라가면 찾아오고 직위가 떨어지면 찾지 않은 벗이다.
산과 같은 벗은 새나 짐승이 산을 의지 해서 살듯이 감사주는 안식처 같은 벗이다.
땅과 같은 벗은 온갖 곡식을 다 성장시키며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는 벗이다.
인생은 유턴되지 않은 직선 길이다.
좌회전할까.? 우회전할까.?
가로질러 저 혼자만 빨리 가려는 약삭빠른 생각이 사고를 부른다.
정직하게 직진하며 살아갈 일이다.
다리를 건너 가는데............
다리는 흘러가고 물은 그대로 재 자리 인가.?
전도몽상"
"정신 차려. 인생을 바로 보라".
-무불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