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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갈라지면 진실도 갈라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반대편도 있다. 종교가 갈라지기 이전에 하나의 원류가 있었고, 각각의 종교는 그 원류의 부분적 발현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대종교의 삼교합일론은 바로 이 두 번째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것이 신학 강단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흥미가 있다. 항일무장투쟁의 한복판에서 이 이론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총을 든 사람들이 동시에 경전에 주석을 달았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羅喆, 1863~1916)에 의해 중광(重光)된 이래 단군의 신교(神敎)를 민족 정신의 뿌리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종교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나철 뿐만 아니라 서일(徐一, 1881~1921)이 있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서일은 1912년 대종교에 입교한 뒤 독립운동단체 중광단을 조직하고, 이후 대한정의단 단장과 북로군정서 총재를 역임했다. 청산리전투(1920년 10월)를 이끈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남긴 주저가 '회삼경(會三經)'이다. 제목 그대로, 세 가지를 하나로 모으는 경전이다.
'회삼경'은 서일이 '삼일신고(三一神誥)'와 그 '진리훈편'을 해설한 책이다. 삼일신고는 나철이 1905년 서대문역 근처에서 백전(佰佺) 노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대종교의 핵심 경전으로, 366자로 이루어져 있다. 환웅이 전한 가르침이 고구려를 거쳐 전해졌으며, 발해의 대조영이 714년에 예찬문을 쓰고 대야발이 715년에 서문을 지었다는 기록이 경전 안에 남아있다.
내용은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 다섯 편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진리훈'에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이라는 세 가지 수행법이 명시되어 있다. 대종교는 이 삼도(三道)로 성통공완(性通功完), 즉 본성을 트고 공적을 이루는 이상에 도달한다고 가르친다.
서일이 '회삼경'에서 한 작업은 이 삼도를 유·불·선 삼교와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 제3대 도사교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그 논의를 더 깊이 밀고 나갔다.
경남 밀양 출신의 윤세복은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한 뒤 만주에서 동창학교·대흥학교·대종학원을 세우며 교육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1924년 3대 도사교가 되었고, 해방 이후 초대와 3대 총전교를 역임했으며,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만년에 '회삼경'을 강의하고 번역할 정도로 이 책에 매달렸다. 그리고 1942년 임오교변(壬午敎變) 당시 - 일제의 탄압으로 대종교 지도부가 대거 체포·고문당하는 그 와중에 - '수진삼법회통(修眞三法會通)'을 저술했다. 삼교합일을 구체적인 수행론으로 풀어낸 글이다.
이 두 사람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회삼경'이 세운 문제의식부터 살펴야 한다. '삼아편(三我篇)'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 신인이 가르침을 베풀고 계통을 드리움으로부터 대수가 멀게 되고 시간이 오래되어 나에 대한 접근하는 길은 점점 갈라지게 되고, 나에 대한 지혜는 날로 어두워지게 되어 근본을 잊고 근원을 저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신을 게을리 하고 인륜을 해치는 경우가 있게 된다."
단군시대의 통일된 가르침이 세월을 거치며 쪼개졌고, 그 쪼개진 조각들이 불교·선교·유교라는 것이다. 세 종교는 진리의 원형이 아니라 원형의 파편이다.
'회삼경'은 이 파편들을 '삼아(三我)' 개념으로 분류한다. 세 종류의 '나'다.
성아(性我) · 영아(靈我) · 도아(道我)다.
성아는 우주로서의 나이고, 영아는 영으로서의 나이고, 도아는 원리로서의 나다. 우주적 나는 집착으로 인해 본연의 모습을 잃고, 영적 나는 환경적 요인으로 다양성이 생기며, 원리로서의 나는 시세에 따라 불일치가 생긴다. 이 세 차원의 나를 잃어버린 결과가 사회적 혼란이고, 그 혼란을 구제하려고 각각의 종교가 생겼다.
불교가 등장한 계기를 '회삼경'은 계급 문제로 읽는다.
"사회적 변화가 계급을 숭상하여,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능멸할 때, 독아관(獨我觀)이 나타난다."
독아는 나로부터의 깨달음이다. 윤세복은 이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구절로 해석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 권1에 나오는 이 말은 나만이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로부터 깨달음이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불교는 카스트제도의 계급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태생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 그 시대로서는 혁명적인 논리였다.
"독아가 확립되자 전제적 지배가 무너졌다"고 '회삼경'은 기록한다. 윤세복은 전제를 남을 다스리는 데 특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불교적 평등관이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는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불교의 한계도 지적된다.
자존감을 높이고 평등을 추구하지만,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승가 공동체로 귀속하려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현실에 뛰어들기보다 염세적 태도로 흐르기 쉽다. 대종교의 현실 참여 정신에서 보면 바로 이 지점이 불교의 한계다.
선교(仙敎)가 등장한 배경은 다르다.
"사람이 이로움, 권리에 달려가서 사람이 강한 것으로 약한 것을 업수이 여기게 되어 이 때에 맞추어 위아관(爲我觀)이 생겼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전국시대, 양주(楊朱)의 사상이 거기서 나왔다. 양주는 자신의 정강이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는데도 뽑을 수 없다고 할 만큼 개인의 생명을 중요시했다. 부귀공명은 외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은 나의 생명이라는 논리다.
도교는 이후 양주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장자의 정신적 자유를 결합했는데, 윤세복은 선교를 내단(內丹)적 사고에 한정해 이해한다. "선교의 날아오르는 것은 신선이 되는 이치가 단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
'도덕경' 1장의 현(玄) - 유(有)와 무(無)가 함께하는 것 - 을 윤세복은 이성을 초월하는 현묘함의 논리로 읽는다. 선교의 위아론이 나와서 간섭이 없어졌다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간섭 자체를 부정한 것이니 이것 역시 근대적 사고의 한 형태라고 윤세복은 평가한다.
그러나 선교도 한계가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지나쳐 이기적인 사고로 귀결된다. 나만의 불로장생이 목표인 수련은 대종교의 이타적 지향과 충돌한다.
유교에 대한 시선도 예외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추구하여 사적인 것으로 공을 해치므로 이 때에 무아관(毋我觀)이 생겼다."
여기서 무아는 불교의 무아(無我)가 아니라 '논어'의 사무(四毋), 즉 무의(毋意) · 무필(毋必) · 무고(毋固) · 무아(毋我)에서 나온 말이다.
사적인 나가 없다는 것이고, 공적인 나인 인(仁)을 통해 공정한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무아는 자겸(自謙)을 핵심으로 하는데, 윤세복은 '대학(大學)'의 자겸을 스스로 만족함이라고 풀고, 과불급이 없는 중용을 얻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아가 일어나자 사나운 행위, 즉 어지러운 정치가 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독아가 전제를 타파하고 위아가 자유를 확립하는 것에 견줘, 유교는 그런 대척적 사고를 제시하지 못한다. 도덕적 원리만을 강조하면 도덕 이외의 일에 무관심해지고, 결국 문약(文弱)으로 흐른다.
대종교가 문무의 합치를 추구한 것, 그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유교의 문이 아니라 문무 합일에 기반한 것임이 이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세 종교의 핵심 수행법을 '회삼경'은 삼일신고의 지감 · 조식 · 금촉과 각각 대응시킨다.
불교의 명심(明心), 마음을 깨닫는 것이 지감(止感)이다. 지감은 기쁨을 얼굴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성냄에 기운을 부리지 않고, 두려워하되 겁내지 않고, 슬퍼하되 몸을 훼손하지 않으며, 탐내되 청렴을 손상하지 않고, 싫으나 뜻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선교의 양기(養氣), 기를 기르는 것이 조식(調息)이다. 윤세복은 풀과 나무는 산소가 많고, 숯과 주검은 탄소가 많고, 추위에는 독한 병이 많다는 식으로 산소와 탄소 개념을 끌어들여 호흡의 원리를 근대 과학과 연결하려 했다.
유교의 수신(修身)이 금촉(禁觸)이다. 꾸미는 말을 귀에 들리지 않고, 아첨하는 얼굴색을 눈에 접하지 않으며, 코로 비린내를 맡지 않고, 탐닉함이 간악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 금촉의 내용이다. '논어'의 "교언영색을 인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는 내용과 맥이 닿는다.
이 대응 구조는 단순히 삼도를 종교와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깊이의 차원도 있다. '회삼경'은 각 종교의 수행을 낮은 차원과 높은 차원으로 나눈다.
불교의 낮은 차원이 명심(明心)이라면 높은 차원은 견성(見性)이다. 그 경지는 청정에 달하여 막힘이 없는 상태이며, 윤세복은 이를 '원각경(圓覺經)'에 나오는 모든 여래의 청정한 모습, 모든 중생의 청정함, 모든 세계의 청정함과 네 가지 지혜의 막힘이 없음으로 풀어낸다.
선교의 낮은 차원이 양기라면 높은 차원은 연성(煉性)이다. 본성을 단련하여 '도덕경' 14장의 희이(夷希微) -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상태 - 를 벗어나 저절로 그러함에 이른다.
유교의 낮은 차원이 수신이라면 높은 차원은 솔성(率性),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중용(中庸)'의 희노애락 감정이 발동하기 이전이 중(中)이고, 발동한 이후에 절도에 맞는 것이 화(和)다. 그 발동 이전과 이후가 모두 절도에 맞으면서 발동하지 않은 상태, 그것이 본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수진삼법회통'에서 윤세복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느낌을 그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마음이 평하기를 기약함이라. 고통 마귀가 서로 틈을 엿보아 바깥 물건을 쫓아 의식 속으로 옮겨 들어오니, 안으로 현궁(玄宮)을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사특한 생각이 없어지니 불교의 참선이 이에 비길 수 있음을 어찌 의심하리요."
현궁이란 도교의 현관(玄關)과 비슷한 개념으로 내적 수련의 핵심 지점을 가리키는데, 지감이 단순히 감정을 조절하는 수준이 아니라 깊은 내면 수련임을 밝힌 것이다.
조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기운이 변화하게 하는 것인데 시간을 늘여서 호흡하면 그 효험이 신기하게 나타나니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 몸을 두루 도는 것을 이루어 알리라. 선교의 도인이라는 것이 또한 이 가운데 있으니, 기운을 기르고 성품을 단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종문의 한 갈래다."
선교를 대종교의 한 갈래로 명시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금촉에 대해서도 유교의 극기(克己)를 대종교의 향불을 피우고 삼일신고를 읽는 수련과 연결시킨다. "향불을 피우고 삼일신고를 읽으면 온갖 마귀가 엿보지 못하므로 차츰 명상 속으로 들어가 몸가짐에 얽매임이 없는지라. 유교의 극기란 것도 이에 지날 것이 없으며, 몸을 닦고 성품을 거느리니 윤리의 가르침도 여기에 의지함이다."
이 삼교의 핵심 수행을 하나로 모아낸 것이 대아(大我)다.
대종교의 궁극적 인간상이다.
여기서 크다[大]는 것은 내가 주관적으로 크다는 선언이 아니다. 한울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고, 나는 사적인 내가 아니라 신이 사람에게 부여한 공적인 존재다.
'회삼경'은 이 대아를 세 차원으로 설명한다. 위계상으로 보면 등급에 따라 차등이 있는 나가 있고, 가로로 보게 되면 가지런한 나가 있고, 두루 보게 되면 함께하는 나가 있다.
"높으면 할아버지가 되고 낮으면 자손이 되는 것이 모두 나와 관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귀하게 되면 왕공이 되고 천하게 되면 노예가 되니 나와 관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며, "작게는 집안이고 크게는 세계니 나와 관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나 이전에 시작도 없고 나 이후에 끝도 없으며 지금의 나는 머무르지 않는다.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같은 표현이다.
그리하여 불교의 뜻을 이어서 나의 낮음으로서 높은 사람을 범하지 말며, 선교의 뜻을 이어서 나의 귀함으로서 천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며, 유교의 뜻을 이어서 나의 사사로움으로서 공을 멸시하지 않으면, 나의 역할이 여기서 다하게 된다.
불교적 의미에서 자신을 높이되 본분을 넘지 않고, 선교적 의미에서 자신을 사랑하되 멋대로 하지 않고, 유교적 의미에서 자신에게 만족하면서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방법은 세 가지이면서 하나인 것을 보존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대종교의 이상은 성통공완(性通功完)이다.
"나의 본연의 참된 것을 아는 것을 '성통'이라 하고, 당연의 지극함을 행하는 것을 '공완'이라 한다."
본연이란 본래 그러한 것이고 당연이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 표현은 유교적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유교에서는 도덕적 본성과 그것의 당위적 실천에 쓰는 개념을, 대종교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나의 본성과 실천을 설명하는 데 쓴다. 성통공완은 개인의 수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대종교의 삼교합일론이 이전 논의와 구별되는 지점이 드러난다. 삼교합일론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오랜 전통을 갖는다. 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는 삼교를 포함하고 뭇 생명을 교화한다"고 했다.
조선에서도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은 삼교의 핵심이 마음에 있으며 그 마음이 같다는 데서 삼교합일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휴정은 불교 시각에서 유교와 도교의 한계를 지적했다. 유교는 여유(餘裕)가 없는 점에서, 도교는 작용은 없고 본체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결국 불교 안으로 삼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대종교의 삼교합일론은 방향이 다르다. 삼교 가운데 어느 하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삼교 밖에 서서, 삼교를 포괄하는 더 높은 차원에서 합일을 시도한다. 최치원의 풍류도가 삼교를 포함한다는 논의에 근거하되, 풍류도에서 삼교가 나왔다기보다는 삼교의 요소가 풍류도 안에 있다고 해석하는 방향이다. 대종교가 최치원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삼교를 넘어서는 근거가 여기 있다.
이 논의의 정치적 의의는 따로 짚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진영은 이념과 노선과 배경을 달리하는 수많은 세력으로 쪼개져 있었다. '무장투쟁론자'와 '외교독립론자',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제각기 파벌 싸움에 골몰할 때, 대종교는 단군이라는 기치를 들고 하나로 합치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불교 신자도, 유교 선비도, 기독교인도, 선도 수련자도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는 공통 지반에 설 수 있었다.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에 서명한 39인 가운데 상당수가 대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 논의의 실천적 무게를 말해준다. 종교적 차이를 넘어서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논리가 삼교합일론이었다. 대종교의 독립운동이 단순한 무장투쟁운동이 아니라, 유교·불교·선교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문명의 재정립이라는 더 큰 의의를 갖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다.
삼아도(三我圖)를 보면 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아(道我)에는 겸아(謙我) · 존아(存我 )· 애아(愛我)가 있고, 성아(性我)에는 솔성(率性) · 견성(見性) · 연성(煉性)이 있으며, 영아(靈我)에는 성(聖) · 각(覺) · 현(玄)이 있다. 이것이 무아 · 독아 · 위아로 귀결되고, 궁극적으로는 대종교의 대아(大我)로 총합된다. 삼교는 이 도표에서 각기 하나의 경로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대종교 교단 내부에서는 대표할 만한 수행 체계가 아직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나철이 실천하고 서일이 이론화하고 윤세복이 심화한 이 수행론이 교단 안에서 살아있는 수련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지금 대종교 앞에 놓인 숙제이고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단군사화는 한 민족의 창세 이야기다. 그러나 대종교의 삼교합일론이 말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단군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불교도 선교도 유교도 아니었다. 세 가지를 포괄하는 무언가였다. 그것을 되찾는 것이 대종교의 과제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이론이 삼교합일론이다. 총을 들기 전에 경전에 주석을 달고, 옥중에서 수행론을 저술한 사람들의 논리다.
그 논리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를 높이되 남을 짓밟지 말고, 나를 사랑하되 멋대로 하지 않고, 나에게 만족하되 공을 멸시하지 않는 것.
세 가지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세가지다.
