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원공 묘갈명(府使元公墓碣銘)
고(故) 부사 원공이 세상을 떠난 지 몇 년 뒤 병조 참판에 추증되고, 또 몇 년 뒤 추가로 판서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택규(宅揆)가 묘소 옆에 묘갈을 세우려 하면서 삼주(三州) 이재(李縡)에게 묘갈명을 청하며 말했다.
“우리 선조는 원주(原州)에서 나왔으니 고려에서 지문하성사를 지낸 순필(舜弼)이 우리 시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정언을 지낸 황(晃)과 판서를 지낸 문정공(文靖公) 효연(孝然)이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문정공의 8대손이 우리 부친이고, 우리 부친의 부친 기(杞)는 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조부는 첨지중추부사 공(羾)입니다.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 정승의 후손으로 주부를 지낸 효겸(孝謙)이 외조입니다. 처음에 우리 부친은 무과로 진출하여 겸선전관, 훈련원 판관과 첨정, 도총부 경력을 지냈습니다.
중간에 비국 낭청을 지내고 낙안 군수(樂安郡守)가 되어 치적이 뛰어나 통정대부로 승진하였습니다. 오위장을 거쳐 덕원 부사(德源府使)에 임명되었는데, 군교 한 사람을 죽인 일에 연좌되어 형리에게 내려져 스스로 변론하자 숙종께서 그 억울함을 살펴 특별히 풀어주셨습니다.
우리 부친은 어버이를 섬기며 그 뜻을 따르고자 힘썼습니다. 우리 조부께서 한 번은 병을 앓았는데, 약이 써서 드시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친이 몹시 걱정스러운 기색을 하자 우리 조부께서 장난으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약 내가 약을 마시기를 원한다면 일단 절해 보아라.’ 하니, 우리 부친께서 속히 마루 아래로 내려가 절을 했습니다.
이렇게 세 번 하자 우리 조부께서 웃으며 약을 드셨습니다. 훗날 고을을 다스리게 되자 매번 슬퍼하며 ‘녹봉을 받지만 봉양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돌볼 적에는 검소하여, 관청에 있어도 집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어도 떠들거나 웃지 않으셨으며 자제와 노비를 엄하게 대하셨습니다. 오직 백성을 다스릴 적에는 기색이 온화하였습니다.
나이 68세 되던 무자년(戊子年,1708, 숙종 34) 8월 6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모친은 좌랑 완산(完山) 이덕귀(李德龜)의 따님으로 임오년(壬午年,1642)에 태어나 우리 부친보다 29년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처음에는 원주에 장사 지냈다가 여주(驪州) 삼정(三井)의 축향(丑向) 언덕으로 옮겨 우리 부친과 합장하였습니다.
네 아들을 두셨으니 제가 장남으로 사릉 참봉(思陵參奉)을 지냈습니다. 백규(百揆,1672~?)는 차남이니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또 원종공신에 참여하였으니, 우리 부친의 관직을 누차 추증하게 한 사람입니다. 딸은 진사 강명서(姜命瑞), 사인 신빈(申鑌)에게 시집갔습니다. 측실 소생은 정규(廷揆)와 무과에 급제한 복규(復揆)입니다.
저는 후사가 없어 제 아우의 아들 중채(重采)를 후사로 삼았는데, 중채는 선전관을 지냈고 사인 강혜보(姜惠溥)는 제 사위이며, 이유제(李裕濟)는 제 아우의 사위입니다. 맏사위(강명서)의 사위는 진사 윤득린(尹得麟)이고 둘째 사위(신빈)의 아들은 사건(思健), 사민(思民), 사급(思伋)인데, 사민은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사인 심선(沈墡)과 허직(許溭)은 둘째 사위의 사위입니다.
제 아우가 돌을 캐어 다듬어 두었는데, 공이 우량(牛梁)에 머무실 적에 제가 이미 글을 부탁했는데 불행히 제 아우가 먼저 죽었습니다. 건장한 사람도 이와 같은데 저는 늙었으니 조만간 죽을 것입니다. 공의 한마디 말을 얻지 못하면 지하에서 제 아우를 볼 낯이 없습니다.”
내가 일어나 말했다.
“그대의 족조(族祖)와 족부(族父)가 대대로 장수의 직임을 맡았기에 그대의 집안은 장수 집안이라 불린다. 그런데 그대의 부친은 관직이 현달하지 못하고 영락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는 권세와 이익에 초연하고 능력 없는 사람처럼 겸손하였기 때문이니, 후손이 보답을 받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 그대 형제가 또 효성이 돈독하여 불후히 전할 방법을 도모하니, 이는 명을 지을 만하다.”
공의 휘는 시형(始亨)이며 자는 대재(大哉)이다. 명은 다음과 같다.
연하의 남쪽 / 延霞之南
여주의 동쪽 / 黃驪之東
절도사가 계획하고 / 節度營之
참봉이 끝마쳤네 / 寢郞終之
이 돌을 깎았으니 / 有劖斯石
효성이 끝이 없네 / 孝思靡窮
누가 시를 지었는가 / 誰其作詩
한천의 노인이로다 / 寒泉之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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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부사 원공 묘갈 :
이 글은 원시형(元始亨)의 묘갈명이다. 원시형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대재(大哉)이다. 1641년 태어나 1708년(숙종 34) 8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주02] 우량(牛梁) :
여주(驪州)의 우만(牛灣)을 말하는 듯하다.
[주03] 연하(延霞) :
지명으로 추정되나 미상이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