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 오늘 긴급 의장단 회의를 열어 북한 수해복구 지원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어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정세현 대표 상임의장은 “수해 복구에 필요한 자재나 장비, 먹을 것을 포함한 물자”를 지원할 뜻을 밝혔다.
국제구호단체인 '한국 JTS'는 오늘 인천항에서 밀가루 100만 톤과 의류, 생활필수품 등 1억2천만 원 상당의 구호품이 실린 선박을 남포항으로 보낼 예정이다. 이번 구호품은 피해가 가장 심한 평안남도 양덕군으로 보내질 것이라 한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발 빠르게 대북 구호활동에 나건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반도를 할퀴고 간 수마로 남한도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제방 등 수해방지 시설이 극히 부족한 북한의 피해 또한 상당했으리라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참다운 벗은 좋은 때는 초대해야만 나타나고 어려울 때는 부르지 않아도 나타난다”는 프랑스 작가 보나르의 말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은 아름답다.
대북지원, 국제공조 체계 만들어야그러나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우려한다.
첫째, 북한의 수해 상황, 필요 물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루어지는 지원이냐는 것이다.
어제 정 의장의 인터뷰를 보아도 “남쪽에 내린 비의 반만 내려도 북한은 우리보다 두배, 세배 피해가 클 텐데”라는 식으로 피해 현황이 두루뭉실하다.
이번 수해로 북한에서 3천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평양 시민들이 수해복구에 나서는 바람에 금년 ‘아리랑’ 공연까지 갑자기 취소된 것을 보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만은 분명하지만, 대체 어느 정도의 피해이고 무엇이 긴급하게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일단 보내고 보는’ 지원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북한의 어느 단위에서 무엇을 어떤 이유로 요구했는지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은 공개하여야 다른 민간단체들도 호응해 줄 것 아닌가.
둘째, 국제사회와 발을 맞춘 지원이냐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유엔안보리 대북결의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지원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인 공조체계를 무시한 한국 정부와 민간의 일방적인 대북지원이 북한을 압박하고 설득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말까지도 들린다.
외부의 눈치를 살피며 인도주의적 원칙을 져버리라는 말은 아니지만, 한 발짝 늦더라도 이제는 인도지원도 국제사회와 손발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식량계획(WFP) 등이 현재 북한 내에서 수해 현황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러한 국제기구를 통한 대응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셋째, 이번 대북지원이 겉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 의장은 인터뷰에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북한으로부터 무엇인가 사인이 나와야 한다”며 “사인을 받아내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빨리 복원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번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수해복구에 초점을 맞춘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관계 복원 동력이 생기면 적십자, 경추위, 장관급회담 등으로 연결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정치적 복선과 의도가 담긴 지원이라는 말인데, 북한을 자꾸 이런 식으로 대하니까 인도지원마저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게 된 것이다. 정말로 인도적인 취지에서 지원을 한다면 “어려우니 돕는다”라고만 하면 되지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요컨대 인도적인 지원은 적극 찬성하지만 ‘받아주세요’ ‘너도나도’ 식의 대북지원은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돕는 게 아니라 독약을 주는 꼴이다. ‘뜨거운 심장’도 좋지만 이젠 ‘차분한 이성’이 필요하다. 정부와 민간의 동포애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곽대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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